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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사각지대’서 폐쇄적 운영…회장도 “경영 관여 권한 없었다”
‘법의 사각지대’서 폐쇄적 운영…회장도 “경영 관여 권한 없었다”
  • 김봉억 기자
  • 승인 2012.09.10 1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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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교수공제회 ‘횡령사건’ 무엇이 문제였나

전국교수공제회는 지난 1997년 설립돼 15년 동안 운영돼 왔지만, '비인가 사설단체'로 불법 운영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으며, 실제 운영자였던 이창조 총괄이사는 회원이 맡긴 돈 중에서 600억원을 횡령한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밝혀졌다. 사진은 서울 광진구 능동에 위치한 교수공제회관 건물이다.
3년 전 정년퇴임을 한 지방 국립대 출신의 한 명예교수는 정년퇴직을 하면서 마련한 목돈과 노후대비 자금 등 가지고 있던 재산의 3분의 2를 전국교수공제회에 맡겼다. 안정된 노후생활을 꿈꿨다.

대전지역 국립대의 한 교수도 부동산이나 펀드, 주식은 일체 하지 않았고, 은행보다 이자가 많다고 하니까 갖고 있던 돈의 거의 대부분을 교수공제회에 투자했다. 이 교수는 지난 3일에도 해외 출장을 갔다. 이 교수의 부인이 답답한 마음에 이리 저리 상황을 알아보고 있다.

“교수 일도 바쁜데 돈 관리에 신경 쓰기 싫어서 한 곳에 목돈을 맡긴 것이었다. 대학교수를 했고 목사이기도 했던 전직 대학총장이 회장을 맡고 있으니까 후배ㆍ동료 교수를 상대로 하면서 설마 사기를 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교수들의 라이프스타일이나 심리를 파악하고 교수들이 유혹을 느끼게끔 각종 꼼수를 부려 회원 가입을 유도한 것 같다. ‘교수 생활이 바쁘시니까 돈에 신경 쓰지 마시고 보험에도 들었기 때문에 원금 손실을 없다’고 강조하며 안심을 시켰다.”

전국의 대학교수와 배우자 4천500여명이 피해를 보게 된 전국교수공제회 ‘600억 횡령 사건’. 3억 원 이상 거액을 맡긴 교수도 250여명으로 알려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전직 총장 앞세워 홍보…친인척이 운영 주도

지난 9월 6일 오후 3시 6분. 서울 광진구 능동에 위치한 전국교수공제회 회관 13층 연회장. 주재용 교수공제회 회장(79세)이 ‘횡령 사건’ 경위를 설명하기 위해 피해 교수와 배우자 100여명이 모인 자리에 나타났다.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다. 검찰로부터 이 사태를 수습하라는 임무를 맡게 됐다. 저희 이사진도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검찰이 압수수색을 했던 7월 마지막 날이었다. 피해를 입은 교수님들이 이사진이 어떻게 그렇게 실태를 모를 수 있었느냐고 하시지만, 사실이 그렇다.”

최근까지도 회보를 통해 자산이 4조2천억 원이라고 홍보했는데, 왜 그런 거짓말을 했나? 주 회장은 “공문이 나간 것도 몰랐다. 변명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제가 교수공제회 회장직을 맡을 때 조건이 처음부터 공제회 경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고 하고 회장을 맡았다”고 말했다. 주 회장은 “회장이 된 이후 기금운용이나 인사 등에 단 한 번도 개입한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교수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피해 교수들은 당신도 사법처리 받을 의향이 있나라고 물었고, 주 회장은 책임질 일이 있으면 사법처리도 받겠다고 했다.

교수공제회의 모든 홍보물과 대외 언론 보도자료에는 주재용 회장을 앞세웠다. 교수공제회 웹사이트에도 600억 원을 횡령한 이창조 총괄이사의 이름은 찾아 볼 수 없고, 그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교수공제회의 임원 이사진은 11명. 주재용 회장을 비롯해 구속 수감된 이창조 총괄이사및 서울지회장, 최00 광주지회장, 강00 부산지회장, 부회장 2명이 있었고, 실제 운영자였던 이 씨의 아내와 처남은 각각 이사를 맡고 있었고 큰 아들은 감사였다. 이 씨의 친인척 7명이 회사 운영에 참여했다.

