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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연구자들이 살아가는 ‘끈적끈적한’ 이야기
젊은 연구자들이 살아가는 ‘끈적끈적한’ 이야기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3.02.19 14: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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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_ 상허학회는 왜 <쉬플레망 상허>를 냈나?

상허학회(회장 박헌호)가 지난해 말 <쉬플레망 상허>(2012.ver.1.0, 이하 <쉬플레망>)라는, 학회지 <상허학보>를 보완하는 또 하나의 간행물을 낸 데는 두 가지 배경이 있다. 하나는 이 학회가 2012년으로 창립 20주년을 맞았다는 기원의 문제고, 다른 하나는 오늘날 ‘문학 연구자들의 소모임에서 벗어나 한국 근현대의 문화를 종횡하는 많은 연구자들의 방문소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기능적 배경이다. 연구재단 등재지에 올라 있는 <상허학보>를 간행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쉬플레망> 출간은 의외의 행보다. 이들은 왜 ‘보완적 잡지’가 필요했을까(‘쉬플레망’은 불어 supplement을 가져온 것이다). 이 질문의 답을 찾아보는 일은 위축되고 있는 인문학 연구자들의 정체성, 자의식 찾기와 연결된다.

석·박사 과정 중에 상허학회에 발을 디뎠던 연구자들이 어느덧 각 대학에 포진해 제 목소리를 내는 중년의 학자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 2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도대체 국문학 연구가 무엇이며, 문학 연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여전히 일부는 시간 강사 등으로 연명하면서 연구에 매달리는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등의 문제의식으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이 보기에 이러한 주변적 연구 상황은 학회 공식 채널(학술대회와 학회지)로 소화하기엔 한계가 있는 것들이지만, 분명 연구자로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이다. <쉬플레망>의 구성을 보더라도 이러한 문제의식이 잘 나타나있다.

특집 좌담으로 「한국문학 연구의 미래, 불안과 희망」(장성규, 김대성, 오자은, 이종호, 최병구, 양순주)을 배치해, 연구 좌표를 잡았다. 문학연구자들에게 아이디어를 밝혀주는 각종 책읽기를 활용해 「책 속에 길이 있다」(신형기 외)라는 코너를 마련했다. 더 흥미로운 것은 과거 1930년대 <삼천리>지가 자주 활용했던 방식인 ‘앙케이트’를 복원한 「연구자에게 묻는다」다. 20여 명의 젊은 연구자들의 솔직 담백한 대답을 담았다. 이들의 자의식이 햇살처럼 드러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학술대회로 본 한국문학 연구 10년」(장문석, 최은혜), 「상허학회와 ‘학진’ 체제」(이선미), 「상허학회 만들 무렵」(김한식), 「통계로 본 상허학보」(황호덕) 등도 첫 호의 얼굴답다. 특히 좌담 「한국문학 연구의 미래, 불안과 희망」과 앙케이트 「연구자에게 묻는다」는 좀 더 눈길을 잡아끈다. 좌담이 눈길을 끄는 것은 주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참석자들의 면면때문이다.

이들은 국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거나 졸업하고 ‘시간강사’로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는 젊은 연구자들이다. 좌담 사회를 맡은 장성규의 말을 들어보자. “결국 젊은 연구자들의 불안은 우리 스스로의 교감과 연대를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오늘 좌담이 의미를 지니는 것은 서로간의 대화를 통해서 부족하게나마 희망의 단서들을, 아니 정확하게는 희망의 단서를 찾고자 하는 동료들의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목소리는 앙케이트 「연구자에게 듣는다」에서도 거듭 확인할 수 있다. 응답한 이들은 박사졸업 10년 안팎의 30~40대 남녀 연구자들로, 확실한 신분적 안정을 취득하지 못한 상태에 있다.

이들은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느냐는 질문에 ‘여전히 재밌기 때문에’, 또는 ‘정체가 흐물흐물한 울분’, ‘문학 연구 외에 재밌는 일이 없기 때문’ 등을 꼽았다. 슬럼프에 빠질 때와 이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은 ‘창의적인 시각이 없다고 느껴질 때,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가자고 마인드 콘트롤로 극복’, ‘경제적 곤란과 학문적 열등감이 찾아올 때,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공부를 계속해서 먹고 살 수 있을까 하는 생존의 고민, 또는 지금 하고 있는 연구가 의미 있는 것일까 하는 연구자로서의 근본적인 고민이 들 때’라고 답한 이들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이 선후배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선배)비록 너무 누추하기는 하나, 그래도 무엇인가를 가진 세대라는 자각을 가지고 미래를 향해 고민하고 질문하는 모습을 선도적으로 제시해야 하지 않겠는가? (후배) 주눅들지 말고, 당당하게!’, ‘동시대를 살아가는 비정규직, 혹은 계약직으로 생활을 하는 동료, 선배, 후배들을 보면 안쓰럽다. 굳건히 잘 버티면서 공부하자는 말밖엔…’,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학문공동체로서 후속 세대에 책임을 느껴야 한다’ 등 다양한 바람을 내놨다. 이러한 목소리에 이르면, 이들은 ‘쓸모없는’ 인문학 연구에 매달린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하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인문학 연구에 자기 삶을 던질 수밖에 없다는 단단한 자의식으로 서로를 응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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