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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코르뷔지에∙미스 반데어로에, 그러니까 당신들이 주범이다
르코르뷔지에∙미스 반데어로에, 그러니까 당신들이 주범이다
  • 북학 기자
  • 승인 2012.04.05 0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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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재 이화여대 교수가 모색하는 '몸과 만나는 건축'

임석재 이화여대 교수(51, 건축학과)가 43번째 책을 냈다. ‘건축학자’라는 딱지를 떼더라도, 43권의 저술이란 결코 녹록치 않은 결과물이다. 『추상과 감흥』,『미니멀리즘과 상대주의의 공간』,『건축, 우리의 자화상』,『서양건축사』(전5권), 『서울, 골목길 풍경』, 『한국의 간이역』……. 아마 그 스스로도 자신의 저술 43권의 제목을 다 꿰고 있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데 그가 이번에는 기존의 작업과는 조금 다른 접근을 보였다. 『기계가 된 몸과 현대 건축의 탄생』(인물과사상사, 2012.3)이다. 제목부터 독특하다. 기계-몸-건축이 엉켜있기 때문이다. 아하, 그렇다면 그는 지금 새로운 모색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20세기 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의 사보아 빌라 실내 전경(1931)

이렇게 말한다. “몸과 건축이라는 주제는 말 그대로 몸 이론과 건축을 연계시켜 연구하는 것이다. 몸 이론을 활용해서 건축을 새롭게 해석하기도 하고 반대로 건축을 통해 몸 이론의 범위를 넓히거나 몸 이론에서 애매했던 부분을 명확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이것은 분명 요즘 불고 있는 ‘융합’의 영향이기도 하고, 또 융합의 구체적 예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이미 서구 건축학계는 1980~1990년대에 ‘몸과 건축’이라는 주제를 소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푸코와 메를로 퐁티의 반성철학을 건축에 적용시킨 새로운 연구, 인체와 고전주의 오더 양식을 대응시키는 전통적 이론의 재고찰, 장식 이론을 도입한 새로운 건축 상징 이론 등이 그렇다.

분명 임 교수도 이들의 영양분을 흡수했으리라. 그렇지만 그는 아쉬워한다. “어쩐 일인지 이를 끝으로 1990년대 후반부터 ‘몸과 건축’이라는 주제는 소리 없이 시들해졌다”는 것이다. 인문사회과학, 의학, 과학, 예술 사이의 연관성을 높여가며 이들 분야의 경계에서 몸 이론은 쑥쑥 자라났지만, 건축계에서는 이론 연구 자체가 쇠퇴했다. 임 교수는 “신자유주의니 세계화니 하는 정치 경제 흐름의 직격탄을 맞아 건축계는 전 세계적으로 자본에 급격히 종속됐으며 바야흐로 이론 실종 시대가 오고야 말았다”라고 지적한다. 이런 마당에서 그가 몸과 건축을 연계한 이론적 작업을 모색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론 연구에 조금이라도 소질이 있는 건축 이론가거나 아니면 공부의 범위를 조금이라도 넓혀본 건축 이론가라면 ‘몸’이라는 한 음절짜리 단어 하나를 듣는 것만으로도 이것이 건축과 연계?융합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깨달을 수 있”으리라고 강변하기까지 한다.

43번째 책인『기계가 된 몸과 현대 건축의 탄생』은 현대 건축의 최대 주주라 할 기계론이 몸과 건축에 스며들어 우리의 일상생활, 즉 현대 문명을 지배하게 되는 과정을 추적한 책이다. ‘몸과 건축’에서 상상력을 발동한 임 교수는, 현대 문명이 인간의 몸을 관통하는 방식에 의문을 품게 된다. 그에 따르면, 현대 문명이 몸을 보는 시각은 ‘극단적 기계론이며 부위론’이다. 그가 다빈치와 데카르트를 추적, 계몽주의 건축을 거쳐 르코르뷔지에와 미스 반데어로에를 조명하는 것은, 바로 이들이 이러한 기계론과 부위론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론 연구가 쇠퇴한 건축계

미스 반데어로에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1929)
“건축도 몸을 둘러싸고 벌어진 현대 문명의 패착과 횡포와 고스란히 맥을 같이한다”라고 그는 말한다. 인간이 자신의 몸을 대하는 방식은 자기가 사는 집에 그대로 드러나게 돼 있으며, 이것의 총합이 한 사회의 건축 현상이 된다. “서울 등 대도시에서 요즘 새로 짓는 건물은 고층 아파트와 대형 상업 시설이 99퍼센트를 차지한다. 중소 규모의 차분하고 예술성 있는 작품은 전멸하다시피 했다. 감성을 보듬어주고 편히 쉬며 사색하고 산책할 만한 건물은 정말 찾기 힘들게 됐다.” 그가 ‘몸과 건축’ 시리즈를 연구하고, 이를 대중적 교양서로 출판하겠다고 구상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기계화된 몸과 현대 건축의 탄생은 어떤 경로를 거쳐 왔을까. 그의 발길을 따라가보자.

