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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시작 … 시민참여와 역할은?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시작 … 시민참여와 역할은?
  • 김재호 학술객원기자
  • 승인 2013.05.21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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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읽는 과학本色14 과학기술 위험사회와 시민

 

체르노빌 사건 이후 버려진 도시 프리피야트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공론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에 따라 사용후핵연료 처리 방법 및 탈핵 등에 대한 사회적 토론이 어떤 방식으로 흘러갈지 주목된다. 지난 14일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는 ‘과학기술 위험사회에서 참다운 ‘시민’으로 살아가기’에 대한 강연이 펼쳐졌다. 이영희 가톨릭대 교수(사회학과·사진)는 “2016년부터 기존 핵폐기물 임시 저장소 23개는 포화될 것”이라며  “과학기술 시민권 각성을 위한 교육과 사회적 행동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폐연료봉인 사용후핵연료는 원자로에서 핵분열을 하며 연소한 연료다. 우리나라에선 매년 700톤에서 800톤 가량 배출되고 있다. 특히 사용후핵연료는 방사능 때문에 10만 년 이상을 격리 보관해야 한다. 원전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핵연료 저장시설에 대한 대안을 논의하는 원전지역 특위를 곧 구성한다. 특히, 14일부터는 원전이 있는 지역주민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월성, 울주, 기장, 영광에서 간담회 및 설명회를 열고 있다. 이 가운데 일부 환경단체는 핵발전소 신설 중지 등 탈핵이 먼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회는 방사성폐기물관리법에 따라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 15명을 구성해 폐연료봉 저장방식을 결정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를 이끌 예정이다.

2016년이면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소 포화

시민과학센터는 지난달 2일부터 ‘위험한 과학기술시대를 살아가기’라는 주제로 두 번째 시민강좌 7개를 개최했다. 「과학기술과 두 문화, 그리고 위험사회」(김환석 국민대 교수)부터「핵발전을 둘러싼 위험」(윤순진 서울대 교수>, 「만들어진 질병, 구제역」(김동광 고려대 연구교수) 등 과학기술의 불확실성 속에서 일반 시민들이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과학기술과 위험사회 속에서 시민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영희 가톨릭대 교수. 그는 지난 14일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강연을 펼치며 참여적 거버넌스의 사례 등을 소개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위험의 해결책이 아니라 원인인 경우가 많다.” 울리히 벡은『위험사회』에서 과학기술적 합리성이 위험사회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성찰적 근대화가 필요하다. 과학기술 위험에 따른 사회학적, 심리학적, 인류학적 연구는 1970~1980년대에 등장했다. 쓰리마일 원전 사고나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사고, 보팔 참사 등 재난이 폭주한 것이다. 특히, 체르노빌 원전 폭발사고는 더 말할 나위 없다.

이영희 교수는 “20세기의 주류적 위험 관리 방식은 기술관료적 위험 거버넌스였다”면서 “이는 위험에 대한 과학주의적 인식론을 강조하며, 객관적 과학의 힘을 빌려 위험을 정량화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전문가 중심의 폐쇄적 위험관리체계가 무지한 일반 시민의 참여를 배제하려 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가치중립적이고 객관적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하지만, 참여적 위험 거버넌스는 위험의 사회적 구성성을 강조한다. 위험의 존재와 크기가 객관적으로 실재하기보다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이때는 인식의 틀에 따라 위험이 달라진다. 과학적 합리성과 사회적 합리성이 강조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공공참여가 중요한 이유는 △규범적 차원: 민주주의의 문제 △도구적 차원: 정당성 위기와 문제 △실제적 차원: 불확실성과 시민 지식의 중요성 등 때문이다. 도구적 차원의 경우, 광우병 파동과 방패장 부지 선정의 사례를 떠올리면 된다. 정책수립 정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전문가집단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나 시민들은 불신했다.

그렇다면 과학기술 시민권(혹은 시민성)이란 무엇인가. 이 교수는 “과학기술 사회에서의 새로운 권리 차원뿐만 아니라 시민의 새로운 의무와 덕성으로 간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보접근권과 의사결정의 참여권만이 아니라 과학기술적 관여(engagement)와 해석능력(literacy)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민의 공공참여 방법은 선호취합(공청회, 여론조사, 국민 혹은 주민 투표) 모형과 숙의모형(합의회의, 시민배심원, 공론조사)이 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숙의적 참여 방식 중에서 대표성은‘공론조사 > 시민배심원(랜덤 선출) > 합의회의(자원 선출)’ 순으로 많다. 숙의성은‘합의회의 > 시민배심원 > 공론조사’ 순이다.

참여적 거버넌스의 좋은 사례로서 이 교수는 영국의 핵폐기물 관리 정책을 꼽았다. 1997년 영국은 셀라피드 핵폐기장 확보에 실패한다. 이에 따라, 2003년에 방사성폐기물관리위원회(Committee on Radioactive Waste Management, CoRWM)가 설립된다. 기술전문가, 사회과학자, 환경운동가 등 12인의 위원들이 모였다. 위원회는 예산지원을 받았고 독립적으로 운영됐다. 최종보고서를 제출하기까지 핵폐기물 관리 대안 15개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를 설계했고 실시했다. 약 5천 명의 시민과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했다.

인식 틀에 따라 달라지는 위험의 정의

캐나다에서는 1977년 애이킨 보고서(Aikin Report)를 통해 심지층 처분방식이 권고됐으며 참여적 거버넌스가 시작됐다. 1978년 캐나다 정부는 핵폐기물관리프로그램을 수립했다. 1989년에는 환경영향평가를 위한 독립적 패널이 구성됐다. 2002년엔 핵연료폐기물법을 제정했고, 사용후핵연료 처분의 전체과정을 전담하는 헥폐기물관리기구(Nuclear Waste Management Organization, NWMO)가 설립돼 시민 대증과 함께 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참고로, 이 교수에 따르면 심지층 처분방식이란 지하 500~1천 미터 정도를 파내려간 후 지하심부 기반암에 굴착시킨 동굴에 공학적 방벽을 통해 핵폐기물을 묻는 방법이다. 이 외에도, 영국의 나노배심원과 미국의 전국시민기술포럼이 참여적 거버넌스의 사례로 제시된다.

한국은 어떨까? 이 교수는 △기술관료적 거버넌스 △일방적 전문성 정치 △‘말의 정치(Politics of talk)’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5기 원전이 건설 중이고, 4기를 더 계획 중에 있다. 그러나 탈원전 등 핵에너지 정책 방향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이 교수는 과학과 정치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 이분법적 시각보단 기술과 사회의 결합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요컨대, 울리히 벡의 표현을 빌리자면, “과학적 합리성 없는 사회적 합리성은 맹목적이고, 사회적 합리성 없는 과학적 합리성은 공허하다.”


김재호 학술객원기자 kimyita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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