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墨經, 아직도 해석을 기다리는 소중한 古典
墨經, 아직도 해석을 기다리는 소중한 古典
  • 염정삼 서평위원/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교수
  • 승인 2012.07.16 15: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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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현대인들은 남에게 상해를 입힌 도둑을 처벌해야 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사회 및 국가의 유지와 존속은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담보해주는 기반임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만약 그 도둑이 내 형님이라면, ‘형님을 처벌하는 것’과 ‘도둑을 처벌하는 것’ 사이에 엄청난 긴장과 갈등이 존재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인간이 운명적으로 태어나면서부터 맺고 있는 혈연의 끈과, 공공의 약속에 의해 만들어진 사회적 관계의 끈은 고래로부터 갈등의 상황 속에 놓인 개개의 인간들에게 고민스러운 문제를 던져왔다. 『맹자』에도 이런 질문이 나온다.

舜임금이 天子가 됐는데, 그의 아버지 고수가 사람을 죽인 살인자라면 당시의 집정관인 고요가 어떻게 했겠느냐고 제자가 물었다. 맹자는 우선 고요가 그를 붙잡았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제자는 순임금이 그것을 금지하지 않았겠느냐고 다시 물었다. 맹자는 순임금이 堯임금으로부터 천하를 받아서 천자가 됐는데 어떻게 그것을 금지할 수 있었겠는가 하고 반문했다.

그럼 과연 순임금은 어떻게 했겠느냐고 마지막으로 제자가 물었다. 맹자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순임금은 천하를 헌 신발 버리듯이 버리고 아버지를 등에 업고서 도망가서 저 아득한 해변에 숨어살면서, 죽을 때까지 기꺼이 천하를 잊고 살았을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맹자를 비롯한 유가에게 그런 극단의 선택 상황은 제도적이거나 논리적인 해법이 마련돼 있지 않았다. 순임금에게는 결국 세상을 헌신 버리듯 버리고 아버지를 업은 채 해변으로 도망치는 길 외에는 없었다. 공공의 질서와 혈연의 윤리 안에 진동하는 인간은 고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만인 앞에 평등한 법과 질서를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옳다고 선언하는 현대 국가에서도 공과 사에 얽힌 인간의 고민은 여전히 여러 가지 문제를 낳는다. 기원전 5세기말, 墨子는 의례 전문가 집단으로 변해가는 儒家에 비판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유가가 사치스러운 예식과 음악을 즐기는 태도를 가지고 있음을 맹렬히 비난했다. 특히 묵자는 유가들이 가지고 있는 운명론, 신에 대한 믿음의 결여, 예악에 대한 지나친 강조 등이 올바른 세상으로 나아가는 주요 걸림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혼란스럽고 탐욕스러운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으려면 하늘ㆍ귀신 그리고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협력하고 서로 합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전쟁이 일어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설득하려 했으며,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지 말고 널리 사랑하라는 주장을 ‘兼愛’라는 이름으로 강조했던, 검약하고 성실한 실천가로서 묵자는 당시 광범위한 지지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묵자를 계승했던 학파로서 묵가는 공공의 질서가 어떤 기준에 의해 확립될 수 있는지 어떤 학파들보다도 많이 연구했다. 혈연의 관계에 얽매인 애증의 욕구 때문에 분명하게 사회 전체의 이익이 될 수 있는 것들을 포기하지 않도록 섬세하게 논리를 다듬으려고 했다. 특히 세련된 언변을 ‘교언영색’이라 해 배척하는 유가적인 편향 속에서도, 묵가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할 수 있고 이해시킬 수 있는 언어로 그것을 다듬어놓아야 한다는 것을 소명으로 삼았다. 그 덕분에 고대 중국에서는 보기 드물게 그들은 언어와 논리에 대한 소중한 편장을 남겨놓을 수 있었다. 그것이 정리된 것이 『墨子』안에 ‘墨經’ 혹은 ‘墨辯’으로 불리는 「經上」, 「經下」, 「經說上」, 「經說下」, 「大取」, 「小取」의 여섯 편의 문장이다.

기원후 1세기 무렵 상당히 정교한 문자학 이론과 字典을 갖출 수 있었던 중국은, 중요한 문헌들을 문자로 정착시키기 이전에 『묵경』의 저술을 통해 이미 ‘언어’의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묵가들이 주장하는 공공의 윤리를 슬로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지 않은 것에 비해, 어떻게 언어가 ‘공공의 윤리’를 뒷받침할 수 있는지 설명하려는 그들의 논리는 쉽사리 파악되지 않는다. 중국의 언어학이 2천여 년을 훈고와 주석의 전통 속에 있었던 탓에 『묵경』의 언어는 오랜 세월 무덤 속에 묻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과 윤리, 언어의 문제가 고래로부터 분리되지 않는 것이라면, 묵가를 포함한 고대인의 고민과 그 깊이,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방법론을 온전하고 정확하게 파악하려는 노력을 멈출 수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묵경』은 아직도 우리의 해석을 기다리는 소중한 고전이다.

염정삼 서평위원/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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