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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솔개)와 태양은 등가물 … 生殖의 의미 갖는 복합상징체계로 발전
새(솔개)와 태양은 등가물 … 生殖의 의미 갖는 복합상징체계로 발전
  • 김양동 계명대 석좌교수·서예가
  • 승인 2013.06.11 10:5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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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대문화 원형의 상징과 해석 8. 고대 새 숭배사상의 原流와 한국의 고대문화 (Ⅰ)


고대 건국 始祖들의 卵生神話와 『三國志』 「魏志·東夷傳」 ‘馬韓 條’의 大鳥에 대한 기록, 그리고 신라 서봉총 금관의 새를 비롯한 鳥翼形 금동관과 솟대 등 고대 한반도 문화에 나타난 새 숭배사상의 기원과 원류는 어디서 시원해 오늘에 이르게 됐을까. 이번 호에서는 아득한 선사시대부터 존재했던 새 숭배사상의 문화적 뿌리는 어떻게 유입돼 수천 년의 역사를 관통하면서 한민족의 문화원형으로 형성됐는지 그 뿌리를 알아보고자 한다.

▲ [그림8] 홍산문화 神鳥冠飾玉人

 

 

 

새 숭배사상은 한국 고대문화원형 가운데 핵심 중의 하나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휘장문양만 보더라도 봉황으로 장식돼 있다. 고대부터 최고 권력자의 문장이 그렇듯이 오늘날 최고 통치자의 문장도 나라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장이 된다. 봉황은 神鳥로서 새 중의 왕이다. 수컷은 鳳, 암컷은 凰이라고 하는데, 봉황의 머리에는 德을, 목에는 義를, 등에는 仁을, 심장에는 信을, 날개에는 義를 가지고 발로는 正을 밟으며 꼬리에는 武를 달고서 노래하며 춤춘다고 하는 새가 봉황이다. 이런 봉황이 나타나면 천하가 크게 안정돼 상서로운 징조가 나타나기 때문에 예로부터 瑞鳥로 여겨 황제의 문장으로 사용됐다. 이러한 상상의 새인 봉황은 神鳥로서 신석기시대부터 씨족이나 부족의 표지물로 등장했다.

 

원시인들은 그들이 숭배했던 동물이나 자연물의 대상을 복합적으로 디자인해 신성한 권위와 존귀성을 부여하고 씨족이나 부족의 표지물로 삼았는데 그것을 族徽라 한다. 족휘는 부족의 휘장, 마크란 의미다. 그것이 곧 토템이다. 토템이 진화한 것이 집단의 깃발이다. 군대의 마크도 바로 그것인데 백마부대, 맹호부대 같은 휘장과 깃발이 고대 족휘의 유풍이다. ‘旅’자는 깃발을 들고 여러 사람이 뒤를 따르는 모습의 글자다. 일본 여행객들이 상상될 것이며 군대의 여단도 여기서 나온 말이다. 따라서 새 숭배사상의 원류를 추적하기 위해선, 고대인들의 원시사유세계와 원시종교가 반영된 이른바 族徽의 상징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 원류를 살펴보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방대한 영역의 풍부한 자료에 저장된 무진장한 정보의 보고는 고대문화 탐구의 바다와 같다.

특히 태양숭배사상과 새 숭배사상의 두 가지 원류는 밀접하게 결부된 동격의 문화로서 고대문화의 모든 영역에 걸쳐 있고 광범위하게 두루 미쳐 있는 母型의 원리다. 그러한 경향은 古今東西 구분이 없다. 본 연재의 목차에 포함된 각론들, 즉 고구려 절풍, 신라금관과 조익형 관식, 환두대도 삼지엽, 솟대, 무용과 복식의 기원 등이 모두 새 숭배사상에서 그 시원을 찾을 수 있는 고대문화의 분화양상들이다. 이들 각론에 대한 상징해석은 연재 순서에 따라 상론할 예정이지만, 다소 교차와 중복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 새 숭배사상의 원류는 2회에 걸쳐 연재한다.

