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20:10 (일)
학술대회 참관기 : 칼 포퍼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
학술대회 참관기 : 칼 포퍼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
  • 이한구 성균관대
  • 승인 2002.09.1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2-09-14 12:04:18
이한구 / 성균관대·철학

2002년 7월 3일부터 7일까지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대학에서 칼 포퍼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Karl Popper 2002 Centenary Congress)가 개최됐다. 이 학술대회는 칼 포퍼 연구소와 비엔나 대학이 공동으로 개최했는데, 세계 50여 개 국가로부터 약 5백여 명의 학자들이 모여 큰 성황을 이룬 가운데 ‘비판적 합리주의’ 철학의 새로운 해석과 발전을 위한 격렬한 토론의 장을 펼쳤다.

대회 첫 날 칼 포퍼의 오랜 친구이자 비판적 합리주의의 철학을 오랫동안 앞장서 전파해온 독일의 한스 알버트(Hans Albert) 교수가 ‘칼 포퍼와 20세기 철학’이란 주제로 포퍼가 주장한 비판적 합리주의를 20세기 철학의 중심사상으로 부각시키는 기조강연을 했고, 요셉 아가씨(Joseph Agassi), 알란 무스그레이브(Alan Musgrave), 안토니 오히어(Anthony O’Hear), 브라이언 매기(B. Magee), 데이비드 밀러(David Miller), 제리미 세어머(Jermy Shearmur) 등 이름난 포퍼의 제자들이 나름대로의 특색있는 논문들을 발표해 학술대회를 다채롭게 수놓았다.

논문 발표는 8개 분과로 나눠 진행됐는데 3백 편에 가까운 논문이 발표됐다. 8개 분과란 ‘물리학의 철학’, ‘생명과학의 철학’, ‘사회과학의 철학’, ‘도덕 및 정치철학’, ‘논리학과 과학의 방법론’, ‘인식론과 형이상학’, ‘칼 포퍼의 생애’ 등의 분과와 하나의 특별분과를 의미하는데, 이러한 분류는 포퍼가 생전에 관심을 갖고 탐구한 영역을 중심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이런 분과들 중에서도 특히 많은 관심을 끈 분야는 ‘생명과학의 철학’과 ‘도덕 및 정치철학’의 분과였다고 할 수 있다.
‘생명과학의 철학’ 분야에서 논의된 핵심주제는 포퍼가 해석한 ‘다윈주의’였다. 포퍼는 추측과 논박을 통한 지식의 성장과정을 사상의 다윈주의(Darwinism of ideas)라고 부르고자 하며, 동시에 모든 삶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해석한다. 그렇지만 포퍼의 이런 진화론적 인식론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난점을 갖고 있다. 하나는 무작위적 생물학적 돌연변이와 무작위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과학적 가설의 창안을 같은 차원에서 비교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다윈의 진화론은 진보적인 발전을 함축하지 않지만 이를 응용한 포퍼의 인식론은 진보를 함축한다는 점이다.

‘도덕 및 정치철학’의 분야에서는 포퍼의 ‘열린사회’를 어떻게 재해석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중심적 화두가 됐다. 그의 열린사회는 원래 파시즘과 나치즘, 그리고 맑시즘이라는 전체주의의 닫힌사회(closed society)에 대항해 자유사회를 옹호하기 위해 제창된 사회이념이었다. 그렇지만 전체주의 사회들이 현실적으로 대부분 패망하고 과거에는 상상도 못했던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는 오늘날 그의 열린 사회의 이념은 어떻게 해석되고 발전돼야 할 것인가, 그리고 이제 열린 사회의 적은 어떻게 규정돼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새로운 주제였다.

포퍼는 그의 명저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우리가 통상 위대한 사상가로 평가해 온 플라톤, 헤겔, 맑스를 모두 전체주의자들로 규정하고 열린사회의 적으로 선고했다. 그렇지만 전체주의는 이론상으로는 여전히 열린사회의 적이지만, 현실적으로 전체주의 사회는 거의 붕괴된 상태이므로 현실적인 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이제 열린사회의 적은 무엇으로 규정돼야 할 것인가. 사람들의 관심을 끈 해석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 번째의 적은 아마도 독단적이고 배타적인 교리를 신봉하는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이 분명할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믿는 종교만이 선이고 진리이며 다른 종교는 악이며 거짓으로 간주하는 광신자들이다. 물론 여기에는 상황의 변화를 무시하고 낡은 이념 그 자체를 고수하려고 하는 이념적 근본주의자들도 포함된다. 다음으로 열린 사회의 적은 배타적 민족주의나 인종주의가 될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속한 민족이나 인종만으로 하나의 닫힌 사회를 구축하고자 하며 타민족이나 인종과의 더불어 사는 삶을 거부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진화론적 인식론’과 ‘열린 사회’에 대한 재해석은 향후 비판적 합리주의 철학의 중심주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포퍼의 철학은 기본적으로 실재론과 객관주의 그리고 합리주의로 짜여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연히 관념론과 상대주의 및 비합리주의와의 대결은 불가피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예측된다. 이번 학술대회의 가장 큰 의미는 21세기의 새로운 시대에 비판적 합리주의 철학이 무엇을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에 대한 총체적 모색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