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0:00 (금)
[위기의 현장과학기술자] 불철주야 노동, 대가 없나.
[위기의 현장과학기술자] 불철주야 노동, 대가 없나.
  • 권진욱 기자
  • 승인 2002.07.2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2-07-24 18:40:11
‘과학기술 인력 모셔가기는 저만큼 옛말이 됐다. 이공계열 대학원생은 온갖 잡일에 시달리고 실험실에 하루 종일 매달리는 생활을 일년 열두달 계속해도 재학 기간 동안에도 그 이후에도 사회적 보상이 없다. ‘학력인플레’가 심해진 오늘날 지면서 대학원을 졸업해도 살아갈 길은 막막하기만하다.‘요즘 대학원생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들을 만나봤다.

지방대학 강사인 김 아무개씨는 요즘 불안하다. 서울에 소재한 유명대학에서 기계공학 분야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자신의 고향에 내려와서 두세 대학의 교수직에 지원하고 있지만 계속해서 임용의 문턱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강사와 연구교수 생활을 전전해서인지 불안한 목소리를 감추지 못한 그는 “국내 대학원 출신이라서 그런 것 같다. 해외 박사후 과정이라도 다녀왔어야 했다”라며 교수자리 얻기가 여의치 않은 신세를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해석했다. 그는 “국내 대학원을 나와서 대학의 박사급 연구원으로 있어봤자 경제적인 혜택이 거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직장을 구할 경력도 되지 못한다”라고 푸념했다.

초조하기는 석박사 과정에 재학중인 대학원생들도 마찬가지이다. 이공계열 대학원생들은 군복무나 휴학 등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20대 초반이면 석사과정에 입학하고 20대 중반을 약간 넘으면 박사과정에 입학한다. 물론 군복무를 먼저 다녀온다면 2, 3년 정도 늦춰지게 되지만 요즘에는 경험과 이력이 되는 대학원 병역특례를 바라보고 대학원에 바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익히 알려진대로 인문사회계열에서 같은 교수의 지도학생들은 서로 교류가 빈번하고 세부전공이 유사한 정도이지만 이공계열에서는 이들은 실험실이라는 생활공간으로 함께 단단히 묶여 있다. 그래서 위계질서가 비교적 뚜렷한 편이다. 서울대 재료공학과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김태곤씨는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선후배 관계만 놓고 보면 대학원 사회는 일반 기업체보다는 군대에 가깝다”라고 말한다.

이런 위계 관계는 과정과 학기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난다. 학교, 전공, 교수 개개인에 따라서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석사 과정생들은 실험실 청소나 페이퍼 처리, 실험 보조, 간단한 실험 등의 일을, 박사 과정생들은 자금 정산이나 행정적인 일을 도맡는 것은 대동소이하다. 한마디로 연구외의 잡일들이 너무 많다. 그만큼 김태곤씨는 “실험실을 민주적 분위기로 만드는 데에는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한다.

정부의 대학원 육성 사업에 대해서도 우려가 많다. 교육당국은 SCI 등재횟수를 들먹이고, 학교 당국은 절치부심해서 다음번에는 더욱 좋은 결과를 종용하는 바람에 교수와 학생이 실험실에서 바치는 시간이 늘어났지만 사업이 ‘선택과 집중’을 지향하는 바람에 상대적인 혜택은 늘어나지 않았다. 지난 학기에 지방 대학원에서 지질학 석사과정을 마친 최 아무개씨는 “BK21 사업이 도입되고 나서 선정되지 못한 교수와 대학원 재학생들의 생활은 더 피폐해졌다”라고 분위기를 전한다.

군복무를 마치고 고려대 생명공학원 석사과정에 다니고 있는 손진범씨는 “하루의 3분의 2 이상은 꼬박 학교에 투자하지만, 일년에 3박4일 가량되는 휴가가 연중에 유일한 방학기간”이라고 말한다. 이공계열 대학원생 상당수는 방학 기간에는 수업이라는 간극이 없이 하루 온종일을 실험에 매달리기 때문에 ‘학기 때보다 더 바쁜 방학’을 보낸다.

이공계열의 ‘실험’은 인문사회계열의 ‘연구’에 비할 때, 스스로 시간을 정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때문에 학교에 오전 일찍 와서 오후 10시나 11시에 파김치가 돼서 돌아가더라도 원하는 결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더욱 힘든 것은 하루 열두시간씩 일해도 이들이 감내하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대해 별다른 사회적 보상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사과정을 마치고 기업체 연구소에 들어간다면 3천만원 초반 가량의 연봉을 받는다. 그러나 박사과정을 마치고 입사하는 30대 초중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동안 주변의 경제적 도움을 받거나 적은 교육 지원금에 기대 버텨온 시간을 보상하기는커녕 같은 연령대의 대졸 대기업 사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셈이다.

그렇지만 그마저도 ‘학력인플레 현상’ 때문인지 국내 박사는 여전히 찬밥신세인 경우가 많다. 김태곤씨는 “박사 학위를 따더라도 사회에서 알아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손진범씨 역시 “‘이 고생을 왜 하느냐’는 질문을 가끔 스스로 해본다”라며 “유능한 기술자보다는 말많은 정치인을 떠받드는게 사회풍토 아니냐”라고 개탄한다. 대학원생들은 자신들이 들인 많은 노력과 시간에 비해 너무 낮은 사회적인 처우에 큰 불만을 느끼고 있다.

권진욱 기자 atom@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