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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을 위해서라도 복지 필요한 시대 접어들었다
성장을 위해서라도 복지 필요한 시대 접어들었다
  • 이태수 꽃동네대·경제학
  • 승인 2012.04.25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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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10년 한국사회 키워드’ 분야별 분석과 전망_ 복지

이태수 꽃동네대·경제학
20세기 말엽 한국 사회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망령에 깊이 사로잡히게 됐다. 시장의 경쟁 메커니즘이 일국의 경제권을 넘어 세계 경제 차원에서 가장 효율적이며 우월적 성과를 낸다는 이 정치적 맹신은, 노동을 제외한 모든 상품과 모든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강제했으며, 초국적 자본의 이해가 세계의 구석구석을 지배하는 질서를 만들어 냈고, 그 혹독한 대가를 IMF 경제위기라는 형태로 치러야 했다. 

사실 자본주의 황금기의 성장, 번영과 비교할 때 빈약한 경제적 성취만을 입증한 신자유주의는 지구촌 곳곳을 10대 90의 사회로, 승자독식의 사회로, 패자부활이 불가능한 약육강식의 사회로 초토화했으니,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불행하게도 이 땅에서 진보의 역사는 잠정적으로 정지되고 무한경쟁의 정글 속에서 인간의 존엄이 사라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생존방식 만이 활개를 치는 형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할만하다.

한국사회가 그동안 ‘복지국가’에 대한 고민 없이 일방적인 성장지상주의, 시장만능주의를 표방한 결과 현재 감내해야 하는 사회적 위기 상황의 심각성은 매우 크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운영원리는 양적 경제성장을 통한 사회발전이었고 이 과정에서 경쟁과 효율은 필수불가결한 작동기제가 돼 왔다. 아울러 개인의 삶은 개인의 노력과 능력의 결과로서 보장돼야 한다는 자조주의에 기반하고 있었음이 사실이다. 더 빠른 성장과 더 많은 성장을 위해서는 인간 본연의 권리나 자유, 창의성, 더 나아가 공동선 등은 잠시 유보되거나 하위적인 개념으로 제약시킬 수 있다는 전제가 사회적 당위로 강요돼 왔다.

성장제일주의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는 인간의 존엄성과 품위가 절하되고 노동력으로서의 가치까지 저하됨으로써 성장의 동력이 상실되고 한계가 극명히 노정되는 사회가 됐다. 한편으론 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이 정착되고 자본과 노동의 균형은 심각히 파괴된 상태에서 자본의 이윤 창출이 곧 국부의 창출이란 맹신은 일방적으로 굳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관념은 곧바로 현대자본주의 중요한 생산요소인 지식(knowledge)의 담지자로서 노동이 지닌 가치가 더욱 중시되는 역설적 상황에 직면하게 되며 양자의 괴리는 우리 사회의 미래에 암운을 던져주는 주요한 거시적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런 거시적인인 위기는 국민들의 일상생활의 위기로도 관철되고 있다. 아이들을 낳아 기르기 어렵고, 교육과 의료, 주거 등의 부담이 개별 가구의 소득을 잠식하며, 자신의 노후조차 오로지 스스로의 책임에 머물고 있어 삶의 불안정성과 파탄 가능성이 늘 엄존하게 됐다.

따라서 현재 한국 사회에서 복지국가의 필요성은 이러한 현실에서의 개인적, 가정적, 사회적 위기의 심각성으로부터 확인되는 바이다. 이제 한국 사회는 복지국가로서의 국가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고는 더 이상 지속가능한 사회가 불가한 시점에 와있다. 복지국가 없이는 민중들의 삶의 기반이 와해되며 동시에 더 이상 지속가능한 경제성장도 불가하다.

특히 우리나라가 개방경제 하의 대외 지향적 경제발전 전략을 끝내 취할 수밖에 없다면, 복지국가를 통해 국민 대다수가 튼튼한 인적자본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패자부활이 가능한 혁신적 사업들을 시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관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젠 성장을 위해서라도 복지가 필요한 시대가 온 것이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복지국가 담론’은 이러한 복지국가의 필요성과 당위성이 반영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6·2 지방선거 이후 벌어지고 있는 정치권의 보편적 복지논란과 선거쟁점화는 바야흐로 한국사회에도 드디어 복지정치(welfare politics)가 시작됐음을 알리고 있다.

모쪼록 풍성한 복지국가 담론과 역동적인 복지정치의 장을 통해 한국 사회가 비록 뒤늦은 감은 있을지라도 복지국가의 大道로 들어서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 복지국가의 주체세력 형성과 복지국가를 위한 담대한 운동, 그리고 복지국가에 대한 정합성 있는 청사진 확립 등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태수 꽃동네대·경제학
연세대에서 박사를 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복지국가사회복지연대 등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주요 저서로는 『왜 복지국가인가?』, 『한국 복지국가의 전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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