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리포트] 프로이트 영역본 전집 출간 풍경
[해외통신원리포트] 프로이트 영역본 전집 출간 풍경
  • 이택광 / 영국통신원
  • 승인 2002.07.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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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16 12:40:33
프로이트가 새삼스럽게 영국 학계에서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7월에 영국의 대표적 출판사 펭귄에서 그의 주저에 대한 최초의 번역이 완간되는 사정과 이 관심은 무관하지 않다.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것과 같이, 프로이트의 저작에 대한 영역본은 호가쓰 출판사와 정신분석연구소가 공동으로 간행한 24권 분량의 ‘스탠더드 에디션’과 펭귄에서 발간한 15권 분량의 ‘펠리컨 프로이트 라이브러리(나중에 ‘펭귄 프로이트 라이브러리’로 바뀜)’가 있었다. 후자의 판본은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전자를 대체할 목적으로 편집된 것이 아니라, ‘스탠더드 에디션’의 오식을 약간 바로잡는 선에서 대중과 학생들을 위해 아무런 가감 없이 출간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번에 펭귄사에서 발행하는 프로이트의 영역판은 기존의 판본에서 제기됐던 문제점들을 학문적 공론을 거쳐 해결한 것이라서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새로운 프로이트 영역본의 책임 편집인은 아담 필립스로 기왕의 영역본에 수록되었던 무의식, 농담, 그리고 꿈과 히스테리에 대한 주요 에세이들 또한 포함될 예정이다.

公論 모아 기존 번역 새단장

이렇게 30여 년에 걸친 학문적 노력의 결실과 함께 프로이트는 화제의 주인공으로 다시 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그 동안 ‘정신분석학의 神’으로 군림해온 만큼, 숱한 논란의 표적이 되기도 했는데, 실제로 그의 이론이 ‘과학적’으로 근거하고 있는 ‘무의식’이 최근 신경학이나 두뇌학을 통해 말 그대로 ‘과학적’으로 부정되고 있다는 사실도 프로이트의 학설을 논란의 대상으로 만드는 원인이라고 할 만하다. 게다가 당시 다양한 정신분석 이론들이 난립하던 상황에서 유독 프로이트의 이론이 무소불위의 권위를 획득해갔던 내막에 대한 연구들은 프로이트를 둘러싼 종래의 아우라를 한 꺼풀씩 벗겨내는 것이라고 하겠다. 정신분석학이 ‘과학’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제 무엇이 프로이트의 권위를 살아 있게 할 것인가. 마치 이런 질문은 맑스주의 이후의 맑스에 대한 질문과 유사한 것처럼 보인다.

사실 맑스나 프로이트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주로 이들의 이론이 오류이거나 최소한 비과학적이라는 점을 꼬집어 지적한다. 데카르트의 코기토처럼, 프로이트의 무의식이란 것이 ‘발견’이 아니라 ‘발명’이라면, 이를 기반으로 구성된 프로이트의 이론적 체계는 소설과 같은 허구로 판명 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프로이트에 적대적인 논자들은 프로이트가 지나치게 성욕의 문제에 집착한 것이 그의 개인사와 무관하지 않다는 다소 선정적인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여성에 대한 프로이트의 편견은 대부분 이런 그의 개인사에서 연유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프로이트의 이론이 대중적 인지도를 획득하며 확산된 데에는 프로이트의 개인사가 큰 역할을 담당했다. 초기에 프로이트의 이론에 권위를 부여하고 임상학적 지침으로 확정되도록 만든 장본인들은 프로이트 본인의 치료를 받은 여성 환자들이었다. 이들은 환자로서 치료를 받으면서도 동시에 정신분석가로 훈련을 받았던 셈이다. 이런 여성들 중에서도 도드라져 보이는 인물로 안나 폰 리벤과 헬레네 도이치, 그리고 마리 보나파르트 공주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헬레네 도이치와 마리 보나파르트 공주는 프로이트의 딸이면서 프로이트 사후에 프로이트 학파를 주도했던 안나 프로이트와 더불어, 각각 미국과 프랑스에서 여성 심리 전문 분석가로 활동하면서 프로이트의 이론을 대중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도 논란의 여지는 충분히 남는다. 나폴레옹의 증손 조카이면서 나중에 자크 라캉과 프로이트의 유산에 대한 유명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던 보나파르트 공주가 자신의 아들에 대한 근친상간적 욕망을 고백하는 편지를 프로이트에게 띄웠을 때, 프로이트는 자신의 이론적 근거를 뒤집는 답신을 했다. 평소 근친상간에 대해 아주 부정적이었던 자신의 태도를 배반하면서 프로이트는 ‘근친상간이 항상 해로운 것은 아니다’는 위로를 공주에게 전했던 것이다. 물론 이런 프로이트의 답변을 근거로 그의 이중 인격성을 폭로해서 그의 권위에 흠집을 내려는 시도는 종종 있었다. 그러나 당시 ‘프로이트의 돈줄’이라고 불리던 보나파르트 공주를 프로이트가 박정하게 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태도에 대해 프로이트 본인은 ‘나는 사적인 차원에서 지극히 부르주아적이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

과학자에서 문학가로

외부적으로 견결한 노동자의 선생이었던 면모와 달리, 은근히 귀족의 딸과 결혼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는 맑스의 사생활처럼, 부르주아적 질서에 대항하면서도 동시에 그 체계에 타협했던 프로이트의 모순적 삶 또한 흥미로운 스캔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선정적 흥미 거리를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기에 이들은 여전히 우리의 관심 속에 머무를 수 있는 것이다. 바로 그것은 시대의 핵심을 꿰뚫어 볼 수 있었던 이들의 천재성이다. 프로이트의 이론이 오늘날 그다지 ‘과학적’이지 않다고 할지라도, 그의 글이 발휘하는 탁월한 ‘설득력’과 의학, 철학, 그리고 인류학과 자연과학을 넘나드는 민활한 가로지르기의 능력은 부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지속적인 논란 속에서 프로이트는 이제 무오류의 과학자가 아닌 위대한 문학가로서 제자리를 찾은 것이라고 하겠다.
이택광 / 영국통신원 셰필드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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