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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런던, 20세기 런던, 그리고 21세기의 런던
19세기 런던, 20세기 런던, 그리고 21세기의 런던
  • 교수신문
  • 승인 2012.12.10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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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금 케임브리지대 울프슨 칼리지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다.
몇 주 전에 한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런던을 찾았다. 모임은 오후 늦게 열릴 예정이었지만, 오랜만에 런던 시내를 거닐어볼까 해서 일찍 도착했다. 자료 수집이나 연구 때문에 영국을 자주 방문하면서도, 10여 년 전부터는 런던 시내를 둘러볼 기회도 없었다. 밀레니엄 축제와 그리고 이번 올림픽 이후로 런던의 풍경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오늘날 런던은 국제적인 금융·문화 중심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런던이 유럽의 중심도시로 떠오른 것은 영국이 국제무역을 주도하게 된 18세기의 일이다. 그 무렵 새뮤얼 존슨은 자신이 런던 시민이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런던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거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반경 십 마일 이내 우리가 지금 자리한 이곳에 여타 세계가 가진 것보다도 더 많은 지식과 학문이 있지 않은가.” 그에 따르면, 런던은 인간의 삶이 가져다줄 수 있는 모든 것을 갖췄다. 19세기에 런던은 더 팽창하고 막대한 부를 누렸지만, 그만큼 그림자 짙은 도시가 되었다. 도시의 탁한 공기와 매연은 번영을 상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빈곤, 불행, 범죄, 질병의 이미지를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기도 했다. 시인 셸리는 이를 두고 “런던은 지옥과 똑같은 도시, 사람으로 혼잡스럽고 연기 자욱한 도시”라고 말했다. 20세기에 들어와 런던은 제국의 쇠락과 같은 궤도를 그렸다. 1950년대 초 런던 스모그는 도시민이 겪은 최악의 참사였다. 런던 외항이 개발되면서, 템스 강 양안에 자리 잡은 이전의 부둣가는 슬럼가로 변했다. 매연에 찌든 우중충한 건물색깔과 함께 이런 분위기는 국제도시 런던의 위상과 전혀 걸맞지 않았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를 낳는다.

한 세대에 걸쳐 런던은 도시경관을 개조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템스 강을 정화하고 매연을 줄이며 생태환경을 복원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한편, 밀레니엄 축제를 앞두고 영국 정부는 런던 낙후지역의 대대적인 재개발 사업을 벌였다. 템스강 양안, 구 런던 부두 인근지역의 슬럼가가 사라지고 새로운 현대식 건물들이 대신 들어섰다. 일부는 전시공간과 공연장으로 자리 잡아 런던 도시문화에 활력을 가져오기도 했다. 올해 열린 올림픽도 바로 런던 재개발의 일환으로 유치했을 것이다. 어쨌든 이런 노력에 힘입어 런던은 주목 받는 도시로 재탄생했다.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로서 위상을 굳건히 하고, 오늘날에는 유럽을 포함해 서구 문화의 추세를 가장 먼저 가늠할 수 있는 문화중심지가 되었다.

나는 런던의 변화가 궁금했다. 2001년 나는 런던 정경대학 도서관에서 한 달 정도 자료를 수집한 적이 있었다. 작업을 마치고 모처럼 템스강을 오르내리는 유람선을 탔다. 그 때 들었던 가이드의 농담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그는 강 남안에 서 있던 구 발전소 건물이 현대미술관으로 변했다고 소개하면서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고 알려주었다. 가치 있는 작품이 걸려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근처에 철제 현수교가 가로 놓여 있었다. 그 밀레니엄 다리는 보도용으로 만들었지만, 개통과 동시에 폐쇄됐다고 한다. 개통식에서 런던 시장 일행이 테이프를 끊고 다리를 건너던 도중에 강풍으로 심하게 흔들려 곧바로 되돌아 올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다리는 곧바로 폐쇄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기억을 더듬으며 테이트 현대미술관을 구경했다. 옛날 터빈발전기가 돌아가던 공간은 그대로 보존했다. 주위에 현대작가들의 작품을 다수 전시하고 있었다. 유파별로 분류한 것이 아니라, ‘구조와 명료성’, ‘에너지와 과정’, ‘시와 꿈’ 등 현대문명을 상징하는 개념어로 표제를 제시하고, 관련된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것이 새로웠다. 밀레니엄 다리를 지나면서 살펴보니, 좌우로 철제 빔을 더 보완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10여년 만에 다시 둘러본 런던은 이전에 내 눈에 비쳤던 것과 다른 경관을 보여주었다. 말로만 듣던 런던 르네상스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이 없어서 올림픽 경기장과 그 인근지역을 거닐지 못했지만, 템스강에서 바라본 런던은 분명 우중충한 때깔을 벗어버렸다. 그렇더라도 의문은 남는다. 옷이 날개라지만, 그 속은 어떨까. 유럽의 하늘에 경제위기의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 있는데, 이 도시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올림픽을 치렀어도 그에 상응하는 경제 활력은 찾기 어렵다고 한다. 다만 영국인의 자존심만 형식적으로 만족시키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다. 돌아오는 도중에도 나는 런던의 달라진 경관보다는 아무래도 유럽의 황혼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영석 서평위원/광주대·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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