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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빈곤화’ 극복하려면 일자리 나누기·경제개혁 우선
‘삶의 빈곤화’ 극복하려면 일자리 나누기·경제개혁 우선
  • 이성백 서울시립대·철학
  • 승인 2012.04.25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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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10년 한국사회 키워드’ 분야별 분석과 전망_ 양극화

이성백 서울시립대·철학
사회적 양극화, 더 전통적인 표현인 부익부 빈익빈의 심화는 오늘날에만 특수한 현상이 아니다. “시민사회는 부의 과잉에도 불구하고 빈곤의 과잉과 빈민층의 창출을 해결할 수 있을 만큼 … 충분히 부유하지 않다”는 헤겔의 말에서도 이미 일찍이 간파되고 있듯이 그것은 자본주의적 경제체제의 일반적인 역사적 경향이다. 포드주의-케인즈주의 축적체제에 근거한 복지자본주의 시기에 대중들의 실질적 소득의 향상을 통해 일정 정도 완화된 것처럼 보이면서 잊혀져왔던 양극화의 경향이 신자유주의 시기에 들어서면서 다시 되살아난 것이다.

문제는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양극화가 가파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심각할 정도로 극한적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20대 80’ 정도로 표현되던 양극화가 이제는 ‘1대 99’로 표현될 정도로 대부분의 소득이 1%에 집중되고 있는 반면, 99%의 생활수준은 이미 감내할 수 있는 선을 넘어버렸다.

이제는 널리 알려져 있듯이 양극화의 근본적인 원인은 신자유주의적 축적체제에 내재해 있는 구조적 메커니즘에 있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기술적 기반으로서의 정보화가 생산과 사무의 자동화를 통해 인간 노동력을 일자리로부터 몰아내고 있다. ‘노동 없는 생산’, ‘고용 없는 성장’이 정리해고, 청년실업과 같은 대량실업, 비정규직, 외주 하청노동 등 노동형태의 악화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빈곤화는 사회적 불만을 증폭시켜 월가 점령시위와 같은 대중적인 저항행동을 세계 도처에서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울러 신자유주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확산과 함께 신자유주의의 폐해들을 극복하는 대안을 찾으려는 쪽으로 전사회적인 관심이 이동됐다. 이런 과정에서 한국에서는 ‘복지’가 대안적 상징으로 떠오르게 됐다.

그러나 현재까지 보수나 진보진영에서 제시된 복지 정책은 양극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되기에는 한계가 너무나 크다. 부자증세만으로는 재원이 제대로 충당될 수 없는데, 이마저도 부자들이 거부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시기에 부자들의 재산이 엄청나게 불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자들은 이를 한 푼도 양보하려 하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는 버핏세 도입이 좌절됐고, 한국에서는 부자증세가 제대로 공론화되지도 못하고 있다.

더욱이 20세기 서구 사회민주주의적인 복지 정책을 모델로 삼고 있는 현재의 복지 정책은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20세기 서구의 복지는 노동과 소유의 결합을 기본전제로 한 것인데, 바로 대량실업의 원인으로서의 일자리의 사회적 감소가 전반적인 추세이기 때문에 노동과 소유의 결합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이른바 노동패러다임으로부터 탈노동 패러다임으로의 세기적 전환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추세에 부합하는 단순 ‘복지’를 뛰어넘는 획기적인 사회정책이 강구돼야 한다.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초래된 양극화는 단기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축적체제로부터 새로운 축적체제로의 전환의 장기적 과정 속에서 풀어나가야 할 시대적 과제다. 일단 당면한 급한 불을 끄기 위해서 복지 정책이 시행될 필요가 있으나, 양극화 문제에 대한 어느 정도 제대로 된 해결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감소하는 일자리를 서로 나누는 노동시간의 단축이 이뤄져야 한다. 특히 OECD 국가 중에서 노동시간이 가장 긴 한국으로서는 노동시간의 단축이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도 필수불가결한 과제이기도 하다. 또한 부자들에게 더 많은 부가 집중되는 소유구조를 개선하는 차원에서 재벌 개혁이 필요하다. 이러한 경제적 개혁의 사회적 노력이 포스트신자유주의적 축적체제로의 전환으로 이뤄지면서 양극화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극복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성백 서울시립대·철학
독일 베를린자유대에서 박사를 했다.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장으로 있으며, 주요 논저로 『포스트구조주의의 헤겔 비판과 반비판』, 「노동해방이념의 재구성」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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