"다빈치와 데카르트 등 몸 기계론을 주창하고 개척한 일차적 인물과 그들의 이론을 찾아냈으며 이것이 현대 문명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추적했다. 건축은 이런 추적에서 직접적 관계를 갖는 유용한 매개다. 우리의 일상을 관장하는 주변 환경을 물리적 구조체라는 ‘구체적 물건’으로 만들어 구성해내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건물은 이론으로 제시된 추상적 내용을 구체화해서 실제 눈으로 확인하게 해주는 데 유리한 매개다. 이는 ‘건물은 사람이 몸을 바라보는 시각을 고스란히 반영한다’라는 ‘몸과 건축’ 이론의 일반 명제와 다르지 않다.

이에 따라 ‘다빈치-데카르트-건축’의 삼각 축을 뼈대로 기계론과 부위론이 현대 문명을 형성하고 장학해간 과정을 추적할 수 있다. 다빈치는 인간의 몸을 기계적으로 본 최초의 인물 가운데 한 명이며 이를 건축과 연계시킨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데카르트는 이런 몸 기계론을 이론적으로 정리해서 사상적 뒷받침을 마련했다. 여기에 절대 공간과 순수 물질이라는 개념을 더해서 몸 기계론이 일상 생활로 퍼지고 궁극적으로 현대 문명으로 확장할 수 있는 토대를 닦았다. 절대공간과 순수 물질이란, 한마디로 인간을 둘러싼 자연-인공 환경 전반에서 주관적이고 상징적이며 자의적인 요소를 모두 제거함으로써 공간을 순수 과학의 공식이나 숫자처럼 객관화되고 계량화된 상태로 정리하겠다는 개념이다.

계몽주의에 들어와서 페로와 렌 등 일련의 경험주의?과학주의 건축가들이 등장해서 ‘공간 비우기’를 통해 데카르트의 주장을 건물에 적용하는 새로운 시도를 한다. 이렇게 비워진 공간은 이후 19세기 산업혁명과 자본주의를 거치며 대형화되면서 ‘텅 빈 거대한 공간’으로 확장된다. 공간이 면적으로 환산되는 순간이며 면적은 다시 재화와 동의어가 됐다. 19세기 만국박람회는 이런 ‘텅 빈 거대한 공간’의 발전을 이끈 국제적 행사였다.

그 끝에 나온 것이 르코르뷔지에와 미스 반데어로에의 건물 모델이다. 르코르뷔지에는 철근 콘크리트 모델을, 미스 반데어로에는 철골 모델을 각각 완성한 장본인이다. 두 모델을 합하면 20세기 건물의 99퍼센트를 차지한다. 그만큼 두 사람의 중요성과 위치는 절대적이며 20세기 건축을 대표하는 양대 산맥으로 통한다. 두 사람의 건축은 다빈치에서 시작해서 400여 년을 이어온 기계론과 부위론의 산물이다. 물론 두 사람의 작품 자체는 일정한 예술성을 확보하며 수준 높은 고급 예술작품의 반열에 올라 있다. 이들이 타계한 지도 몇십 년이 넘어 21세기에 접어든 지금, 이들의 작품은 바야흐로 고전 걸작처럼 되어가고 있다. 아울러 20세기를 이어온 수많은 건축가와 사조의 예술 작품은 대부분 두 사람의 건축 모델을 배경으로 삼는다. 한마디로 두 사람이 없었으면 20세기 건축은 없었다고 할 정도다.

두 사람의 절대적 영향력은 고급 예술로서의 건축 작품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조형 환경 역시 99퍼센트 두 사람의 건축 모델로 구성된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이들의 모델이 기계론과 부위론 위에 서 있기 때문에 이것이 수준 높은 예술적 통제를 받지 못하고 일상 환경으로 내려올 경우 기계론과 부위론의 폐해가 극대화돼 나타나게 된다는 점이다. 흔히 ‘무표정하고 삭막한 회색 상자’로 통칭되는 현대 대도시의 비인간적 속성은 여기에서 나온다. 여기에 후기 자본주의가 시작된 1990년대 이후에는 대형 상업 공간의 문제까지 가세한다. 기계론과 부위론이 결국 물질주의를 이루기 위해 나왔기 때문에 이 두 이론의 부산물인 두 사람의 건물 모델 역시 자본의 집적을 돕는 상업 공간으로 귀결되는 것은 어쩌면 정해진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본문인용)

거장에서 주범으로 낙인 찍힌 두 사람
 
르코르뷔지에와 미스 반데어로에는 20세기 현대 건축을 완성한 장본인이기 때문에 이들의 건축에 대한 연구는 그동안 다양한 각도에서 진행돼왔으며, 그 성과도 셀 수 없을 정도다. 임석재 교수도 자신의 서재에 르코르뷔지에에 대한 단행본 40여 권, 미스 반데어로에에 대한 것 20여 권이 있을 정도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임 교수가 자부심을 갖는 것은, 『기계가 된 몸과 현대 건축의 탄생』이야말로 이들 20세기 건축계의 거인들을, 그리고 그들의 건축을 몸 이론의 관점에서 해석한 ‘최초의 연구’라는 起源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다.

이렇게 접근하면, 지금까지 찬양의 대상이었던 두 인물, 르코르뷔지에와 미스 반데어로에는 “기계론과 부위론의 부산물로서 현대 문명이 겪는 폐해에 대한 건축적 주범이다”라는 결론을 만나게 된다. ‘몸과 건축’ 시리즈의 맨 앞에 놓인 이 책『기계가 된 몸과 현대 건축의 탄생』을 조금 눈여겨봐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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