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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본화 사업’ 중요성 환기 … 자연과학과 만난 인문학의 가능성
‘정본화 사업’ 중요성 환기 … 자연과학과 만난 인문학의 가능성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2.12.24 14: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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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클릭!_ 2012년 인문사회분야, 어떤 일이 있었나

지난 6월은 고교 과학교과서에 실린 진화론의 사례들로 과학철학계와 종교계의 논쟁이 있었다. 문제의 발단은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위원회(회장 이광원 이하 교진추)가 교과부에 제출한 청원서. 교진추는 진화론의 증거로 고교 과학교과서에 실린‘시조새’와‘말의 진화과정’에 오류가 있으므로 삭제를 요청했고, 교과부가 별 다른 심의 없이 이를 받아들이며 학계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한국과학기술한림원(원장 정길생)에서 긴급히 전문가협의회를 구성해 고교 과학교과서 진화론 내용 수정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논쟁은 일단락되는 듯 보였지만, 지난 20일 교진추는‘화학적 진화’에 대한 세 번째 청원을 제기한 상태다.

다산 정약용 탄생 250주년을 맞아 벌어진 각종 행사, 학술대회, 『여유당전서』정본 발간 등 다채로운 사

수묵화가인 김호석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가 2009년에 그린 다산 정약용 초상화. 돋보기를 쓴 모습이 특이하다. 전남 강진 다산기념관 소장.
업이 연중 열렸다. 공식적인 행사만 해도 서울과 강진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전개됐다. 유네스코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 4인에 루소와 어깨를 나란히 한 다산에 대해 현재적 가능성을 짚었다고는 하지만, 500여 권에 달하는 다산 전집 번역, 그리고 이것의 대중화 작업 같은 내실 있는 작업으로 역량이 모이지 못했다. 이와 아울러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정본화 사업’이다. 번역, 해석에 가려 진정한 연구로 인정받지 못한 정본화 사업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지원으로‘한국 고전 텍스트 정본화 사업’10년의 결실을 내놓았다. 다산의『여유당전서』도 이 결과물 중 하나다. 한 민족의 의식, 사유, 정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에서 이태수 인제대 교수(학술협의회 이사장)는‘정본화 사업’ 이 표준화되고 인터넷서비스까지 마치려면 국가주도의 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과학계와 인문사회학계의 교류도 풍성했던 한 해였다. 말로만 외치는 통섭, 융합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학제간 교류가 물꼬를 텄기 때문이다. 고등과학원(원장 김두철)은 초학제연구단을 발족해 인문학자와 자연과학자가 1:1로 교류하며 공동으로 논문을 집필하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원장 정길생) 정책학부 소속 14명의 인문과학자는 자연과학자들과 함께 정부과학정책은 물론 한림원 내 학제간 교류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한화학회(회장 이덕환)는 한걸음 더 나갔다. 탄소문화상을 제정해 인문학자에게 수여함으로써 자연과학자와 인문학자의 소통을 꾀한 것이다.

2012년은 유신 40주년이 되는 해였다. 9월, 10월은 학계에서도 이에 대한 논의들로 활발했다. ‘역사가, 유신시대를 평가하다’를 주제로 모인 역사4단체 연합학술대회를 필두로, 역사문제연구소(소장 정태헌 고려대)의‘평등과 불평등의 역설, 유신체제를 묻는다’심포지엄, 학단협의 연합심포지움‘10월 유신을 말하다’등 여러 포럼이 개최됐다. 유신 40년을 기념해 학계 일부에서 논의를 제기한 것은 맞지만, 대부분 평이한 접근이 주를 이뤄 제자리를 맴돈 느낌이다. 그 중에서도 미시적 접근으로, 구체적인 삶 속에 투영된 유신체제를 분석한 김영미 국민대 교수(국사학)의「어느 농민의 생활세계와 유신체제」(역사가, ‘유신시대’를 평하다, 역사4단체 연합학술대회(2012.9.14~15) 발표가 주목할 만했다.

