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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막스 略史
카페 막스 略史
  • 교수신문
  • 승인 2013.04.15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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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카페 막스’는 30년대 이른바 프랑크푸르트 학파라고 불리는 일군의 학자들의 산실이 된 독일의 사회연구소의 별칭이다. 이 별칭은 그 연구소를 이념적으로 현실적으로 이끌었던 막스 호르크하이머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1924년 개소한 이 마르크스주의적 지향의 연구소는 1930년 막스가 2대 소장으로 취임하면서 좌파의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전통 마스크스주의와는 다소 다른 방향을 지향하기 시작한다. 연구소의 이러한 새로운 이념적 경향은 많은 혁신적인 지성인 그룹들과 교유로 이어진다. 1930~1940년대 격동기에 벤야민, 노이만, 마르쿠제, 크라카우어, 프롬, 뢰뵌탈 등이 참여했고, 전후 50년대 아도르노의 조교였던 하버마스가 연구원으로 참여한다.

한 연구소에 이후 독일 현대지성사의 주축이 되는 학자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 것은 오늘날 경이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1930년대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하면서 미국으로 거점을 옮겨간 연구소에 공간을 제공했던 당시 콜럼비아대의 한 비서는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1층에 마르쿠제가 앞에 노이만이 뒤에, 2층에 폴록이 앞에 뢰벤탈이 뒤에, 4층에는 호르크하이머가 앞에 책임비서가 뒤에, 옥상층에는 키르히마이어와 다른 연구조교와 장학생들이 있었다.” 이들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었던 힘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우선 그것은 연구소의 실험적인 어젠다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호르크하이머는 ‘경험과학들에 철학으로 영혼을 불어넣’는 ‘철학적 지향의 사회연구’를 어젠다로 제시한다.

특히 이 연구소의 연구경향은 호르크하이머의 논문제목에서 유래하는 ‘비판이론’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기서 ‘비판’이라는 말은 칸트의 ‘비판’보다는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에 가깝다. 마르크스를 전유하면서도 마르크스와 길을 달리하는 비판이론의 길은 철학, 정신분석학, 사회학, 정치학, 미학 등을 이 어젠다의 우산 아래 결집키면서 전통적 학문의 흐름과 맥을 재구성하는 혁명적인 성과를 만들어낸다.

관념론과 사회적 지배의 문제를 구성적으로 맥락화하는 아도르노, 정신분석학과 혁명을 유기적으로 연계시키는 마르쿠제 등의 학문적 경향과 성과는 이러한 어젠다에서 비롯된다. 이것이 ‘맑스(Marx)’에서 ‘막스(Max)’로 가는 길이었다. 막스의 어젠다를 범상하지 않은 수준에서 수행할 수 있었던 막강한 인적 재원들은 두 번째로 이 연구소 힘의 배후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을 하루아침에 키워낼 수 있지도 않고, 어느날 갑자기 모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침 시대가 요구하는 어떤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지성인 그룹들은 카페 막스의 어젠다 아래에서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지면서도 비판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을 학계에 관철시키기 시작했다. 1950년대 독일로 되돌아온 연구소는 매카시의 반공주의 노선에 따른 일군의 지식인들의 공격에 노출되기도 한다. 이는 연구소의 ‘돈줄’을 겨냥하고 있었다. 당시 미국은 전후 사회연구와 독일의 민주주의적 계몽을 위해 사회연구소를 후원했고, 여러 연구프로젝트들을 위탁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후원에 기대었던 것은 막스로서는 폭격으로 날아가버린 연구소 건물을 새로 마련하고, 참여인력들에게 경제적 뒷받침을 하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다른 한편 정반대로 1960년대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된 행동주의적 학생들의 도전에 직면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순적 정황은 연구소의 어젠다를 상호 이질적인 방식으로 풍부하게 발전시켜온 카페 막스의 고유한 특징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했다. 핵심멤버들은 1970년대 이전에 사망했고, 하버마스 등을 위시해 뜻을 달리하는 사람들은 이후 각자의 길을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스의 사회연구소는 독일의 지성사의 한 큰 획을 긋고 있고, 지금도 그 연구소가 남긴 학문적 성과는 독일에서 주요한 지적 유산으로 정밀하게 정리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의 불꺼진 분화구들 가운데 하나’(루만)에서 부터 ‘지성의 고공에서 바라보는 지옥으로서의 현실인식’(마틴 제이)에 이르기까지 카페 막스의 성과들에 대한 독일 내외의 비판도 이러한 지성사적 정리의 과정에서 비롯된다. 그런 지적들은 물론 충분해 보이지도 않고 일정한 편향을 보이기도 한다. 다만 그러한 쟁점들과 더불어 카페 막스의 학문적 어젠다와 성과를 검토하는 것은 오늘날 새로운 학문적 비전을 창출하려는 노력들과 불가분의 작업이라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근래에는 아도르노, 벤야민, 크라카우어 등에 대해 보다 전문적인 수준의 번역과 소개가 이뤄지고 있다. 어려운 출판환경 속에서 고무적인 일이다. 이들 개개인의 학문만큼이나 지성사의 문맥에서 이들 그룹의 어젠다와 연구성과에 대한 조명도 동시에 이뤄져서 국내 학계에 좋은 자양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창남 서평위원 / 한양대·비교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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