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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 모색할 수 있는 독자적 논의구조 만들겠다”
“‘대안’ 모색할 수 있는 독자적 논의구조 만들겠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2.02.13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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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 프랑크푸르트학파 공식 저널 <베스텐트> 한국판 내놓은 문성훈 서울여대 교수

<베스텐트> 한국판 출간과 관련, 연구모임의 문성훈 서울여대 교수(철학, 사진)를 만났다. 문 교수는 자신들의 연구모임을 가리켜 "특정한 정치적 이념을 견지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어떤 특정한 유파나 사조의 이론을 공유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공통된 지향점을 갖고 있지 않는 비판적 연구모임이지만 그 내부에는 "연구자로서 자신들의 연구를 주도하는 근본 관심, 즉 인식주도적 관심"이 흐르고 있다. 문 교수는 이를 "분야가 어떤 것이든 자신의 연구가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보다 나은 사회를 창출하는 데 기여하도록 한다는 것"으로 풀이한다.

문성훈 서울여대 교수(철학)
철학, 사회학, 문화예술, 정신분석 등 다양한 연구지평에서 만나 사회 문제를 깊이 있게 통찰하며 대안을 모색하는 이들이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베스텐트>를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난마처럼 얽힌 우리 현실에 '새로운 영감을 던져줄 수 있는 이론적 자원'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학제적 고민은 나누되, 그 성과를 하나의 단일한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두진 않는다는 이들은 <베스텐트> 한국판의 '독자적 편집권'을 갖고 한국 학자들의 글도 함께 싣기로 했다. 다음은 문성훈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  '연구모임 사회 비판과 대안'이 <베스텐트> 한국판 편집을 맡고 있다. <베스텐트> 한국판을 편집, 출간하게 된 배경과 '연구모임 사회 비판과 대안'은 어떤 연구모임인지 궁금하다. 또한 <베스텐트>가 지향, 모색하는 '대안'은 무엇인지 말해 달라.

"베스텐트 한국판을 출간하게 된 배경은 두 가지다. 첫째는 한국 지성계의 지적 허무주의 경향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 지성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적 흐름이 있다면 그것은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 하에 확산됐던 해체주의적 경향일 것이다. 근대 계몽주의가 추구했던 보편적 이성에 토대를 둔 진리 인식, 정의 실현, 역사 진보 등이 비판 대상이 됐다. 물론 진리, 정의, 진보라는 이름하에 근대 이성이 야기한 파괴적 결과를 성찰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다. 오늘날 비판은 있지만 대안이 없는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다. 무엇이 잘못됐다는 말은 많지만, 무엇이 옳다는 말은 적다. 그런데 무엇이 옳은지를 전제하지 않은 채 무엇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베스텐트>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산실인 사회연구소의 기관지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비판이론이라는 지적 전통으로 유명하다. 사회 비판과 대안 모색이라는 인식 주도적 관심 하에 학제적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근대 이성을 비판하면서 그 파괴적 결과를 성찰하지만 계몽주의의 이상 자체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근대 이성에 대한 비판을 전제하면서도 계몽주의의 이상을 재구성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베스텐트>는 한국 지성계의 지적 허무주의 경향에 대한 대안 담론을 창출하는 데 일조할 것이다.

둘째는 시대 변화다. 우리는 지금 시대적 전환점에 서 있다. 1980년대 레이건-대처 시대 이후 근 30여 년간 맹위를 떨치던 신자유주의가 내리막에 들어서면서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 사회에서도 신자유주의가 결과한 사회적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한 각종 정책들이 쟁점이 되고 있다. 분명 이런 정책적 논의는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가 정당성을 갖고 장기적으로 추진되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회가 어떤 사회인가에 대한 근본이념이 전제돼야 한다. 그간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 논의들을 살펴보면 대개 민주주의나 분배의 문제에 집중해 있다. 그러나 사회를 볼 수 있는 시각은 다양하다. 프랑크푸르트학파 비판이론이 1930년대에는 마르크스주의가 말하는 생산관계에 따라 사회를 분석했지만, 그 이후 새로운 시대 경험을 수용하면서 사회를 합리성이라는 차원에서 비판하기도 하고, 인정질서라는 시각에서 보기도 하면서 다양한 시각을 발전시켜 왔다. 이런 점에서 <베스텐트>는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사회변동을 분석하고 동의 가능한 미래를 창출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서구 학계의 날카로운 비판과 담론을 직수입, 소개하는 사례는 드물지 않았다. <뉴레프트 리뷰>의 사례도 있다. '프랑크푸르트학파 공식 저널' <베스텐트>여야 했던 이유가 있나? 서구 담론을 이렇게 직수입, 소개할 때 장단점이 있을 것 같다. 기대하는 효과나, 신중해야할 부분이 있다면?

"나는 서구 학계의 유수한 잡지들이 한국에 출간되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첫째는 다른 나라 지성계의 논의를 알게 되면서 우리의 시각을 국제화시킬 수 있고, 둘째는 상대적으로 연구자 층이 두터운 서구 학계로부터 많은 이론적 자양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뉴 레프트 리뷰>도 좋은 시도라고 본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베스텐트>가 출간된다면 보다 다양한 시각을 한국에서 경험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이를 통해 들어온 서구 담론이 어떤 권력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더구나 한국에 없는 새로운 상품을 수입해서 한 동안 소비자들을 현혹할 수 있다는 식으로 생각한다면 곤란하다. <베스텐트>는 나의 책꽂이에 꽂혀 있는 많은 책들 중의 하나이어야 한다. 내가 고심하는 문제가 있어 참고문헌을 찾을 때 그 중 하나가 될 것이고, 무심코 읽다가 새로운 영감을 얻게 하는 이론적 자원 중 하나가 된다면 좋겠다."

