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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살아남겠지만… 마치 ‘의자놀이’ 같습니다”
“누군가는 살아남겠지만… 마치 ‘의자놀이’ 같습니다”
  • 김봉억 기자
  • 승인 2012.09.28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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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임ㆍ초빙교수가 말하는 ‘강사제도’

2013년 1월부터 시행될 새 강사제도를 앞두고, 대학가에 혼선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계 없음
중국인민대에서 중국정치로 박사를 한 A씨(48세). 2011년 9월부터 1년 단위 계약으로 광주지역 사립대에서 겸임교수로 있다. 원래 3학점짜리 3과목을 강의하기로 했는데, 이번 학기에 두 과목이 폐강이 됐다. “요즘 학생들은 사회학이나 정치학 같은 과목엔 관심이 없어요. 이번 학기엔 강의료가 얼마나 나올지 모르겠네요.”

A 겸임교수는 처음 계약할 때는 연봉으로 급여를 지급받기로 했는데, 지난 1학기 때 1과목 폐강 된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2과목에 대해서만 인건비를 받았다. “겸임교수는 주당 9시간 강의를 근거로 계약을 했어요. 계약서는 따로 쓰지 않았는데 관련 규정을 살펴보니까, 강의가 폐강이 되면 폐강이 된 과목의 강의료는 빼고 급여를 준다고 돼 있더군요.”

A 겸임교수는 인근 국립대에서 중국 관련한 세 과목도 강의한다. 이 대학에선 ‘비전업 강사’로 분류돼 시간당 강의료는 절반이다. A씨는 겸임교수 신분으로 4대 보험료와 퇴직금을 받고, 공동연구실을 쓴다. 방학 중에 급여도 나온다. “이름만 겸임교수이지 강사랑 똑같아요. 한 과목 강의하면 한 달에 50만원을 받습니다. 6개월로 나눠 방학 중 강의료를 책정하지요. 학기마다 담당 과목이 달라지니까. 이렇게 하는 겁니다. 지난해부터 학과당 3명씩 겸임ㆍ초빙교수를 채우라고 하더라고요. 교육역량강화사업 평가때 교원확보율에 포함되니까요. 저는 교양과목을 맡고 있어요. 이게 겸임교수인가요? 시간강사죠.”

대구경북지역의 한 국립대에서 강의초빙교수를 맡고 있는 B씨(45세). 2010년 3월부터 1년 단위로 재계약을 했다. 3년째 강의초빙교수를 한다. 계약서에는 한 학기에 3학점짜리 4과목을 맡아 12시간 강의를 한다. 교양 두 과목과 전공 두 과목을 맡았다. 공동연구실이 있고 4대 보험료와 퇴직금이 있고 12개월로 나눠 월급을 받는다.  “시간강사와 별반 다를 게 없어요. 강의초빙교수를 한다고 큰 기대를 하지도 않아요. 이걸 할 수밖에 없으니까 하는 거죠. 대학이 비정규교수를 적은 예산으로 쓰는 것이 초빙교수에요. 수많은 명칭으로 쓰고 있지요. 특수교과를 맡긴다는 원래 초빙교수제도의 목적대로 쓰지도 않아요. 그럴 생각도 없고요. 학과 처지나 교과편성에 따라 들쭉날쭉 맞춰주는 ‘예비인력’에 불과한 겁니다.”

B 초빙교수는 새로운 ‘강사제도’ 도입이 되면, 강사 일자리는 물론 전임교원 자리도 더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한다. “강사법 시행이 되면 정확히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분명한 건 시간강사나 비전임교원 문제는 재정확보 없이는 풀기 어려워요. 현재 조건에선 어떤 식으로 하든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을 겁니다. 대학은 정규직 전임교원으로 뽑을 유인도 더 줄어들게 되겠죠. 산학협력중점교수에, 연구전담교수, 강의전담교수, 거기다 교원확보율에 들어가는 강사까지. 누가 전임교원을 뽑겠어요?”

20년째 시간강사를 하고 있는 C씨는 올해 56세다.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공기업을 다니다 지난 1993년, 대학교수가 되기로 마음먹고 그만뒀다. 그 이후로 20년째 시간강사 생활을 하고 있다. 지금은 3개 대학에서 강의를 한다. “보통 한 학기에 20시간씩 강의하면 한 3천만 원 벌었어요. 지금은 19시간 강의합니다. 예전엔 20~25시간 강의했어요 4개 학교를 돌아다니면서. 그래야 먹고 사니까.”

지난 2002년부터 2년 동안 겸임교수를 한 적이 있다. 아는 선배 교수가 후배 챙겨준다고 겸임교수 자리를 추천한 것이었다. 겸임교수는 ‘현업’에 있는 사람을 채용하는 것이라 사촌동생의 회사에 ‘이사’직함으로 가짜 서류를 만들어 학교에 제출했다. 2년 뒤 연장계약을 하기로 했는데, 당시 관련 지침이 강화돼 원천징수 영수증을 떼오라고 해서 서류 미제출로 연장이 안됐다. “원래 겸임교수는 현장의 노하우를 전수해 주는 것인데, 비용은 줄이고 교원확보율 높이려고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요. 비전임교수는 겸임ㆍ초빙교수부터 산학교수, 연구교수 별개 다 있죠. 내년부터 시행하는 ‘강사제도’는 강사를 자르면 ‘소청 심사’ 청구 권한이 생기게 되니까 대학 입장에선 부담스럽겠죠. 겸임교수나 초빙교수는 돈은 덜 들고 마음대로 운영할 수 있으니까 선호할 수밖에요.”

C 강사는 새 ‘강사제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강사제도가 도입되면, 기존 강사들 중에서도 엄청 밀려 나겠죠. 나 같은 사람도 젊은 신진세대들에게는 못 당하죠. 연구력이 창창한 사람들인데 연구논문으로 평가하면 당해낼 도리가 없지요. 강사제도는 마치 ‘폭탄 돌리기’, ‘의자놀이’ 같습니다. 나는 살아남겠지 하고 다들 생각하고 있죠. 누가 밀려 날지 모르겠지만, 참 잔인한 법입니다.”

대학 강사제도는 내년 1월부터 시행 예정이다. 대학은 “당장은 최대한 강사 임용을 줄이고, 기존 시간강사를 겸임ㆍ초빙 교수로 뽑을 수밖에 없다”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교과부 관계자는 최근 열린 대학 강사제도 설명회에서 “대학이 겸임ㆍ초빙교수를 남용해 문제가 생기게 되면, 지난 18대 국회 때 황우여 의원(새누리당)이 발의했던 ‘겸ㆍ초빙제도’를 없애는 방안이 나올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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