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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드르에서 ‘아시아’·‘天圓地方’을 곁눈질하다
플랑드르에서 ‘아시아’·‘天圓地方’을 곁눈질하다
  •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 승인 2012.11.12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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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의 유랑·상상·인문학(26) 브뤼헤에서 안트베르펜으로 가는 길

 

안트베르펜의 루벤스의 집. 사진=최재목

‘저 언덕을 넘어서면 새 세상의 문이 있다’는 유행가(「대지의 항구」)처럼, 브뤼헤에서 다시 안트베르펜(앤터워프)으로 향한다. 1885년 11월말 고국 네덜란드의 누에넨을 떠나 벨기에의 안트베르펜으로 간 빈센트 반 고흐를, 열차 속에서 잠시 떠올리니 기분이 좋다. 빈세트는 안트베르펜에서 이듬해 2월까지 약 3개월간 짧게 머문다. 이후 그는 죽을 때까지 프랑스의 파리와 아를로 떠돌지만 고국에는 돌아가지 않는다. 

 

안트베르펜의 루벤스 동상. 사진=최재목
빈센트가 본 안트베르펜은 누에넨의 어두운 풍경과 달리 밝고 아름다운 곳으로 표출된다. 그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1885년 12월8~15일경)에서 루벤스를 새로 발견하고 있다.‘루벤스는 정말 엄청난 인상을 주더구나. (…)나는 루벤스의 단순한 기법에 의한 꾸밈없는 그림이 좋아. (…)여기 온 게 너무 기뻐. 온갖 착상이 떠오르고’.

 

아울러 그는 다른 편지(1885년 11월28일 토요일 밤)에서 일본 판화의 매력을 재확인한다. ‘나는 몇 번이나 부두와 선창을 따라 여러 방향으로 걸었어. 특히 모래와 히스 들판, 그리고 시골마을의 조용함을 뒤로 하고 방금 도착한 인간. 콩쿠르 형제는 “일본적인 것은 영원하다”고 말했어. 그래, 이 선창은 엄청난 일본 취미, 환상적이며 독특하며 전대미문의 무엇을 보여주는구나. (…)정말 우아한 영국 풍 선술집 창을 통해 가장 더러운 진창이 보이고(…)어깨가 넓고, 힘세며, 혈색이 좋은 플랑드르 수부들(…)이와 너무나 대조적으로-작은 두 손을 몸에 붙인 정말 작고 검은 여인들의 그림자가, 회색 벽을 따라 소리도 없이 조용히 걷고 있어. 검은 머리칼의 계란형 얼굴(…)그녀는 중국 소녀야. 신비롭고 쥐처럼 조용하며, 남의 눈을 피하는 작은 빈대 같아. 홍합을 먹고 있는 플랑드르인 무리들과는 얼마나 대조적인지!’

그렇다. 빈센트에게 일본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쥐’나 ‘빈대’처럼 추한, 기이한 것으로 비쳤다. 일본이 빈센트를 좋아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겠다. 만일 루벤스가 그린「한복 입은 남자」(A Man in Korean Costume)의 조선인을 그가 접했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양손을 교차해 반대편 소매 속에 넣은, 철릭(天翼) 복장의 조선인이 빈센트 앞에 서 있었다면 말이다. ‘정말 우아한 영국 풍 선술집 창을 통해’ 보이던 ‘가장 더러운 진창’이 조선의 인상은 아니었을까. 일본은 영국처럼 우아하고 깨끗한 나라였겠지만. 빈센트에게 누가 될 것 같아 생각을 그만두고, 나는 창밖으로 눈을 돌린다.

아, ‘진창’이라? 물과 흙이 서로 어울리는, 질어서 질퍽질퍽한 곳. ‘이곳은 물, 이곳은 흙이니/물과 흙의 아들/그 위를 내가 거닌다’고 한 괴테의 시「나그네의 폭풍우 노래」처럼, 진창은 생명이 잉태되는 곳. 이 곳 저 곳을 떠돌며 생각하다 보니, 머리 속도 들쭉날쭉 엉망진창이나, 나에게 ‘진창’은 내 상상력의 늪(藪)이거나 빽빽한 숲(叢林)이자 서재이다.

안트베르펜 서남쪽 호보켄 마을의 소년 네로와 파트라슈 동상.
안트베르펜은 또 내게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렇지!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있다. 「플랜더스의 개(A Dog of Flanders)」다. 영국의 여류 작가 위다(Ouida. 1839~1908)가 1872년에 쓴 소설 아닌가. 벨기에의 시골 플랑드르를 무대로, 애견 파트라슈와 소년 네로의 사랑과 비극을 담고 있다. 이 소설은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본과 한국에는 ‘프란다스의 개’로 잘 알려져 있다. ‘프란다스’란 영어 ‘플랜더스’를 일본식으로 읽은 것. 네덜란드 발음으로는 플랑드르다. 지금은 벨기에 땅이지만, 과거 한 때는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한 나라였다. 일본의 쿠로다 요시오 감독이 TV 애니메이션 ‘플랜더스의 개’(フランダースの犬)로 각색한 작품과 다음 주제가는 잘 알려져 있다. ‘ミルク色の夜明け, 見えてくるまっすぐな道, 忘れないよこの道を, パトラッシュと歩いた, 空に続く道を(우윳빛 새벽, 보이네 곧게 뻗은 길, 잊지 못할 이 길을, 파트라슈와 걸었네, 하늘로 이어지는 길을)’. 이 일본곡을 이승환은 이렇게 불렀다. ‘먼동이 터오는 아침에, 길게 뻗은 가로수를 누비며, 잊을 수 없는 우리의 이 길을, 파트라슈와 함께 걸었네. 하늘과 맞닿은 이 길을…’(「프란다스의 개」). 

빈센트의 눈에 비친 동양을 점점 따라가다, 그 끝자락에서 참 이상한 모습을 만나고 만다.「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天圓地方’의 흔적이다. 우연일까? 아, 이런 게 플랑드르에 있었다니. 브뤼헤의 사랑의 호수로 가는 도중 공원 모퉁이서 보았던 네모난 바구니의 나무 보호용 목책과 둥근 나무 한 그루. 네모난 호수와 그 언저리의 둥근 화약고. 좀 더 생각의 꽁무니를 좇으니, 레이스 공예, 초콜릿이 가진 원과 사각. 브뤼헤로 오기 전 오스텐도에서 본, 둥근 생선을 담는 네모난 박스. 너저분한 생선들을 그렇게 예쁘고, 깔끔하게 담아낼 수 있었던 그릇들.

 

덴하그(헤이그)의 비넨호프 옆 호프페이베르 못에서 본 네모 난 못과 그 가운데의 둥근 섬. 사진=최재목

 

생각은 멈추지 않고, 저 네덜란드의 정치 중심지 덴하그(헤이그)의 비넨호프 옆 호프페이베르(Hofvijver) 못에서 본 네모 난 못과 그 가운데의 둥근 섬에까지 가 닿는다. 어쩌나, 내 눈에는 하나하나가 플랑드르 지방에서 면면 이어져 오는 회화적 심성 같기만 한데.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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