‘고구려 삼족오’ 원류설의 한계를 넘어서
『說文解字』의 새에 대한 자해는 ‘鳥’는 꼬리가 긴 長尾鳥를 말하고, ‘隹’는 꼬리가 짧은 短尾鳥를 말한다고 나누어 설명했다. 고대와 현대를 따질 것 없이 인간들은 창공을 자유롭게 나는 새처럼 높이 오르고자 하는 염원을 가졌다. 신의 원형인 하늘에 다가가고자하는 것이 인간의 소망이었기에 그러한 소망을 대행할 새를 숭배하며 존귀하게 여겼다. 새가 주는 이미지는 높[高], 난다[飛翔], 자유롭다, 거슬림이 없다, 부딪히지 않는다, 무겁지 않고 가볍다 등 이상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새가 태양에 가장 가깝게 도달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인식한 고대인들은 새와 태양을 등가물로 상징해 生殖의 심볼로 삼았다. 또 그렇게 표현한 상징성을 갖가지 유물에 複合徽識했다.

새 숭배사상의 원류를 『三國志』 「魏志·東夷傳」 ‘弁辰 條’나 또는 고구려 고분의 삼족오를 언급하는 정도에서 찾는 일부 시각에는 무리가 있다. 마치 삼족오가 고구려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것처럼 생각하거나, 三이란 숫자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해 한국의 고대사상이 모두 거기서 나온 것처럼 논리를 펴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삼족은 殷·周시대 응형청동기의 보조 뒷다리이거나 꼬리로 땅을 버티는 尾羽撑地의 모습이 그 원형일 것이다[그림1]. 그 형상이 후대에 삼족으로 訛誤돼 제법 그럴듯한 신화적 형태로 윤색되고 변형됐을 것으로 추단한다. 지금까지 새 숭배의 상징성과 해석에 대해서 기존 학계의 견해는 ‘고대의 우주관이 낳은 천계의 상징적 표현’이라거나 ‘천상과 지상의 연락을 담당한 매개자’, 또는 ‘영혼의 전달자’ 등 추상적이고 수사적인 설명이 통설이었다.

 

 

물론 그러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새 숭배의 원류가 해명되지 않는다. 또 한편 새가 봄철에 곡식의 씨앗을 가져다주는 穀靈의 사신으로, 또는 죽은 이의 영혼을 천상으로 인도하는 이른바 鳥靈信仰에서 새 숭배사상의 원류를 논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새 숭배사상의 상징성이 후대에 와서 많이 訛傳된 내용을 담은 『三國志』 「魏志·東夷傳」의 기록에 너무 충실한 자세다. 『三國志』 「魏志·東夷傳」이 한반도 동이들에 대한 기록으로선 효시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지만, 그 문징보다 수천 년 전 선행한 유물에 대한 상징 해석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그것은 인간의 손이 재가공하지 않은 땅속의 생생한 당시의 발언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주체에서 밀려나 한족에 의해 가려지고 사라진 동이의 역사는 지하에서 들려오는 발굴 소리에 귀를 바짝 기울이고 긴장해야 한다. 새 숭배사상의 원류는 동북방 紅山文化, 장강 하류의 河姆渡文化와 그 후신인 良渚文化, 한반도와 지형적으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산동반도의 신석기시대 大汶口文化 및 그 문화를 승접한 龍山文化 등에서 출토된 동이문화의 풍부한 물징들을 검색한 후, 다시 『三國志』 「魏志·東夷傳」보다 앞선 문징들을 통해 새 숭배사상의 원류와 상징성을 溯源해 체계 있게 살펴봐야 할 것이다.

