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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생 리포트로 ‘박사논문’ 작성 … 기본 인식도 없었다
학부생 리포트로 ‘박사논문’ 작성 … 기본 인식도 없었다
  • 김봉억 기자
  • 승인 2012.05.14 15: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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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대 국회의원 당선자 7명, 이렇게 표절했다

22개 학회와 연구소로 구성된 학술단체협의회(대표 한상권 덕성여대)는 지난 7일 제19대 국회의원 당선자 학위·학술논문 표절의혹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새누리당 강기윤(창원을), 신경림(비례대표), 염동열(강원 태백시 영월·평창·정선군), 유재중(부산 수영구), 정우택(충북 충주시 상당구) 당선자와 민주통합당 정세균(서울 종로) 당선자, 새누리당을 탈당한 문대성(부산 사하갑) 당선자의 표절 의혹을 검증하고“심각한 수준의 표절임이 판명됐다”고 밝혔다. 학단협은 2008년 교과부 가이드라인, 2009년 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의 연구윤리지침, 2011년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연구윤리 규칙을 표절 기준으로 삼았다. 학단협은 제19대 국회의원 당선자 7명의 논문 표절을 분석하면서 주요 특징을 제시했다. 현재 연구윤리의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수 있다. 학단협이 분석한 내용을 요약했다.

단순 표절 아닌 복사 수준의 베끼기
이번에 논란이 된 논문들은 특정 단락에 대한 단순 표절이 아니라 몇 개의 단락을 그대로 갖다 쓴다든지, 여러 페이지에 걸쳐 논문 내용이 동일한 이른바‘복사 수준의 베끼기’가 대부분이었다. 문대성 당선자의 경우는 박사와 석사학위 논문이 다른 사람의 논문을 출처를 밝히지 않고 그대로 옮겨 썼고, 정우택 당선자가 하와이대에서 받은 박사학위 논문도 국내 강모 교수의 학술논문을 출처 없이 영어로 그대로 옮겨 놓았다. 미국 샌디에고주립대의 R. 프란츠외 4명 이상의 해외 저자 논문도 출처없이 수십 단락씩 베꼈다. 학단협은 표절한 논문의 디지털 파일을 그대로 받아서 작업했거나 다른 사람이 논문을 대신 써준‘대필 의혹’을 강하게 의심할 정도라고 밝혔다.

여러 논문 짜깁기
박사학위 논문의 경우, 대체로 유사 주제와 관련해 이미 작성된 석사 학위논문들이나 학회지에 기고한 다른 사람의 논문을 ‘짜깁기’하는 경우가 있었다. 문대성 당선자의 논문 가운데「태권도 운동이 허약 고령자의 건강 체력과 인지능력 및 치매유발 인자에 미치는 영향」은 박모 교수와 권모 교수의 두 논문「복합운동이 고령여성의 복부지방과 인자에 미치는 영향」, 「복합운동이 고령여성의 호흡순환기능, β-amyloid 및 DHEAs에 미치는 영향」의 서론과 이론적 배경을 ‘짜깁기’했다.

서론과 이론적 배경을 통째로 도용하기
대부분의 표절 논문들은 다른 사람 논문의 서론과 이론적 배경을 표절했다. 자신이 책을 읽고 논문을 인용하는 방식의 유사성이 아니라 다른 사람 논문의 서론과 이론적 배경을 그대로 도용했다. 이는 체육인 출신 교수들이나 정치인들이 다른 사람 논문의 서론과 이론적 배경을 거의 관행적으로 베껴온 한국 학술계의 부끄러운 얼굴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학단협은 분석했다.

원저자의 논문도 표절 의심돼
특정 논문의 경우에는 표절한 논문의 원저자가 누구인지도 불투명할 정도로 표절에 표절을 반복한 사례도 있었다. 문대성의 박사학위 논문은 2007년 명지대에서 학사학위를 받은 김모씨의 논문을 상당부분 표절했는데 김 모씨의 박사학위 논문 역시 2006년 한국스포츠리서치에 발표한 김모 교수의 논문과 서론과 이론적 배경이 거의 동일하다.

인용과 도용을 혼동, 기본인식 결여
학단협은 이번에 검토한 표절 논문을 검증하면서 표절자가 자신의 표절 행위에 대한 인식이 심각하게 결여돼 있다고 했다. 상당수 표절자들이 이론적 배경에서 표절한 것을 두고 이를 다른 사람의 논문을 인용을 하지 않은 ‘단순 실수’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론적 배경의 표절은 가장 중대한 표절 중의 하나다. 이론적 배경은 본인이 직접 해당 선행연구 논문을 읽고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출처를 밝히고 인용해야 하는 것이 학술 논문의 기본이다. 인용을 했다고 하더라도 표절자는 선행연구를 읽지 않고 다른 사람이 노력해서 만든 인용문을 그대로 도용한 꼴이 된다.

심각한 아이디어 도용
이번 표절 의혹 논문들 중 일부에서 다른 사람의 논문 아이디어를 도용한 경우도 많이 발견됐다. 문대성 당선자의 박사학위 논문과 석사학위 논문(「태권도 국가대표 선수의 경쟁상태 불안에 관한 연구」)는 각각 김모씨의 박사학위 논문과 김모씨의 석사학위 논문(「태권도 선수들의 시합 전 경쟁상태 불안에 관한 연구」) 주제와 거의 흡사한 수준이라고 학단협은 밝혔다. 강기윤 당선자의 경우도 주민자치센터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 역시 논문의 주제와 논의 전개방향이 다른 논문과 매우 흡사하다고 분석했다.

중복게재와 타인 논문 무임승차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 등을 충분한 설명이나 출처 없이 학술지에 쪼개 기고하는 ‘중복게재’도 있었다. 또 다른 사람이 작성한 논문에 자신이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리거나 그런 식으로 도움을 얻는 사람에게 자신의 논문에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리는 등 학술논문을 놓고 서로 이름을 올려주는 방식이 많았다. 신경림 당선자는 논문을 쪼개는 형식으로 자기표절을 했으며 부적절하게 자신을 논문 저자로 올려 자격을 부여받기도 했다고 학단협은 지적했다.

학부생 수업 리포트를 무단 도용
염동열 당선자의 박사학위 논문「시민참여가 정책 수용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관한 연구」(국민대, 2011)의 경우에는 행정학 전공의 학부 학생이 제출한 리포트「정책집행과 정책불응」4페이지 모두 표절했다. 이는 표절 행위를 넘어서 박사학위의 권위를 스스로 포기하는 행동이라고 학단협은 지적했다.

정치인들의 표절 불감증
표절 의혹을 받고 있는 7명의 제19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은 모두 표절이 얼마나 심각한 학술적인 ‘도둑질’인지를 제대로 인식을 못하고 있다고 학단협은 제기했다. 이들은 모두 내용만 독창적이면 됐지, 서론과 이론적 배경은 다른 사람이 연구한 것을 그냥 옮겨 놓아도 상관 없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자신의 제자 논문을 심사했다는 이유만으로 학술논문에 자신의 이름을 1순위로 올려놓는다든지, 다른 사람의 석사학위 논문을 박사학위 논문으로 둔갑시키는 행위는 표절에 어느 정도의 불감증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정리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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