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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삶, 지식의 새로운 부상에 독자들 눈 쏠렸다
지식인의 삶, 지식의 새로운 부상에 독자들 눈 쏠렸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2.05.15 1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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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편집자가 뽑은 문제작① 한길사편

책의 탄생 과정은 엄숙하면서도 희극적이다. 엄숙하다는 것은 거기에 쏟는 저자나 번역자, 그리고 출판 편집자의 열정과 노고가 대단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얗게 새운 밤의 날들을 합치면 그게 바로 책의 질량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 광경은 또한 희극적이기도 하다. 이렇게 공들여 만들었지만, 저자나 출판사쪽의 예상과 달리 世人의 관심권에서 멀어지다 어느덧 재고창고에 쌓여 있다가 쓸쓸하게 퇴장당하는 운명을 마주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주요 학술출판사 편집자들에게 물었다. 

1990년대 이후 ‘가장 공들여 만들었지만 저평가 된 책은 무엇인가’라고. 그리고 ‘기대와 달리 가장 호응이 좋았던 책’이 있다면 무엇이냐고. 그 첫 번째로 한길사(김언호)의 대답을 들어본다. 과연 한길사의 희비가 엇갈린 책은 무엇일까. 한길사는 ‘저평가된 책’으로 『겐지 이야기(전10권)』(2007)를 꼽았다. 11세기 초 무라사키 시키부라는 궁녀에 의해 씌어진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고전 문학이기도 하다. 일본내에 겐지 붐을 일으키고, 문화훈장까지 받은 세토우치 자쿠초의 현대어역 판본을 옮긴 것으로 10권 분량으로 국내에 온전히 소개된 최초의 완역본이다.  

번역은 뛰어난 번역가로 정평 있는 김난주 씨가 5년간 공을 들여 완성했다.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 도판, 인물의 계보도, 연표, 지도, 어구 해설 등을 상세하고 입체적으로 수록한, 편집 노력도 돋보이는 책이었다. 한길사측은 전공자와 일반 독자 모두에게 만족을 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읽히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라는 게 한길사측의 진단이다. “전집이라는 방대한 분량적 측면, 현실과 유리된 고전이라는 측면, 일본적 정서와 미의식에 대한 공감 부족 등”을 패인으로 짚었다. 반면 한길사가 꼽은 ‘가장 호응이 좋았던 책’은 『대화: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2005), 『지식의 최전선』(2002)이다. “한 시대의 큰 족적을 남긴 사상가, 지성인들의 삶과 사상을 대담·대화 형식으로 세련되게 정리해내는 외국의 출판문화가 늘 부러웠다"라고 말하는 박희진 부장은 “이런 책을 기획하고자 했을 때, 리영희 선생은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인물이었다”라고 귀띔한다.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을 비롯한 다수의 저술을 통해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고 허위를 폭로함으로써 진실에 눈을 뜰 것을 강조한 리영희를 가리켜 일각에서는 ‘사상의 은사’라고 獻辭 했다. 그러나 그는 생애 후반 뇌출혈로 쓰러진 뒤,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화: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은 대담을 통해 기초 원고를 만든 뒤, 마비가 온 불편한 손으로 한 자 한 자 원고를 만들어나갔던 리영희의 자전적 삶을 정리한 마지막 저서라는 의미가 있다. 박희진 부장은 “리영희의 기본 독자들이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각계의 반응은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컸다. 참 지식인으로 ‘자유’와 ‘책임’이라는 무거운 사명을 한 치의 타협 없이 지켰던 리영희의 삶이 독자들에게 감동의 공감대를 확대한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예상 밖의 반응을 풀이했다. 이 책은 지금도 한길사의 대표 스테디셀러로 자리잡고있다. 분단 상황, 진보-보수의 이념 갈등,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타락, 사회적 정의의 실종 등 오늘날에도 바뀌지 않는 삶과 사회적 조건이 이 책을 ‘잘 팔리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결국, 고난에 찬 한 개인의 역사이자 한국 현대사의 아픈 진실을 보여주는 생생한 기록이라는 점, 펜을 든 지식인으로서, 생각하는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히 말해준다는 점이 독자들을 움직인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지식의 최전선』 역시 2002년 출간 당시 예상한 것과는 달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000년대는 인문학 르네상스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관련 책들이 쏟아졌던 시대였다. ‘통섭’이라는 용어가 본격화되기 전에, 다양한 학문 분야에 대한 상호 이해와 지식의 만능인을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에 부합했던 부분이 이 책을 ‘성공작’으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박희진 부장은 "인문, 사회, 자연, 예술, 대중문화 등 각 분야 최첨단의 이슈와 담론, 쟁점이 소개되고 50명이 넘는 저자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방대한 지식의 앤솔러지, 만화상을 보여줌으로써 그때까지는 전혀 없었던 기획의 참신함을 보여주었다”라고 자평한다. 특히 이 책은 출간 후 각종 관련 매체의 ‘좋은 책’에 선정되는 등 반응의 파장을 타고 독자들에게 크게 다가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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