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16:25 (일)
‘이와쿠라 사절단’의 영국 읽기
‘이와쿠라 사절단’의 영국 읽기
  • 교수신문
  • 승인 2013.03.04 16: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1871년 11월, 메이지 정부는 그동안 서구 열강과 맺은 불평등조약을 개정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을 순방하는 대규모 사절단을 파견했다. 이와쿠라 도모미(岩倉具視)를 전권대사로 하는 이 사절단은 참가인원만 하더라도 백 명이 넘었다. 일행의 주된 목표였던 조약 개정은 첫 번째 방문국인 미국과 협상에서부터 좌절됐고, 유럽 순행과정에서도 각국의 비협조적인 태도 때문에 이야기를 꺼내기조차 쉽지 않았다.

이런 좌절 속에서도 이와쿠라 일행은 방문하는 나라의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를 하나라도 자세히 관찰하려고 했으며, 당시 세계를 지배하는 서양 각국이 어떻게 그와 같은 국력을 갖추게 됐는가를 살피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니까, 일본보다 앞선 나라들이 이룩한 문명을 관찰해 자기나라의 부국강병 행로에 보탬이 될 만한 정보를 모으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총 다섯 권에 달하는 이 방대한 보고서는 영어 이외에 다른 외국어로 번역된 적이 없다.

2011년 말에 박삼헌 건국대 교수를 비롯한 일본사 연구자들과 국문학 전공자인 정선태 국민대 교수 등이 해제를 쓰고, 정애영 고려대 강사가 번역에 나서서 다섯 권의 방대한 한글 번역본을 내놓은 것 자체가 대단한 작업이다(『특명전권대사미구회람실기 1~5』, 소명출판 刊.) 물론 이 보고서는 사절단 일행 여러 사람이 보고 느낀 것을 모두 정리해 기술하지는 않았다. 그 사절단 공식 수행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구메 구니타케(久米邦武)라는 젊은 관료가 자신의 관찰기록을 토대로 정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서양문명에 대한 보고서의 시각과 견해는 사절단 다수가 공감한 내용이었을 것이다.

최근 나는 보고서 영국편을 꼼꼼히 읽었다. 이 책에서 특히 흥미로운 것은, 사절단이 수도 런던에만 주로 체류하지 않고 전국의 주요 공업도시를 빠짐없이 방문해 그곳의 대표적인 공장과 산업시설들을 둘러봤다는 점이다. 그들이 예방하기로 한 빅토리아 여왕이 마침 스코틀랜드 발모럴 성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대기하는 동안 영국 각지를 여행하며 근대 산업문명의 요람이라 할 수 있는 공업도시들을 답사한 것이다. 영국의 주요산업인 섬유, 조선, 제철, 기계 분야의 유수한 공장들을 방문할 때마다, 그들은 생산과정과 각 단계별 공정을 세밀하게 관찰해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공업도시의 전반적인 실태까지 자세하게 기록했다. 이 내용만으로도 빅토리아 시대 영국 경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사절단은 영국의 산업문명을 경이롭게 바라보면서도 그 내부에 나타난 부작용과 부정적인 면모를 예리하게 집어내어 비판하고 있다. 노동계급의 빈곤과 실업이라는 문명사회의 모순을 언급하기도 하고, 산업화에 따른 공해와 대기오염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유산계급의 재산소유권을 절대적으로 보장하는 근대 법률체계가 사회적 양극화를 더 심화시키는 현실을 비판한다. 이와쿠라 보고서가 출간된 이후 일본의 관료와 식자층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다만, 이 대규모 사절단 파견은 근대 유럽의 역사에서도 전례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방문하는 나라마다 상당한 관심을 끌었던 것 같다. 영국의 경우 <더 타임즈>지나 <맨체스터 가디언>지가 여러 차례 이들의 동정과 여정을 보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에 관한 해설기사를 통해 그 당시 일본의 주목할 만한 변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대체로 이들 신문 기사 논조는 일본의 새로운 정치개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 그 실험이 서양 이외의 곳에서 처음 시도되는 문명화작업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먼 동아시아에서 온 이국인들이 신기했을 것이다.

이들이 방문하는 도시마다 시장과 시민들이 함께 환영행사를 열었고, 유력한 공장주들이 이들을 초대해 공장시설을 견학시켜 줬다. 물론 핵심적인 공정은 상세하게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사절단의 동정을 보도한 신문 기사와 해설들을 검토하면서, 후일 일본 지식인들의 ‘탈아론’의 싹이 이미 돋아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절단을 대하는 영국인들의 환대, 그 이면에는 불평등조약을 계속 유지하고, 다른 한편으로 문명화를 추구하는 일본을 상대로 상업적 이익을 도모하려는 의도가 깃들어 있었을 것이다. 이와쿠라 사절단이 그것을 몰랐을 리 없다. 그리고 일본은 그들이 원했던 문명화작업에 성공을 거두자마자 곧바로 그 불평등조약을 동아시아 지역에서 재생산하기에 바빴다. 역사의 아이러니라 아니할 수 없다.

이영석 서평위원/광주대·서양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