그러면 한국 고대문화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홍산문화의 새 숭배 자취부터 먼저 살펴보자. 본문 오른쪽의 그림 중 [그림3]의 우하량 중심대묘 출토현황을 보면, 두개골 위에 길이 19.65cm의 푸른빛이 도는 玉鳥가 놓여 있다. 위치로 보아 鳥形冠飾임이 분명하다. 옥조를 관식화한 예는 동이문화의 새 숭배사상을 증명하는 잣대이다. 가슴 아래엔 둥근 원통형의 玉箍(옥고 : 옥으로 만든 상투 束髮具)가 굴러 떨어져 있다. 옥고와 관련된 동이족의 상투에 관한 담론은 추후 상론하기로 한다. 홍산문화 유지에서 출토된 많은 玉鳥들은 대부분 2.5cm에서 5cm 미만의 작은 크기의 매[鷹], 소리개, 부엉이(올빼미) 등 맹금류들이다. 맹금류인 이들은 우두머리를 상징하는 紋章이다. 紅山玉鷹들은 크기도 작지만, 뒷면엔 고리형의 구멍이 뚫려 있다[그림6]. 어디엔가 부착해 사용한 것이 확실하다.

아마 그 용도는 이마의 정면에 부착한 지도자급(수리급)의 冠飾인 것으로 추찰된다. 새가 관식으로 등장한 것은 동이족의 새에 대한 숭배관념을 반영한 결과다. 동이족의 새에 대한 관념은 태양숭배와 생식숭배를 의미한다. 태양의 에너지인 日精이 생산의 원천이므로 태양과 등가물인 새는 당연히 생식의 精인 남근을 상징하게 된다. 조상 祖자의 本字는 남근을 형상한 자형이다. 그러므로 ‘祖上’이란 말의 해석은 ‘씨’ 곧 ‘부랄(불알, 불씨)을 아래로 내려준 윗분’이란 뜻이다.

남근의 고유어인 ‘좆’과 ‘鳥’의 독음인 ‘조’, 그리고 조상 ‘祖’자의 음인 ‘조’가 비록 한자음과 고유어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음가가 유사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새 鳥자의 중국식 발음은 두 가지다. ‘니아오(Niao)’는 새를 뜻하고, ‘디아오(Diao)’는 산동방언으로 남성의 성기를 지칭하는 욕이다. 산동방언에서 ‘鳥人’은 ‘좆같은 놈’이란 뜻이다(『중한대사전』,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새[鳥]를 두고 다른 곳도 아닌 산동지방에서 이런 방언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옆의 [그림 7]은 북경고궁박물원에 소장돼 있는 商代의 祖頭玉鳥形의 자루[柄]다. 새의 짧은 부리 위 머리 부분의 표현상 특징을 살펴보면, 새와 남근을 복합 디자인한 고대적 상징임을 금방 느낄 수 있다.

특히 새의 다리 끝부분은 다른 기물에 삽입할 수 있도록 몸피보다 약간 가늘게 만들었는데 이것을 榫(장부 순)이라고 한다. 이 옥기의 상징성을 통해 볼 때 ‘새를 생식의 심볼’ (董楚平, 『고궁문물』168호, 120쪽., 石興邦, 「我國東方沿海和東南地區古代文化中鳥類圖像與鳥祖崇拜的有關問題」, 『중국원시문화논총』, 문물출판사, 1989, 234~237쪽)로 생각했던 고대동이족의 사유세계가 그대로 읽혀진다. 그러므로 동이족의 탄생설화는 모두 새의 알에서 태어나는 卵生說話가 아니겠는가? 난생설화를 중국에선 鳥生說話라고 한다. 우리 민속에서 팥죽을 먹을 때 찹살 수제비를 새알수제비라 하며 나이만큼 먹게 하는 풍습이 있는데, 이것 역시‘태양 = 歲(살) = 새의 알(鳥卵)’이라는 등식으로 해석해야 하겠다.

 

 

[그림 8]은 새와 남성생식숭배를 토템화한 玉神人이다(魏昕 所藏, 柳冬靑 ,『紅山文化』, 내몽고대학출판사, 2002, 28쪽). 거대한 남근을 드러낸 神人이 頭上에는 솔개와 올빼미의 관을 얹고 왼쪽발로는 거북을 밟고 있는 형상이다. 솔부엉인 치효는 天精(日精)의 상징이며 거북은 地靈의 상징이다. 고대유물에 나타나는 새와 거북(또는 물고기)은 대부분 천정지령의 심볼로 결국 음양조화의 고대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강우방 교수는 우리 고대문화의 미적 원리가 모두 靈氣에서 시원된 것이라고 단정했는데(『한국미술의 탄생』, 솔, 2007), 天이 가진 기운을 ‘精’이라 하고, 땅이 가진 기운을 ‘靈’이라 하기 때문에, 그의 이론에는 우리문화 母型의 원리인 하늘기운의 작용을 배제한 논리적 모순이 발견된다. 검토가 필요한 대목이다. 한반도의 선주민이기도 했던 동이는 先秦시기엔 지금의 산동동부, 淮河 중하류의 강소, 안휘 일대 및 발해연안에 군락하고 있던 각 민족을 범칭한 말이다.

