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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8·15민족통일대회
[시각] 8·15민족통일대회
  • 교수신문
  • 승인 2002.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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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31 14:50:00
김창수 / 민화협 정책실장

지난 6월 29일 발생한 서해교전사태 이후 남북관계는 장기간 소강상태로 빠져들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 4월 임동원 대통령 외교안보통일특보의 방북을 계기로 소강국면에서 벗어나는 듯했던 남북관계는 최성홍 외교통상부 장관의 발언으로 꼬이면서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서해교전사태까지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서해교전사태에 대한 유감을 표시한 이후 남북관계는 변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다. 7차 장관급 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에서 임동원 특보가 방북해서 합의한 4·5 합의문의 내용을 중심으로 그 동안 합의사항을 실천하는 문제를 다루기 위한 7차 장관급회담을 7월 12일부터 14일까지 서울에서 열기로 합의했다.

앞으로 남북관계는 7차 장관급회담을 비롯한 각종 당국간 대화 재개, 남북축구경기, 부산아시안게임에 북측 선수단 참가, 5차 이산가족 상봉 등 6·15 선언 발표 이후의 상황과 같이 활발하게 움직일 것이다.
8.15 민족통일대회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열리게 됐다.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 사이에 민간차원의 공동행사는 4차례 있었다. 2001년 6월에 금강산 민족통일대토론회, 8월에 평양 민족통일대축전이 열렸고, 비록 성사되지 못했지만 2002년 2월 금강산 새해맞이 민족공동행사를 시도했고 이어 6월에는 금강산 민족통일대축전이 열렸다. 이 4차례의 행사는 모두 남북 당국간 대화가 단절된 상황에서 민간이 남북 대화의 맥을 잇는 역할을 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서울에서 열린 8·15 민족통일대회는 7차 장관급 회담 직후에 열렸고, 이후 남북간 대화를 예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열렸다. 따라서 8·15 민족통일대회는 예정된 여러 행사들을 보장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8·15 민족통일대회에서 돌출행동이 발생했다거나 성공적으로 개최하지 못했다면 예정된 남북행사에 심각한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8·15 행사를 준비하면서 평양과 금강산에서 두 차례의 실무접촉을 가졌다. 실무접촉에서 남과 북은 과욕을 부리지 말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내실 있게 진행하기로 약속하였다.

이러한 약속에 따라서 남측의 ‘2002 민족공동행사 추진본부’는 북측 대표단이 서울을 방문하는 것에 대한 대규모 환영단도 조직하지 않았다. 행사장 주변에 많은 인원이 집결하지도 않았다. 보수단체들을 방문하여 이번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도록 협조를 부탁하기도 했고, 정부의 요구를 수용해 개막행사장소를 올림픽 펜싱경기장으로 했던 계획을 워커힐호텔로 수정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민족통일대회는 큰 탈없이 치러졌다. 8·15 민족통일대회의 개최로 앞으로 예정된 여러 가지 남북행사들은 탄력을 받게됐다. 특히 남북축구경기나 아시안게임에 북한 선수단이 참가하는 것은 남쪽 국민들이 가장 희망하는 사안이다. 북한이 남쪽 국민들이 희망하는 것을 수용한 것은 남쪽에서 통일문제에 대한 분위기를 좋게 하기 위한 것이다. 축구나 아시안게임 참가를 통해서 분위기를 좋게 함으로써 다른 여러 가지 남북대화를 촉진시키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쪽의 대규모 인원이 서울을 방문하여 열린 8·15 대회가 계기가 되어서 2002년 하반기에 남북관계가 급물살을 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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