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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勝者獨食’, 대학에도 스며들다
‘勝者獨食’, 대학에도 스며들다
  • 김미경 히로시마 시립대
  • 승인 2013.02.19 14: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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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_ 일본 대학들은 변화하고 있나

국제화 압력과 국내적 저항: 요즘의 일본 대학

'일본식 세계대학평가 기준' 제정 움직임
100여년 전의 멘털리티로 현재의 문제 풀 수 있을까

요즘 일본의 모습은 19세기 말과 매우 비슷하다. 1853년 여름, 미국의 페리 제독이 군함 4척을 이끌고 에도만에 나타나 교역을 요구한 사건을 계기로 일본은 세계 속에서 생존하고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만 했다. 치열한 논쟁 끝에 등장한 정책은 와콘요우사이(和魂洋才)로 표현됐다. 일본처럼 경쟁에서 뒤쳐지는 일 그 자체를 혐오하는 나라도 드물지 싶다. ‘절대로 질 수 없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아’, ‘끈질기게 승부를 낼 거야’, ‘근성을 가지고 싸울 거야’ 등등은 지기 싫어하는 性情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패전 후 경제건설에 이바지한 회사원들이 과거 무사계급인 ‘사무라이’로 불렸고 2008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에게 승리한 일본야구대표팀은 ‘사무라이 재팬’으로 불린다. 8년에 걸친 일본생활 동안 패자와 약자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승자독식이다. 이런 경쟁심이 국제화의 파도 속에서 도전을 받고 있다. 2011년 미국의 스텐다드 앤드 푸어사가 일본의 신용등급을 AA-로 하향 조정했을 때 경제계의 한 원로인사는 “서양의 회사 따위가 평가한 일본경제의 건전성에 관해 코멘트를 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는다”라고 발언했다. 일본의 국제적 위상이 위협을 받을수록 ‘우리 식’을 주장하는 폐쇄성도 같이 커짐을 읽을 수 있는 一例다.

대학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영국의 톰슨 로이터사가 발표하는 세계대학랭킹, 영국 QS사의 세계대학평가 등에 대응할 수 있는 ‘일본식 세계대학평가기준’을 만들자는 주장들이 요즘 힘을 얻고 있다. 아직까지 일본 대학들이 아시아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전반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유럽이나 북미의 대학들과의 경쟁에서는 열등한 현실에 대해 ‘우리 식’의 기준을 만들어 세계 속에서 입지하자는 논리다.

이런 움직임은 승자지상주의와 서양지향주의에서 기인한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성공적으로 교육근대화를 이룬 일본이 이 지역에서 우월함은 매우 당연한 일이기에 지금까지 비교와 동경의 대상이 됐던 서양의 대학들과 경쟁해 우수성을 인정받고 싶다는 희망이다. 100여 년 전 후진적인 아시아를 뒤로 하고 서양의 일부가 돼 팽창주의적 식민전쟁에 몰입해 백인의 나라 러시아를 이기고, 문화종주국인 중국을 침략하고, 대국으로 부상하던 미국을 공격했던 행위, 사고패턴의 연속선상이다.

작년 11월 민주당의 노다 내각에서 교육문부과학성 대신으로 임명된 다나카 마키코씨가 신설대학 3곳의 허가를 취소하면서 불거진 대학의 기능과 수준의 문제는 현재 일본의 대학들이 당면한 난관들을 그대로 드러낸다. 少子化로 인한 학생 수의 감소가 명약관화한 데도 대학을 증설하겠다는 발상과 인허가 과정에서 친분이 있는 인사들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의 공정성 등의 문제가 제기됐다. 이런 자기몰입적 발상과 근친교배의 문제점 이외에도 국공립 대학의 지배구조는 학문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고질적인 문제들을 안고 있다. 726개의 4년제 대학은 87개의 국립대, 현립, 시립을 포함한 지역공립대 86개 그리고 553개의 사립대로 구분된다. 총 173개의 국공립대의 경우 중앙이나 지방정부에서 대학으로 파견된 직업공무원들과 교원들 간의 갈등과 알력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안이다. 국공립대의 경우 행정관료들이 연구활동, 수업내용까지 간섭, 개입하는 월권행위가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자기책임을 강조하는 교원집단에 비해 상명하달의 조직문화를 가진 공무원집단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원의 활동에 제동을 걸어온 예는 허다하다. 인사이동 이후에도 과거의 전임자와 문제가 있었던 특정 교원들을 겨냥해 대를 물려가며 괴롭히는 행위 또한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이런 집단 이지메에도 불구하고 지배구조상 교육과 연구를 담당하는 교원집단이 대학의 주체이고 행정공무원집단이 부차적 지원의 주체라는 노동분업의 형태상 교원들이 겪는 하라스멘트(harassment)의 고충들이 법적으로 성립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2006년부터 2007년 사이에 모든 공문서에서 ‘젠더’라는 표기가 사라진 일이 있다. 교과목 설치, 강의내용, 연구용역의 영역에서도 ‘젠더’라는 기술은 금기시됐다.

그 이유는 당시 최고 집권자였던 아베 신조 현 수상이 양성평등에 매우 보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국공립대 구조 속에서 정부의 정책과 학문의 자유가 과연 어느 정도까지 평화공존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만 하는 현실은 일본 대학의 국제경쟁력 향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내적으로 대학을 평가하는 기준은 연구, 교육, 사회공헌 그리고 국제화의 네 가지 분야이다. 4년제 이상의 대학들은 대학원 중심의 연구대학, 학부 중심의 교양강의대학으로 나뉘지만 지역사회에의 공헌을 강조하는 산학협동분야, 그리고 외국인 학생수, 외국인 교원수와 해외교류 등으로 평가되는 국제화 분야는 일본 대학들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또 다른 요인이다.

서양출신의 남성 교원들과 그 이외 지역 출신의 여성 교원들이 대학이라는 일터에서 일상적으로 겪는 경험은 매우 다를 수 있다. 본국에서는 경쟁력을 가지지 못한 일부의 외국인 교원들이 대학의 시스템을 악용하는 사례는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서양지향적 일본의 사회, 심리적 풍토에서는 개선되기 어려운 현실이다. 학문의 자유, 사상의 자유 침해사례들은 일본 대학들의 수준향상에 근본적인 장애요인이며 사립, 국공립을 막론한 서양지향성 역시 우수인력의 채용, 보유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세계대학들의 기존 랭킹순위를 바꾸기 위한 일본식 평가기준의 개발과 홍보에 투자할 소중한 자원을 일본 대학의 수준자체를 세계적 기준에 맞춰 끌어올리려는 노력에 쏟는 것이 일본 대학들이 진정으로 입지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김미경 히로시마 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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