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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동향] 뉴 사이언티스트誌와 네이처誌 격돌
[해외동향] 뉴 사이언티스트誌와 네이처誌 격돌
  • 박소연 객원기자
  • 승인 2002.07.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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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09 18:48:44
정해진 심사 과정을 거쳐 권위 있는 학술지에 게재되기로 했던 논문이 돌연 그 학술지로부터 외면당한다. 대신에 그 논문을 강하게 반박하는 글이 그 자리를 채운다. 알고 보니 원래 실릴 예정이었던 논문의 저자는 반박 논문의 저자들과 특정한 한 학교에 있(었)으면서도 꽤 오래 전부터 편치 않은 관계이다. 가계도를 좀더 짚어 보니, 반박 논문의 저자들 배후에는 거대 기업이 있었다.

‘컨스피러시’ 류의 영화 이야기가 아니다. ‘뉴 사이언티스트’ 2002년 6월 15일자의 ‘멕시코 옥수수 대소동’에서 폭로한 ‘네이처’의 “전례 없는 처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과학 저널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입장으로 분류되는 ‘뉴 사이언티스트’가 보수적인 입장의 ‘네이처’를 공격했다는 사실까지 포함, 이 사건에는 흥미로운 지점이 한 둘이 아니다. 대체 ‘멕시코 옥수수’가 어떤 ‘스캔들’을 일으킨 것일까.

우선, 문제의 논문이 출현한 맥락을 추적할 필요가 있다. ‘뉴 사이언티스트’에 따르면, 이야기는 2001년 9월, 멕시코 환경부가 “자국의 작은 농장에서 자라고 있는 토종 옥수수 중에 유전자 조작된 옥수수가 발견됐다”고 발표했던 데서 시작된다. 이것이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반대하는 진영에게 민감하게 포착됐던 것은 당연한 일. 같은 해 11월 UC 버클리의 대학원생인 퀴스트(David Quist)와 그의 지도교수인 멕시코 출신 농업학자 셔펠라(Ignacio Chapela)는 이 지역의 옥수수 샘플을 통해, 유전자 조작이 유해한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를 전이시켰음을 실험적으로 확인한 논문을 집필했고, ‘네이처’는 이것을 게재하기로 결정한다. 논문의 내용이 사실로 입증된다면, 생명공학 기업이나 몬산토 같은 다국적 곡물 기업에게 치명타를 입힐 “실탄을 유전자 조작 반대 진영에게 제공할 만한 일”이다.

어쨌거나 사태는 돌연 반전돼, 정작 지난 4월 ‘네이처’에 실린 논문은 퀴스트와 셔펠라의 실험이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고 비판하는 두 편의 글이었던 것. ‘뉴 사이언티스트’는 “이런 식으로 ‘네이처’가 자신의 논문 저자와 심사위원을 무시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평한다. 논문 게재 여부의 번복은 애초의 심사위원들을 무시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논문 게재 이후에 어떤 기술적 오류가 발견되었건 간에, 논문은 세 명의 익명 심사위원이 승인했던 것”이라는 것이 ‘뉴 사이언티스트’가 밝힌 저자들의 입장. 한편 이들은, “‘네이처’에 게재된 비판 논문들이 자신들의 논문에 치명적인 결점을 잠정적으로나마 보여주지 못했으며, 정작 주요한 발견은 문제삼지도 않고 있다”면서, 이는 “반박글의 저자들이 -버클리의- 정치적인 스캔들과 곧장 연관된다”고 주장한다.
흥미롭게도 ‘정치적 스캔들’로 이번 사건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항변에 수긍갈만한 대목이 분명 존재한다. 추후에 게재된 반박문들의 저자들 역시 버클리대학 농업 및 미생물학과와 관계맺고 있다는 것이다. 즉, 첫 번째 반박 논문의 공동저자인 프릴링과 카플란스키가 이 대학 같은 과 소속임은 물론, 두 번째 논문은 과거 같은 대학 소속으로 버클리 대학과 노바티스사의 결연관계에 연루된 메츠, 그뤼세 등의 인물들이었던 것이 어쩐지 석연치 않은 구석이다. 이에 더해, 퀴스트와 셔펠라 역시 버클리 대학 농업 및 미생물 학과 소속인데, 98년 이래로 과 내에 ‘적대자’가 많았던 것도 놓칠 수 없는 대목이다. 이들이 소속 과안에서 ‘찍힌’ 혹은 ‘왕따당한’ 이유는 바로, 노바티스社와 버클리 대학 간의 부적절한 ‘동맹’관계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었기 때문. 오비이락과 같은 우연 혹은 ‘머피의 법칙’이었든간에, 네이처가 프릴링, 메츠 등의 반박문을 게재하면서, 퀴스트와 셔펠라의 논문에 대한 결정을 번복한 이번 사건은 의혹의 여운을 짙게 남긴 셈이다.

이에 대해, 반박글 중 하나의 공동저자인 카플린스키는 “이는 엄밀하게 과학에 관한 문제”라면서, “퀴스트와 셔플라가 자신들의 오류를 수용할수 없으니, 우리 과와 노바티스 간의 협정이니, 기간의 불화, 전지구적 음모 따위를 들먹이고 있다”면서, 제기된 의혹을 불식시키려 한다. 편집자인 캠벨 또한 “출판 결정 이전까지 ‘네이처’는 버클리 대학 내에서의 ‘협정’관련 잡음을 몰랐을 뿐더러, 알았다고 하더라도 게재 결정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번 사건은 ‘뉴 사이언티스트’가 말하듯, “누가 옳았건 간에 과학 담론이 붕괴한 것” 혹은 “과학에서의 동등한 리뷰가 무너지고 있음”에 경종을 울린 사건일 수도 있다. 또 한편으로는 과학 저널의 진보 대 보수 양상의 대립 기제로 파악 할 수도 있겠다. 사태의 전말을 실은 ‘뉴 사이언티스트’의 해석은 ‘네이처’를 교묘히 비꼬면서 유전자 조작 반대 진영 혹은 퀴스트와 셔펠라의 손을 들어 준다. “캠벨이나 ‘네이처’가 생명공학 기업의 푸들 강아지가 아니며, 캠벨 스스로는 버클리-노바티스 거래에 적대적인 편집인이라고 하지만, 퀴스트는 여전히 ‘네이처’의 행동에 정치적 압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현장을 덮치지 않고서야 알 수 없겠지만, 이번 사건 배후에 아무런 불륜도 없었을지, 여전히 궁금한 일이다.

박소연 객원기자 shanti@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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