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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기가 낳은 '인문학의 大丈夫'를 생각하다
바람기가 낳은 '인문학의 大丈夫'를 생각하다
  • 최재목 영남대ㆍ철학과
  • 승인 2012.12.24 12: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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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의 유랑ㆍ상상ㆍ인문학(29) 로테르담의 현자 에라스무스 동상 앞에서(1)

 

성로렌스 교회 앞 광장에 있는 르네상스기 인문학의 대표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 동상이 서 있다. 이게 네덜란드 최초로 만들어진 그의 동상이다. 사진=최재목
아직 바람이 쌀쌀한 3월 초순. 덴하그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델프트를 지나, 세계 최대의 무역항 로테르담으로 간다. 벨기에로 갈 때면, 늘 눈여겨보던 곳.

지도를 보니, 출렁이는 강물의 북쪽 60킬로미터에는 암스테르담, 북서쪽 20킬로미터에는 덴하그, 북동쪽 45킬로미터에는 위트레흐트, 남동쪽 45킬로미터에는 브레다가 있다. 암스테르담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곳. 그래봤자 60만 정도다. 서유럽 3대 강 라인강, 마아스강, 스헬트강이 북해로 흘러드는 델타 지구에 발달한 항만도시다.

옛 모습을 지켜온 다른 도시와 달리 로테르담은 현대적인 건축물이 즐비하다. 현대 건축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꼭 가보고 싶어 하는 곳. 큐브하우스 등 외관이 특이한 건물들을 보면‘아, 저런 발상법도 있구나! 생각은 자유!’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데. 거기로 가는 창가는 즐겁다.

쳐다보면 참 신기한 이국의 풍경들. 들판 위로 끊임없이 돋아나는 풀들.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병적인 인간의 화풀이처럼. 매일 깎아내도 돋아나는 골칫거리의 턱수염처럼. 無明草는 푸르고. 네덜란드의 풍경 속, 천천히 풍차를 돌리는 저 無明風 생각. 나의 유랑도 거기서 생겨나온 바람이거니. 바람아 불어라, 멈추지 마오!

로테르담 하면, 떠오르는 史實 하나. 일본 란가쿠(蘭學)의 출입처가 이곳이었다는 점. 우리나라를 돌이켜 보니, 문득 아쉬움이 생겨, 나는 이런 상상도 해 본다. ‘이때, 우리 조선도 일본처럼 네덜란드나 유럽에 많은 유학생을 파견했더라면….’

1863년 6월 6일, 일본의 니시 아마네(西周)ㆍ츠다 마미치(津田真道)가 군함조련소 士官, 의사 일행 등과 로테르담에 도착한 풍경을 떠올린다. 군함의 건조 등을 살펴보고, 해양 관련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일본 막부가 파견한 유학생들. 라이덴대 최초의 일본어 교수로 임용된(1855년) 호프만(J.J.Hoffmann)이 그들 일행을, 라이덴까지 데려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호프만은 1840년대에 일본을 통해 입수한 자료로 한국 연구를 한 사람. 그 뒤를 유럽 한국학의 개척자 중 한 사람인 프리츠 보스(Frits Vos) 교수가 잇는다(1947년 라이덴대에서 한국학 강의 시작).

이파리를 치켜 든 풀들의 아득한 푸른 지평선을 응시하다 보니, 벌써 기차는 중앙역에 도착한다. 큐브하우스, 해양박물관과 그 광장의 <심장이 찢겨진 남자>, 에라스무스대교 등을 둘러볼 생각.

에라스무스 대교는 1996년 준공한 이래 로테르담의 상징이 됐다. 시민들은 이 다리를 '백조'라고 부른다. 사진=최재목

나는 서둘러 성로렌스 교회로 향한다. 교회 앞 광장에는 유럽을 대표하는, 르네상스기 인문학의 대표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1469~1536) 상이 서 있다. 이게 네덜란드 최초로 만들어진 그의 동상이란다. 그는 이 교회 근처에서 태어났다는데, 유감스럽게도 그 생가 터는 남아있지 않고 동상만 서 있을 뿐이다.

신부의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사생아 에라스무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며, 방황과 방랑, 유랑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 삶의 바닥엔 순간의 바람기(無明風)가 있다. 권력과 종교를 비웃으며, 흔들림 없이,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았던 그. 그러나 書齋라는 장치 속에서 그는 늘 책읽기와 글쓰기에 묶여 있었다. 

인간, 너는 누구냐? 네 의식의 저면은 항상 어둡고, 더럽고, 지저분하다. 늘 순종과 반항, 선함과 잔인함, 神性과 惡魔性, 이성과 비이성, 창조ㆍ질서와 파괴ㆍ혼돈으로 表裏不同. 뭐 이런 이중인격을 숨기고 있는 게 바로 인간 아닌가. 어리석음(愚癡, 癡愚)이 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거다. 그래서 이성은 어리석음의 손아귀에 꽉 붙들려 있다는 사실을 시인해야 하는 걸까. 나는 도스토옙스키의『지하생활자의 수기』를 떠올린다.

‘나는 병적인 인간이다…나는 심술궂은 인간이다…실은 내가 무엇을 원하고 있었는지, 그걸 너는 알겠나? 다름 아니라, 너 같은 건 세상에서 없어져 버리라는 것이다! 나에겐 안정이라는 것이 필요해. 나는 타인으로부터 괴로움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면 당장에라도 온 세계를 단돈 1코페이카에 팔아버리겠다. 세계가 파멸하는 것과 내가 차를 마시지 못하게 되는 것과 어느 쪽이 큰일인가! 설사 온 세계가 파멸해 버린대도 상관없지만, 나는 언제나 차를 마시고 싶을 때 마셔야 한다. 이걸 너는 알고 있었나, 어때? 그래서 나는 더럽고 비열한 인간이고 게을러빠진 이기주의자라는 걸 나 자신 잘 알고 있어.’(이동현 옮김, 문예출판사, 7쪽, 181~182쪽)

온 세계가 파멸한다 해도, 늘 마셔오던 차를 마실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됐다는 이기주의자- ‘인간’. 고상한 척 하지 말자! 에라스무스야말로 이런 어리석음을 알아차리고 예찬한 위인이다.

슈테판 츠바이크의『에라스무스 평전』(정민영 옮김, 아롬미디어) 첫머리에 인용된 당대 사람들의 대답, ‘에라스무스는 늘 자기 자신만을 대표하죠’란 말처럼, 그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어느 누구도 편들지 않고 살았다. 동상처럼 그는 홀로 우뚝 저 자신만을 대표하였지만, 그는 ‘전 세계는 공동의 조국’임을 선언한 거인이었고, 세계를 그의 조국으로 여긴 대장부였다. 이런 정신은 유럽 통합의 상징이 되고 있다.

최재목 영남대ㆍ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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