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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호기심 자극하는 과학철학 입문서
지적 호기심 자극하는 과학철학 입문서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3.04.22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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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_ 『과학의 방법』 배리 가우어 지음|박영태 옮김|이학사|561쪽|28,000원

이 책은 영국 더덤대 명예교수로 있는 배리 가우어의 저작으로, 많은 연구자가 참조하는 과학철학서로 꽤나 알려져 있다. 자연 세계를 탐구하는 방식인 ‘과학의 방법’의 역사와 철학을 다루면서 방법의 문제가 과학자들의 작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과학의 방법을 철학적 허구라고 보는 인식에 과감하게 도전한다. 또한 17세기 이후 과학의 방법에 관한 논의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면서 과학이 발전하고 신뢰성을 얻어가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갈릴레이부터 시작해 포퍼, 카르납 등에 이르는, 과학철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인물들을 호명해 조명했다. 이번 번역판은 원문에는 없는 몇 가지가 덧붙여졌다. 관련 논의의 시대적 배경, 과학과 논리, 확률에 관한 기본 지식을 제공하기 위해서인데, 옮긴이가 본문의 난해한 내용을 설명하는 각주를 달고, 주요 용어와 인명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부록으로 넣었다. 과학철학 입문자들에게는 이 부록이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가우어는 과학자의 작업을 수사관의 수사에 비유한다. 어떤 수사관이 범죄 혐의자를 올바로 색출하고 범죄를 성공적으로 해결했다고 할 때, 이 성공에 대한 설명에서 중요한 부분은 그러한 색출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한 추론의 설득력 정도가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과학자들이 성공적으로 작업한 부분을 설명하려면 그들이 사용한 방법을 언급할 수밖에 없다. 과학적 주장의 신뢰성에 대한 좋은 대답은 그 주장이 입증되는 방식을 밝히는 것이다.

과학적이고 그래서 신뢰할 만하다고 간주되는 주장은 과학의 방법에 의해 입증됐기 때문에 ‘그렇게’ 간주되는 것이다. 즉 새로운 지식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과학자들이 사용한 추론을 밝혀야 하며, 이것은 과학의 방법에 대한 이해를 통해 가능하다. 가우어는 이 점이 우리가 과학의 방법을 탐구의 영역에서 배제하지 말아야 하는 중요한 이유라고 강조한다. 특히 이 책에서는 ‘확률(probability)’이라는 관념의 역할을 강조한다. 저자가 확률의 관념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러한 확률의 관념을 다시 소생시키는 흥미 있는 작업들이 최근에 많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 과학의 방법에 관한 논의들은 과학의 방법이 기본적으로 확률적 방법이라는 견해를 지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견해를 무시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에서다.

저자가 과학철학사의 주요 인물들을 한 자리에 잘 모아놓았기 때문에, 한 눈에 보기에도 갈릴레이에서부터 쿤까지의 과학철학의 흐름을 엿볼 수 있는 게 이 책의 미덕이기도 하지만, 개별 인물 하나하나를 쉽게 풀어가는 방식 자체도 저자가 주는 ‘보너스’라고 할 수 있다. 뉴턴까지야 잘 알려져 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라이프니츠, 베르누이 일가, 베이즈로 이어지는 저자의 설명은 흥미롭다. 라이프니츠는 가설적 추론을 증거와 이 증거로부터 이끌어낸 결론의 관계로 보고 이에 대해 법적인 조건부 권리의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베르누이 일가와 베이즈는 가설적 추론에 관한 논의를 활성화했다. 이들에 따르면, 가설적 추론은 확실성의 정도가 다양하게 나타나는 결론을 만들어내며, 이 결론을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개연성의 정도를 측정하거나 가중치를 평가하는 방식과 무차별의 조건이 필요하다. 특히 베이즈는 처음으로 무차별의 원리를 전제하고 사전 확률을 수치로 계산할 수 있는 방식(베이즈의 정리)을 제시했다.

조금 역사를 건너뛰어 보자. 케인스는 예측의 성공만으로 가설의 진리를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퍼스를 비판하면서 주관주의적 확률 개념을 제시했다. 이 개념에 따르면 확률은 빈도가 아니라 명제에 부여하는 합리적인 믿음의 정도이고, 증거와 결론 간의 부분적인 함축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논리학의 한 분야가 된다. 케인스는 증거와 결론의 함축 정도를 잘 모를 때 무차별의 원리를 적용할 것을 주장한다.

램지는 비율로 생각하는 확률은 객관적인 특성을, 믿음의 정도라고 생각하는 확률은 증거와 관련해 상대적으로 나타나는 주관적인 특성(심리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주관적 측면을 강조한 케인스를 비판한다. 카르납은 귀납적 추론이 과학의 방법으로서 실제로 사용되고 있고, 또 신뢰성도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다는 현실에 입각해 연역적인 추론과 같은 형식논리적인 추론 체계로 귀납적 추론을 설명할 수 있는 기법을 개발했다. 저자의 결론? 그는 이 책의 결론에서 실험만이 과학의 방법을 특성화할 수 있다는 입장을 비판하면서, 과학의 탐구에서 사회적 요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쿤의 입장과 상대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과학의 방법에 관한 ‘유클리드적 방법’과 ‘반이론적 방법’에 관한 논의를 검토한다.

과학의 방법을 정당화하는 데 자연주의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잊지 않고 제시한다. 책을 번역한 박영태 동아대 교수(철학과)는 10년 전에 『과학철학의 이해』를 번역 출간한 바 있다. 그는 이 책을 가리켜 “현대 과학의 특성을 대표하고 있는 수학과 실험의 방법이 과학의 방법으로 자리 잡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동시에 귀납적 방법의 정당성 확보에 관한 논의 과정을 가설적 추론과 확률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라고 소개했다. 그렇지만 이런 말도 빼놓지 않았다. “특히 이 책은 간결하지 않은 정통 영국식 영어로 쓰였기 때문에 번역 문장들이 길어질 수밖에 없어서 걱정과 우려가 앞선다.” 그래서 옮긴이는 자신의 메일 주소를 공개하면서, 잘못된 부분에 대해 과감하게 지적해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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