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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사립학교법 개정 촉구하며 사표 제출한 이창훈 한라대 총장
[인터뷰] 사립학교법 개정 촉구하며 사표 제출한 이창훈 한라대 총장
  • 교수신문
  • 승인 2002.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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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의 초법적인 전횡, 사립학교법 때문”
현행 사립학교법이 개정되지 않을 바엔 차라리 대학 설립자 또는 재단 이사장의 가족이 총장 노릇을 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이창훈 한라대 총장이 지난 6일, 2002 하계 대학총장세미나 셋째날에 마련된 ‘대학교육의 변화와 경영혁신 사례 발표’에서 이같이 발언하자 일순 회의장이 술렁였다. 그러던 이 총장이 최근 임기를 1년 여 남겨두고 사표를 제출, 8월 14일 이임식을 앞두고 있다. 그를 만나 사립학교법에 대한 생각들을 들어보았다.

△사표를 제출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저는 12년간의 평교수 생활을 접고 2000년 만 46세에 강원도 원주 소재 한라대학교 제3대 총장이 됐습니다. 총장으로 취임했을 당시 대학경영 혁신을 위해 제가 가졌던 소신 여하에도 불구하고, 총장업무시작 불과 1년 이후 재단측과의 갈등으로 소신에 의한 대학경영은 물건너 가고 말았습니다. 고민 끝에 이번 학기 말에 사직서를 재단측에 제출했습니다. 이 곳은 더 이상 제가 품은 교육개혁의 장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사립학교법을 ‘제왕적’이라고 표현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현행 사립학교법에 의하면, 모든 권한이 재단에 있습니다. 대학의 자율성은 0%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재단에서 마음만 먹으면 총장을 완전히 로봇으로 만들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총장이 아니라 관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교수임면권, 직원임면권 등 모든 권한이 재단에 주어져 있는데, 학내 구성원들이 누구 눈치를 보겠습니까. 저는 재단의 초법적인 전횡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현행 사립학교법 때문이라고 판단했으며, 그래서 ‘제왕적’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사립학교법으로 인해 ‘할 수 없었던 것들’은 무엇입니까.

“총장 취임 이래 저는 나름대로 열악한 교육환경을 개선하고자 혼신의 힘을 기울였습니다. 한 1여년 동안은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재단측과 갈등이 시작되자 총장은 명함에 지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개혁 프로그램의 운용을 보좌하는 처·실장을 임면함에 있어서도 철저히 소외됐습니다. 재단에 충성서약을 하지 않는 총장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사립학교법이 개정돼야만 한다면, 그 방향은 무엇입니까.

“그 방향은 다음과 같아야 할 것입니다. 첫째, 학교법인 임원진의 공공성을 제고해야 합니다. 많은 대학의 이사회가 이사장 1인의 사적 보조기관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법인이사와 감사의 일부를 공익적 성격을 가진 인사로 임명한다면 이사회가 본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학교 운영의 민주성을 제고해야 합니다. 사립학교의 세 주체인 법인, 교원, 학생의 권리와 의무가 균형 있게 행사되고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지 않는 한 법인의 독주를 막을 수 없습니다. 대표성을 지닌 일반 평교수들이 교무위원회나 교원인사위원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법 제도를 개정한다면 달라질 것입니다. 셋째, 부정부패한 재단의 경우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합니다. 영리나 재산증식 또는 재산도피를 목적으로 재단이 학교를 운영하는 것을 방지해야 할 것입니다.”

△사립학교법개정을 위한 여러차례의 시도들이 번번이 무산된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우선 정치권의 무지와 무성의를 들고자 합니다. 지난해 국회에서 사립학교법의 재정 논의가 진행돼 희망을 가졌습니다만 결국 본 회의에 상정되지도 못했습니다. 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합니다. 법 개정을 정치권에만 미룰 수 없는 시점입니다. 우리 사회 여타 분야에 비해 교육개혁 분야는 최하위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시민단체가 법 개정을 위한 여론조성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주십시오.

“당분간 과거 유학지였던 파리에 가 잠시 쉬면서 지칠대로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릴 생각입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현행 사립학교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저는 결코 한국 대학에 복귀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허영수 기자 ysheo@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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