뜨거운 감자가 된‘우수학술지 지원사업’

한국연구재단(이사장 이승종 이하 연구재단)의‘우수학술지 지원 사업’도 한 해 동안 학계를 시끄럽게 했던 이슈였다. ‘생산성이 의심되는’수많은 소규모 학회까지 지원하기보다, 성장가능성이 큰 학회를 선정해 지원의 폭을 넓힌다는 연구재단의‘선택과 집중’에 대다수 인문사회 분야 학회에서는 격렬한 반대의사를 표현했다. 인문분야연합학회 격인 한국인문학총연합회(회장 김혜숙 이화여대)을 비롯한 인문분야 3개 학회가 정부의 우수학술지 정책에 반대하면서 신청을 철회하기도 했다.

 

지난 6월 국회에서 열린 '우수 학술지 지원' 공청회 현장

 

그렇다고 인문학계 전부가 연구재단의 정책을 반대한 건 아니었다. 최성호 경희대 교수(철학)는 <교수신문> (665호, 11월 19일)을 통해, 재정지원을 골고루 하는 것이 학계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논란이 됐던 우수학술지는 지난 20일 인문 분야에서 1개(한국영어영문학회가 발행하는 <영어영문학>)만 선정된 상태다. 학술지 지원 사업은 한번 시작하면 막대한 예산 문제, 기회균등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기 때문에, 관련 학회의 요청을 반영해 꼼꼼히 재검토 후 진행해야 한다. 덧붙여 외부 의혹을 불식하려는 학회 차원의 엄정한 노력도 필요한 시점이다.

창간 20주년, 100호를 맞는 계간지들도 많던 한 해였다. 과학의 엄밀성으로 문화를 들여다 봤던 <문화/과학>은 창간 20주년을 맞아 1세대 편집인 심광현 한예종 교수(영상학)와 강내희 중앙대 교수(영문학)가 퇴진하고 2세대 편집인인 이동연 한예종 교수(문화이론)와 이명원 경희대 객원교수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1992년 동구권의 붕괴와 1994년 나프타 출범, 신자유주의가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미국과 유럽을 잠식해 진보의 탈출구가 없던 시기, 포스트모더니즘과 마르크스주의를 절충해 이론 지형도에 충격을 가했던 <문화/과학>은 25명의 30~40대 젊은 편집위원들로 새로운 20년을 열어가고 있다. 1987년 민주화의 열기를 안고 태어난 계간지 <역사비평 > 도 지난 가을 100호를 냈다.‘ 역사연구의 대중화와 새로운 역사인식의 정립을 위한 대중역사서’라는 기치를 유지한 <역사비평>은 2005년 등재학술지로 전환됐다. 계간지로서는 드문 사례다. 95호부터 정병욱 고려대 교수(민족문화연구원)가 편집주간을 맡아 자본주의, 외세, 남북문제, 한국정치, 보수 언론, 종교 문제 등 다양한 주제에 걸쳐 비평적 행위를 지속해오고 있다.

아카데미의 사회적 발언‘계간지’의 힘

이번 겨울 <문학과사회> 도 100호를 맞았다. 리얼리즘계 <창작과비평>의 대척점에서 모더니즘을 추구하며“문학은 문학 특유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야기해야 한다”라는 문제의식으로 시작했던 <문학과사회>는 여전히 소외된 문학, 신진 작가 발굴에 힘쓰고 있다. 편집위원 체제로 운영되는 타 잡지들과 달리 문학적 색깔과 뜻이 맞는 사람들을 편집동인으로 해 운영되고 있다.

지난 10월, 95세의 일기로 타계한 ‘역사’가 된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과 여전한 마르크스의 ‘자본’에 대한 관심도 올 한해 학계에 계속해서 회자됐다. 마르크스가 없이도 역사를 읽을 수 있지만, 마르크스를 통해서 좀 더 깊게 역사를 읽어냈던 서구의 대 역사학자의 죽음에, 전세계가 애도했다. 그에게 많은 빚을 졌고, 빚을 지지 않은 다른 쪽에 대해서는 성찰해볼 지점을 제공했다는 것과 학자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환기했다는 점 등 그가 남긴 유산은 지금부터 천천히 풀어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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