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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그늘 벗어나야 지역 명문사학으로 도약”
“재단 그늘 벗어나야 지역 명문사학으로 도약”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3.04.08 13: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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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대 교협이 ‘총장 선임 재고’ 요구한 이유는

“총장이라고 할지라도 재정운영 결정권이 없었으며, 법인 기획실에서 모든 것이 이뤄졌다. 심지어 의대 편입 등 면접 장소까지 (설립자) 이홍하 씨가 나와 지휘했다.” 전국에 4개 대학을 운영하면서 1천억 원이 넘는 교비를 횡령해 구속된 서남대 설립자 이홍하(74세) 씨의 재판에서 김 아무개(57세) 서남대 총장이 지난 3일 한 말이다.

김 총장의 법정 진술에서 보듯 설립자 이 씨는 ‘허수아비 총장’을 내세워놓고 대학을 마음대로 주물렀다. 서남대 한 곳에서만 330억 원의 교비를 횡령했다. 김 총장은 이 씨의 비리를 알고 있었는데도 7년간이나 총장 자리에 있었다. 교육부는 지난 1월 서남대에 대한 특별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김 총장에 대해서도 해임을 요구했다.

이른바 ‘바지 총장’을 내세워 이사장이나 설립자가 전횡을 일삼는 이런 일이 서남대에서만 ‘특별히’가능했던 일일까. 적어도 거버넌스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사장이나 설립자가 마음먹기에 따라 다른 사립대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상당수 사립대가 총장 선임 절차를 구체적으로 마련하지 않고 법인 이사회가 일방적으로 총장을 선임하는 탓이다. 교육부가 지난 2011년 10월 전국 68개 사립대를 대상으로 총장 선출 방식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51개 사립대(75.0%)가 이사회에서 총장 후보를 공모해 선임하거나 직접 임명하고 있다. 총장추천위원회를 통해 간선제로 총장을 선출하는 사립대는 11곳(16.2%)이다. 3개 사립대학(4.4%)는 직선제와 간선제를 절충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직선제로 총장을 선출하는 사립대는 대구대와 신라대, 을지대 등 3곳에 불과했다(직선제를 실시하고 있는 한국외대 등은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제외).

더욱이 총장 선출 규정조차 제대로 없는 사립대가 많다. 동의대 교수협의회가 교육부 조사를 바탕으로 추가 확인한 결과 총장 후보 추천 절차를 구체적으로 마련하고 있으면서 규정을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있는 사립대는 68곳 가운데 32.4%(22곳)에 불과했다. 박순준 동의대 교수협의회장(54세, 사학)은 “총장을 법인 이사회에서 일방적으로 선임함으로써 이사장 또는 이사들의 입김이 학교 운영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돼 공공재산인 사립대의 사유화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전적으로 재단의 뜻에 따라 선임된 총장은 실질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없고 끊임없이 재단의 눈치를 봐야 해 재단의 학사개입을 초래하게 된다. 반대로 총장이 재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독자적 권한을 행사하려면 갈등으로 비화돼 대학 운영 자체에 어려움을 초래하기도 한다.” 박 회장의 계속된 지적이다. 

동의대 교수들이 재단의 일방적 총장 선임에 재고를 요구하고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동의대 교협은 2009년부터 총장 선출에 구성원 참여를 요구해왔다. ‘총장후보자추천위원회’를 구성하는 간선제 방식이다. 동의대는 현재 별다른 규정 없이 사립학교법에 따라 이사회가 총장을 직접 임명한다. 현 총장의 임기가 이달 말로 끝남에 따라 동의대 교협은 오는 10일 정기총회를 열어 총장 선출에 관한 규정을 만들고, 구성원 참여를 보장하라고 재단에 요구할 예정이었다.

그러자 동의대 학교법인은 지난 3일 ‘갑자기’ 이사회를 열어 심 아무개(57세, 법학) 부총장을 차기 총장으로 선임했다. 갑작스럽다고 보는 것은, 지난 3월 28일 이사회를 개최한지 1주일도 안 돼 다시 이사회를 열어 차기 총장을 선임한 탓이다. 박 회장은 “총장 선출에 구성원 의사를 반영해 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했는데도 이사회가 절차를 진행해버렸다. 총장 선임을 재고해야 한다. 이사회가 일방적으로 선임하는 것이 아니라 총장 선출에 관한 절차적 규정을 만들고 구성원과 의논하고 합의해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동의대 기획처 관계자는 “일정은 예정돼 있었는데 다른 안건이라 별도로 한 것이다. 5월부터 임기가 시작이라 아직 공식발표는 안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교협이 ‘총장 선출 참여권 확보’를 요구하는 것은 동의대가 ‘문제사학’이어서는 아니다. 박 회장은 “구성원의 뜻이 반영되는 총장을 모셔야만 통합과 소통을 이룩할 수 있고, 닥쳐올 대학 구조조정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총장이 재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실질적으로 아무런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는 상태로는 지역의 명문대학으로 도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동의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박 회장은 “최근 국무총리나 장관을 임명할 때 철저한 검증이 진행되면서 후보자의 경력과 전력에 문제가 있는 경우 사퇴가 잇따르는 등 사회 모든 분야에서 책임있는 자리에 오를 경우 철저한 검증과 평가가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도 사립대 대부분에는 그런 검증과 평가의 초보적 단계마저 명문화돼 있지 않다는 것은 대학이 사회적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지적했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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