△ 이번에 출간된 <베스텐트> 한국판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사회 비판적 연구를 번역 소개하는 동시에, 독자적 편집권을 갖고서 한국 연구자들의 글을 함께 싣는다고 했다. '국제적 공동 작업'인데, 그렇다면 국내 연구자들의 논문도 동시에 서구 학계에 소개되는 형식인가? 악셀 호네트 교수와 함께 매호마다 편집논의를 하는 것인가?

"<베스텐트> 한국판은 독일판에 없는 ‘특집’을 싣고 있다. 이 부분은 한국 편집진의 독자적 판단에 따라 구성된다. 이런 점에서 독자편집권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독일판 편집을 맡고 있는 악셀 호네트 교수와 한국판 특집을 가지고 논의하지는 않는다. 다만 한국판에 실린 한국 논문들의 영문 초록을 보내주고 있다. <베스텐트> 한국판은 이제 시작이다. 시작이란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된 것이 아니라, 많은 것이 모색되고, 또한 가능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독일과 한국 연구자들이 서로 교류하자는 데는 양측 간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다만 이를 어떻게 실현시켜 나갈 것인가는 열려진 문제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법은 <베스텐트> 한국판이 지속적으로 출간되면서 이를 통해 얻은 경험 속에서 마련될 것이다."
 
△ 구체적 내용으로, '선물과 사회통합'이 첫호 쟁점이다. 왜 첫 호 주제가 '선물'인가?

"‘선물’은 오늘날과 같은 시대적 전환기에 시의적절한 주제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30년 동안 만들어 낸 결과는 사회적 양극화다. 1%를 위한 99%의 희생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양극화의 정도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는 모든 사회적 관계가 경제적 교환과 이를 통해 이익을 얻기 위한 경쟁 관계로 환원된 결과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사회가 유지될 수 있을까? 1%만을 위한 사회라면 우리가 함께 살 이유가 있겠는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사회가 유지될 수 있는 가장 기본적 토대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 물음을 제기하게 한다. ‘선물’이란 경제적 이득과 관계없이 자신에게 가치 있는 것을 주고받는 행위를 말한다. 그리고 이는 많은 인류학적 연구들이 밝히고 있듯이 태고사회에서부터 서로 다른 개인, 가족, 씨족, 또는 부족들이 지속적 결속을 이루어내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이다. 더구나 공동체를 나타내는 'commune'이라는 말이 '선물(munis)'과 '결합(com)'이라는 단어로 이뤄졌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선물교환을 통한 결속은 사회가 형성되고 유지되는 토대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사회가 유지될 수 있는 가장 기본적 토대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모든 사회적 관계가 경제적 교환과 경쟁 관계로 환원된 오늘날의 위기 상황을 볼 때 ‘선물’에 담긴 규범적 잠재력은 대안적 상상을 유발할 수 있는 아주 흥미로운 주제가 될 것이다."

△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만, <베스텐트>는 비판이론적 측면에서 논쟁적 지평을 확산하는 계기를 만들어줄 것 같다. 앞으로 <베스텐트> 한국판을 어떻게 편집해갈 것인지 궁금하다. 또 외부 필자의 참여나, 혹 반론제기가 있거나 한다면?

"<베스텐트> 한국판은 사회비판과 대안 모색이라는 큰 틀 속에서 사회비판의 규범적 토대를 마련하는 사회철학적 연구, 현대 사회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사회심리학적, 문화예술론적 연구에 기여할 수 있는 주제들을 선정하고, 이에 적합한 글들을 싣게 될 것이다. 한국판 특집에는 편집진인 ‘연구모임 사회비판과 대안’ 구성원들의 글만이 실리는 것은 아니다. 주제에 적합하다면 외부 필자들의 글을 실을 것이고, 또한 여기에 적합한 필자들을 찾아 나설 것이다. 그리고 한국판 특집에 실린 글들을 둘러 싼 반론제기가 있다면, 그리고 이것이 <베스텐트>의 인식주도적 관심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면 생산적 논의의 장을 마련할 것이다."

△ '논문' 업적 평가 등 경직된 학계 분위기다. 참여하는 연구자들의 부담감도 높을 텐데, 이 점은 한국판 편집하는 데 문제가 되지 않나? 연구모임의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

"<베스텐트> 한국판 특집을 위해 글을 쓴다는 것은 연구자로서 아주 부담스런 일이다. 이는 양적 연구업적에 산입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스텐트> 한국판은 새로 쓴 글을 싣기도 하지만, 이미 학술지에 발표된 글들 중에서 인식주도적 관심과 맥을 같이 하는 글들을 선별해 실을 예정이다. 이는 학술지 속으로 사라져 버린 우수한 글들을 다시 지적 공론장으로 끌어낼 수 있다는데 의의가 있다. 앞서 말했듯 우리 연구모임은 현대 사회 비판과 대안 모색을 위한 이론적 자원을 집대성하고, 이를 토대로 한국 사회 분석을 시도한다는 장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현대 사회 및 정치 분야의 중요한 이론들을 테제화시켜 5권의 단행본을 출간하려고 한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테제들』, 『포스트모던의 테제들』, 『현대 영미 정치철학의 테제들』, 『페미니즘의 테제들』, 『한국 사회에 대한 테제들』이 그것이다. 1권은 이미 출간됐고, 2권은 이번 달에 출간 예정이며, 나머지는 집필 중이거나 기획 중에 있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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