夷란 글자는 갑골문과 西周 金文에 이미 보이고, 『논어』 「자한』 편에서 공자는 “나는 九夷에 살고 싶다(子欲居九夷)”라고 말한 대목이 있다. 이 구절에 대한 皇侃의 注에 “동방에 구이가 있으니 현토(玄菟), 낙랑(樂浪), 고려(高麗), 만식(滿飾), 부경(鳧更), 색가(索家), 동저(東屠), 팔왜(八倭), 천비(天鄙)이다”라고 했으나, 일반적으로 구이는 漢代에 지역에 따라 동방의 여러 종족인 夷를 분류한 명칭으로 淮夷, 萊夷, 鳥夷, 島夷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민족은 그중에서 鳥夷로 분류돼 왔다. 태양을 신의 원형으로 삼은 東方夷人으로 새를 토템으로 숭배한 민족이란 뜻이다.

儒學者들의 문헌통해 訛誤된 진실의 저편
하모도문화와 양저문화의 두드러진 새 숭배의 유물은 이미 소개한 陽鳥骨刻文[그림 9]을 비롯해 ‘옥으로 만든 매’[그림 12·14], 玉璧上의 鳥紋[그림 13], 여항시 반산 묘장구 11기좌의 묘에서 출토된 수많은 玉冠狀器[그림 15] 등이 있다. 양저문화의 유물은 대부분 새 중에서도 맹금류인 응조류가 날개를 활짝 편 형상이다[그림 12·14]. 이것은 새 토템사상이‘태양=솔개=으뜸 지도자’를 등가물로 인식한 상징적 표현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솔개, 소리개, 수리는 모두 정상, 봉우리, 으뜸을 의미하며, 그 어원은 태양의 고유어 ‘살’에서 분화된 말임을 총론에서 이미 밝혔다.

특히 관식인 옥관상기[그림 15]는 규모가 비록 작지만, 비상하는 새의 간결하고 추상적인 디자인과 아주 精微한 새김은 美의 極品이라 할만하다. 옥관상기의 面에 역시 새의 문양과 신비로운 神人像이 線刻돼 있는데, 이것 역시 고대에 새를 어떻게 인식해 유물에 반영했느냐 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새 숭배사상은 태양을 意符한 天神의 使者인 새와 생식의 심볼로서 난생설화의 모태가 된 새로 복합 상징됐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새 중의 왕자격인 솔개를 태양과 鳥日同體化함으로써 천신의 권능과 지령의 생식[卵生] 권능을 복합적으로 상징화했다. 그러므로 태양조는 처음부터 솔개였다. 이것이 東漢의 王充(A.D.27~A.D.약 97)의 『論衡』을 비롯한 儒者들의 문헌에서 삼족오로 기술되면서 訛誤돼 버렸던 것이다. 이에 대한 논증은 다음 호에 새 숭배의 원류에 대한 중국 고대의 문징과 함께 고대 한국의 새 숭배의 물징에서 상술하겠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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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훈 2013-09-04 10:58:49
중국의 새 토템 동이족은 은나라, 서이(徐夷), 진(秦)나라 등으로, 이들 나라들이 중원에서 한반도로 이주하면서 한반도에 새 토템이 시작됩니다. 물론 이들이 고대 한국 국가들을 세우는 주체이기도 합니다.
한국 신석기 시대 문화가 점차 청동기 문화로 바뀐 것은 사실이 아니며, 먼저 중국 구이(九夷) 문화가 기원전 10세기 경 한반도에 퍼지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