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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62 꽃의 색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62 꽃의 색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2.05.07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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色 하나에도 물리·화학이 들었더라!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草木怒生이라, 새싹들의 기운찬 합창 끝에 때마침 흐드러지게 萬化方暢하더니만 어느새 꽃다운 풀과 짙푸른 나무그늘이 깃드는 綠陰芳草에 성큼 들었다. 아리따운 봄꽃들이 다퉈 폭죽 터지듯 함성을 지르며 저마다 구색을 갖춰 형형색색으로 한껏 피워대니 대자연의 품새가 더없이 아름답고 그리도 포근할 수가 없다.

花無十日紅, 꽃은 쉽게 이울어도 열매를 남기기에 서러워하지 않는다. 암튼 꽃은 다름 아닌 식물의 생식기다. 동물들은 그것을 다소곳이 사타구니 아래에 몰래 살짝 숨겨두는데 저것들은 혐오스런 물건들을 떡하니 공중에다 덩그러니 매달고 기껏 고개를 내빼고 色態를 뽐내고 있다니! 알다시피 꽃은 잎이 변한 것이고, 꽃가루를 곤충·동물·바람에 실어 널리 멀리 퍼뜨리자고 냄새까지 풍기며 저런다. 꽃가루와 암술이 만나는 꽃가루받이(受粉)은 곧 식물의 ‘짝짓기’요 정받이(受精)는 ‘임신’인 것. 꽃을 유달리 좋아했던 분류학자 린네(Carl von Linnaeus)가 말하기를 꽃은 ‘가운데 여자(암술) 하나가 누워있고 둘레에 여러 남자(수술)가 있는 꼴’이라 했다. 옳거니!

대부분 꽃들은 자가수분 하지 않아

꽃에는 한 꽃송이에 꽃술(암·수술)을 다 갖는 양성화, 암꽃과 수꽃이 따로 피는 단성화가 있으며, 단성화에는 같은 그루에 암·수꽃이 피는 雌雄同珠(암수한그루)가 있는가 하면 암컷과 수컷이 따로 있는 雌雄異珠(암수딴그루)도 있다. 후자에는 시금치, 한삼덩굴, 수영들과 같은 풀과 은행나무, 삼, 뽕나무, 초피나무, 비자나무, 주목 등의 나무가 있다. 예사로운 푸나무들이 아니로군!  
헌데, 대부분의 꽃들은 제꽃가루받이(自家受粉)를 하지 않으니 이를 ‘自家不和合性’이라 하며 이는 近親交配를 피하기 위함이다. 지렁이, 달팽이 따위가 雌雄同體(암수한몸)이지만 自家受精을 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치다. 우리는 이를 고상하게 優生學이라 부르지만 그 까닭은 이들 식물과 동물에서 배운 것. 그러나 예외로 보리나 벼 같은 벼과(禾本科)식물은 자가수분을 하고, 꽃잎이나 꽃받침조차도 열리지 않고 자가수분 하는 閉花受精도 있으니 이런 꽃을 閉鎖花라 하며, 괭이밥속(屬), 물봉선속, 제비꽃속, 바위취속, 닭의장풀속 등등 아주 쌔고 쌨다.

사람들은 꽃을 먹거나 꾸밈은 물론이고 향수, 종교의식에도 쓴다. 그런데 왜 꽃들 색깔이 그리도 다양할까. 꽃잎세포에는 화청소(花靑素, anthocyanin)라는 물질이 들어있다. 과일에도 많이 들어있는 항산화물질이라고 칭송받는 안토시아닌은 산성에서는 붉은 계통의 색을 발하고 알칼리성에선 푸른 쪽의 빛깔을 내니, 그 성질이 화학실험에 쓰는 리트머스(litmus)를 빼닮았다. 아니다. 실은 리트머스종이(액)는 리트머스이끼식물(地衣類)에서 화청소를 뽑아서 종이에 녹여 묻힌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진달래나 철쭉꽃이 붉은 것은 식물이 산성인 탓이고, 제비꽃이나 붓꽃 등이 보라색인 것은 알칼리성인 때문이다.

꽃들 색깔은 왜 그리도 다양할까

그런데 시큼한 핏빛 참꽃(진달래)을 한 묶음 따서 꾹꾹 씹어 먹고 나면 입가가 푸르죽죽해지니 그것은 침이 약한 알칼리성이라서 붉은 꽃이 푸른색으로 바뀐 것이다. 다른 예로, 봉숭아 꽃물을 짜 옅은 식초를 부어보면 금세 붉게 변하고 묽은 양잿물을 떨어뜨리면 푸른색으로 퍼뜩 바뀐다. 또 보라색 도라지꽃에다 왕개미를 잡아넣고 정신 사납게 몇 바퀴 뱅뱅 돌리면 발랑 뒤집힌 개미가 오줌(개미산)을 질금질금 깔겨 난데없이 온통 빨간 등불이 꽃잎에 켜진다. 이 모두가 화청소가 부리는 요술이다.  

그리고 애기똥풀(幼兒便草)이나 개나리가 노란 것은 카로티노이드(carotenoid)계통의 색소가 듬뿍 든 탓이다. 그런데 새하얀 목련화나 배꽃에는 화청소도 카로티노이드도 들어있지 않아 말 그대로 ‘흼’ 그 자체다. 이들 꽃잎의 세포 틈새에는 공기가 들어 있어서 그것이 햇빛을 받아 亂反射해 희게 보이는 것이니, 겨울 눈송이나 흰 머리카락이 그런 것과 원리가 똑같다. 아무렴, 꽃 색 하나에도 화학과 물리학이 들었더라! 어쨌거나 꽃잎의 수도 외떡잎(單子葉)식물은 3의 갑절(倍數)고 쌍떡잎(雙子葉)식물은 4와 5의 배수다. 그렇다면 쌍떡잎인 살살이꽃(코스모스)의 꽃잎은 몇 장일까?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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