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길을 찾는 사람이었고 인간의 일생이란 모두 자기 자신에 다다르기 위한 旅程, 아니 그런 길을 찾아내려는 실험이다.”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는『데미안』의 머리글에서 말한다. 지도를 보면 한 눈에 드는 길이지만, 가보면 늘 멀기만 하다. 또 얼마나 차를 갈아타야 하며,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가. 갔던 길을 다시 돌아올 즈음 이미 낯선 것들은 낯익어 있고. 길은 그렇게 다니니까 그렇게 만들어진다. 룩셈부르크로 향하는 길은 이런 ‘위로’에서 시작한다.
네덜란드 라이덴역에서 새벽열차를 타고 덴하그(헤이그)로 간다. 거기서 다시 벨기에의 브뤼셀로, 브뤼셀에서 다시 룩셈부르크로. 6시간가량의 거리다. 차창 가에 앉아 나는 들판 위에다 수많은 이름과 기억들을 썼다가 지우고 지웠다가 써본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네/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31세로 죽은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를 흥얼대니 어느새 에라스무스의 고향 로테르담 부근 철교를 지난다. 드나드는 유람선과 화물선, 끼룩대는 항구의 갈매기를 보니 김사인 시인의 시「목포」가 생각난다.
‘내 졸음의 통통배는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멀어져간다//밖에는 바람 많아 배가 못 뜬다는데/유달산 밑 상보만 한 창문은 햇빛으로 고요하고/나는 이렇게 환한 자부럼 사이로 물길을 낸다’. 아 ‘환한 자부럼 사이로 물길을 내는’ 배들이 멀어지누나. 늘 시작-처음-기원에 대해 눈 뜨게 하는 여행은 미지로 뻗어가는 詩 아닌가.
조금만 더 가면 네덜란드의 도르드레흐트, 이어서 루센달. 10여분만 더 가면 네덜란드 땅은 끝나고 벨기에의 국경을 넘는다. 어느새 동화 「프란다스의 개」, 화가 루벤스나 빈센트 반 고흐를 떠올리는 안트베르펜(안트와프)이다. 이어서 벨기에의 수도 브뤼쉘. 여기서 루벵으로, 브뤼헤로, 오스텐데로, 더 먼 프랑스로 독일로 나는 참 부지런히 향했었다. 차를 갈아타는 틈에, 와플을 사서 허기를 채운다.
동쪽으로는 독일, 북쪽과 서쪽으로는 벨기에, 남쪽으로는 프랑스에 둘러싸여 있는 내륙국 룩셈부르크. 베네룩스 3국의 하나로 강국들 사이(間)에서 어울리며(際), 독일과 프랑스의 완충국가 역할을 해온 나라. 인구 약 50만 명, 국가 면적 서울의 약 4배. 하지만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자그마치 10만 달러, 한국의 5배로, 세계에서도 가장 높다. 자그만 땅, 적은 수의 국민들로 가장 잘 사는 나라. 小國寡民의 이상국가 아닌가. 거듭된 외침을 극복하고 세계적인 철광매장량을 바탕으로 유럽철강조합의 중심에 우뚝 선 나라. 급성장한 금융산업, 아름다운 풍광으로 한 관광산업이 거의 전부다.
룩셈부르크 역에 첫 발을 내딛는다. 모젤 강의 지류인 알제트 강과 페트루세 강의 합류 지점에 있는 룩셈부르크 공국의 수도 룩셈부르크 시. 걸어서, 깊은 계곡을 가로 지른 다리를 건너, 고도 300m의 절벽 위의 도시에 이른다. 이곳이 유럽에서 가장 완벽한 요새. 963년에 아르덴의 지그프리트 백작이 성곽을 쌓은 이후 수난을 겪으며 무려 20여 차례나 파괴·복구과정을 반복하였단다.
바위 섬 같은 요새의 정상에 서니, 아! 서른 즈음에 죽은 영국의 낭만파 시인 셸리(Percy Bysshe Shelley, 1792~1822)의 「비탄(Lament)」이 생각난다. ‘오, 세상이여! 오, 인생이여! 오, 시간이여!/그들의 마지막 층계에 나는 엉금엉금 올라와/전에 내 섰던 곳 바라보니 몸서리치누나.’ 움푹 패인 垓字 같은 계곡을 끼고 우뚝 솟은 바위 섬. 사방은 적이었을 테니, 바위 성벽은 그들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그러나 지금 룩셈부르크는 주변국들과 공생하며 그들의 공격과 악행의 권리를 지켜냈다.
원래 ‘타자’란 이해도 공감도 할 수 없는, 너무나 가까우면서 너무 멀리 있는 자들 아닌가. 사이에 선을 그으려 해도 사이가 없고,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vinas. 1905~1995)의 말처럼, 저울질 하려해도 공유할 잣대(도량형)가 없는 자들. 이런 怨憎會苦의 타자=적과 공생하는 법을 터득한 룩셈부르크. ‘당신의 권리, 생명, 재산을 위협하는 약한 적들과 공생하라! 그 사람이 당신의 쾌락을 감쇄하고 당신의 자기실현을 방해하는 권리를 지켜주라!’는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José Ortega y Gasset. 1883~1955)의 메세지가 바위 성벽에 쩌렁쩌렁 공명할 듯. 적이면서 동료인 타자들과 운명처럼 공생해 온 룩셈부르크. 그건 밑도 끝도 없는 타자들의 공격에 한없이 견딜 수 있는 하나의 ‘知性’ 같다.
돌아 나오는 길에 나는 문득 놀라고 만다. 내가 한때 즐겨 그렸던, 팔 베게 童子僧 그림이 여기 있다니! 멀고 먼 이곳 시가지 광고 간판으로. 참, 신기하다. 내가 찾던 의미가 멀고먼 바깥 어디서 이렇게 남들과 열심히 소통하고 있었다니! 끊임없이 타자들과 만나며 무언가를 교환하는, 무가치한 듯한 이 고요한 교류. 밑 빠진 독의 바닥을 막아줄 듯, 고독의 위로처럼 느껴진다.
최재목 영남대·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