2년 전 금융감독원 위법 발견…검찰은 기소유예

교수공제회는 지난 1997년 10월, 교수들의 노후 대비와 복지증진을 위해 설립돼 올해 15년째를 맞았다. 

수원지검 특수부의 수사 결과, 교수공제회는 비인가 사설단체로 ‘계 모임’ 형태로 운영돼 온 것으로 나타났다. 교수공제회의 불법 운영과 공금 횡령 의혹은 2년 전에도 제기됐다가 무산된 적이 있다.

지난 2010년 2월, 금융감독원은 ‘교수공제회가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혐의가 있다’며 서울 성북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고, 성북경찰서는 기소 의견으로 서울중앙지검으로 사건을 송치한 뒤, 서울중앙지검은 4개월 동안 수사하고서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교수공제회는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2010년 6월 교수공제회는 서울 성북구청에 대부업 등록을 마쳤다. 당시 검찰은 관할청의 인허가를 얻지 않고 운영한 잘못은 있지만 자금운용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어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교수공제회가 적법하게 운영되려면 금융감독원의 인ㆍ허가를 받았어야 했을까.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금융과 관련한 모든 업체를 인ㆍ허가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의 인ㆍ허가 대상은 은행, 증권회사, 보험회사, 상호저축은행, 신협 등이 포함돼 있고, 공제회와 관련해서는 공제회 주체와 모집 대상, 자금 모집 형태에 따라 인ㆍ허가 관할청이 달라진다고 했다.

현재 특별법에 근거해 운영되고 있는 공제회의 소관 부처를 살펴보면 이런 현실을 파악할 수 있다. 한국교직원공제회는 교육과학기술부, 군인공제회는 국방부, 소방공제회는 소방방재청, 경찰공제회는 경찰청이 소관 부처이다. 새마을금고는 행정안전부 소관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2010년 2월에 당시 금융감독원은 금융질서 문란 행위를 살펴보기 위해 모니터링을 하고 있었고 교수공제회 운영에 문제가 발견돼 경찰에 수사의뢰를 한 것이었는데, 불법 행위는 그때 사법처리를 통해 해결했어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유사수신행위규제법률에 따르면, ‘유사수신행위’는 다른 법령에 따른 인ㆍ허가를 받지 아니하거나 등록ㆍ신고 등을 하지 않고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행위를 말한다. 교수공제회는 당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전임강사 이상 교수만을 대상으로 특정한 다수인끼리 모여 금전을 주고받는 행위를 하기 때문에 법률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해명했었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불특정 다수’라는 개념이 논란이 될 수는 있는데, 교수라는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전국적으로 4천여 명에 달하는 인원이 수천억 원의 대규모 금전거래가 있다면, 단순히 교수를 대상으로 한다고 해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교수공제회는 교육과학기술부 소관인가. 이미 한국교직원공제회가 교육과학기술부 소관으로 돼 있고, 이곳에 교수도 회원 대상에 포함돼 교수공제회에 따로 허가를 내주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한다.

교과부 대학선진화과 관계자는 “민법 제32조에 따라 비영리법인으로 등록이 됐다면 장학사업등과 관련해 감독할 수 있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교수공제회는 사실상 ‘계 모임’ 조직인데, 법의 사각지대에 의도적으로 놓여, 금융감독원과 교과부의 관할권에서 벗어나 있었다”라고 말했다.

교과부는 이번 교수공제회 사태를 계기로, 최근 전국 대학에 ‘유사수신’ 단체 가입을 주의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교과부와 한국교직원공제회는 교수공제회 횡령 사건과 같은 사고의 재발방지를 위해 유사수신 행위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위법 운영 사례가 발견되면 금융감독원과 경찰에 수사를 적극 요청할 방침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제3자의 입장에서는 금융감독원이나 교과부가 사태 해결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겠지만, 마땅한 권한이 없어 곤혹스럽다. 현재는 검찰의 지휘아래 해결방안을 찾고 있기 때문에 9월 중순에 최종 검찰 조사 결과가 나오면, 적극 협조하도록 하겠다. 지금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라고 말했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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