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05:45 (토)
철학교육과 글쓰기를 위한 제언
철학교육과 글쓰기를 위한 제언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2.03.06 12: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양교육’ 심포지엄 개최

나날이 외연을 넓혀가는 교양교육. ‘무엇을, 어떻게, 누가’ 가르칠까. 20대 초반, 처음 학문의 장에 진입한 학생들에게 교양교육은 어떤 징검다리가 될 것인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학장 도정일)는 지난달 16일~17일 제1회 학술심포지엄을 열면서 ‘교양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물음과 그 답을 원로교수들에게 요청했다. 인문학 분야 교양의 대표적인 두 난제, 철학교육과 글쓰기, 학계원로의 해법은 무엇일까. 이태수 인제대 석좌교수(‘철학,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와 최시한 숙명여대 교수(‘한국 대학에서의 글쓰기 교육’)의 분석은 에두르지 않고 명쾌하다.

철학적 논의의 역사적 연관 이해해야 

이태수 인제대 석좌교수
이태수 인제대 석좌교수(서양고대철학)는 『철학개론』으로 통칭되던 독일철학서를 교양교육에서 철학입문 과정으로, 교과서처럼 도입하는 것은 너무나 구태의연하다고 접근한다. 그렇다고 서양학문 일색의 한국 대학에서 막상 동양철학을 철학 교양에 포함시키는 일은 어느 정도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이 교수는 “외딴 섬과 같은 인상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의 범위에서 교육내용을 구성한다면 “서양철학이든 동양철학이든 상관없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칸트, 로크… 어느 누구의 철학을 가르치든 그 내용과 현대 철학의 쟁점 사이의 연관성을 짚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뭔가 아주 심오하다는 막연한 느낌만 주다 끝나버리는 강의시간은 특히 갓 입문하는 학생들에겐 치명적이라는 것. 이 교수는 이렇게 표현한다. 

“철학적 논의의 역사적 연관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현대의 고전 강의를 보스턴 지역이나 파리 또는 프랑크푸르트에 성지참배를 하는 시간으로 오해한 것 같은 수업을 해서는 안 된다.”

철학 교양을 철학자들의 성지참배로 이끌어 가지 않으려면 어떻게 강의할까. 초롱초롱한 새내기들이 스스로 철학의 세계로 찾아오게 만드는 강의, 이 교수는 학생들의 질문에 답이 있다고 말한다. 

“철학은 거꾸로 돌아보는 일이다. 이 점을 학생들이 확실히 인식하도록 하는 좋은 방법은 질문이 주어졌을 때 그 질문 자체를 문제 삼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예컨대 ‘영혼은 不死인가’라는 질문은 이승에서 사는 사람에게는 영혼이란 것이 존재하고 있다는 전제를 한 질문이다.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 그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오늘날 영미권 철학자들이 주로 논의하는 심신문제 즉 몸과 마음이 서로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에 관한 질문도 아주 큰 전제를 하고 있다. 어쨌든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은 서로 구별된다는 것이 그 전제다. 학생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 과연 영혼이라는 것이 어떤 존재인지부터 따져보자고 되묻거나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의 구별이 그렇게 자명한 것이 아니라고 질문의 성립 자체를 의문시하려 들면 그들이 철학을 제대로 공부할 자세를 갖추었다고 판단해도 좋을 것이다.” 

철학 교양 담당자들은 학생들로 하여금 왜 그 문제가 제기되었는지 어떤 전제 하에서 그 문제가 문제로서 성립했는지도 생각하게끔 이끌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학생들은 그때까지 다루었던 문제가 생겨난 역사의 특정한 지점에 눈길을 보내게 되고, 계속되는 ‘연원 캐기’를 통해 문제를 보는 안목과 생각이 깊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습과 첨삭의 힘’

“학생들은 초중등 과정에서 ‘쓰기’보다 ‘받아 적기’를, ‘읽기’보다 ‘외우기’를 했을 뿐이다. 베껴 쓰고 외우는 데 익숙하기에 제법 만만해 보이는 고시나 공무원 시험도, 이젠 읽고 쓰는 능력이 부족하면 접근하기 어렵다는 것을, 그들은 알거나 받아들이지 못한다.”

최시한 숙명여대 교수(국어국문학과)는 고급의 글쓰기 교육을 하기 어려운 대학 현실을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조목조목 짚었다. 

“글을 별로 써본 적도 없고, 글을 잘 써야 한다는 의식도 빈약하며, 논술시험 공부라는 걸 하면서 자기가 글을 잘 쓰지 못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을 뿐인 학생들 앞에,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불쑥 던져진 ‘고전 읽기’나 ‘사물을 주체적·비판적으로 인식하는 글쓰기’, ‘독자를 합리적으로 설득하는 글쓰기’ 따위는 아예 하나의 고행이다.”

최 교수는 글쓰기 능력에 따라 단계적으로 지도하는 ‘글쓰기 능력훈련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논설, 비평적 산문, 레포트, 논문 등 각 제재에 맞는 표현형식을 중심으로 대학 글쓰기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 논제를 설정하고 자료를 찾아 만들며 결과를 표현하는 전체 과정에서 단계적인 지도를 해야한다. 

최 교수는 교수와 학생들이 글쓰기에 대한 인식이 낮기 때문에 대학 차원의 관심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단계별이든 수준별이든 대학 글쓰기는 결국 ‘실습과 첨삭’ 위주로 개편돼야 하기 때문이다.

“박사학위가 사고력과 표현력을 보증해주지 않는 현실이기에 논술시험을 봐서 전담교수를 뽑고, 그들을 장기간의 연수와 교재 집필을 통해 ‘글쓰기 교육 전문가’로 만들어야 한다. 글쓰기 과목을 담당하는 부서는 학과나 단과대학으로부터 독립된, 전문가가 관리하는 조직이 바람직하다. ‘능력을 기르는 교육’을 하려면 실습 위주의 강의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교안을 통일하고 한 반의 인원을 적게 하며, 능력별로 반이나 과목을 달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아울러 첨삭지도를 자주하고, 평가는 되도록 급락평가 제도를 택해야 한다. 그러려면 교수는 물론 조교도 많아야 하는데, 조교의 훈련만 해도 작은 일이 아니다. 이런 일들은 학교의 전폭적인 재정 지원 없이는 해내기 어렵다.” 그의 따끔한 제안이 시원스럽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