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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에서 '안철수 현상'까지…시선과 깊이의 틈
복지에서 '안철수 현상'까지…시선과 깊이의 틈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1.12.26 1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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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인문사회과학 담론의 흐름

2011년이 저물어 가고 있다. 올해 학계의 이슈가 됐던 담론들은 무엇이었을까. 가능성을 모색한 측면도 있지만, 학술 담론의 특징상 대응이 늦은 아쉬움도 있다.

올해 무엇보다 두드러진 것은 '복지논쟁'을 꼽을 수 있다. 2010년의 무상급식을 둘러싸고 진행되다 선별적?보편적 복지 논쟁으로 확대됐다가 급기야는 서울시장 교체까지 만들어냈다. 학계의 담론으로 한정되기보다 성격상 정당까지 논의에 뛰어든, 확대된 '현실적' 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진보평론> 겨울호가 이 논쟁의 연장선에서 새로운 방향 모색을 제안했다. 그러나 복지논쟁은 조세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된 사안임에도 조세 문제와 관련한 본격적인 논의가 뒤따르지 않았다는 한계가 있었다.

지난 2월 제기된 '공화주의로 접근한 헌법 해석'도 눈여겨 볼 부분. 자유주의 법체계를 보완하고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공화주의의 의의와 내용을 검토하는 학술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한국공법학회?조선대 법학연구원이 '신진학자'를 중심으로 논의를 밀고 나갔다. 이 논의는 "전통과 단절되고 극단적인 사익 추구와 사생활 중심주의, 정치적 무관심 그리고 공공성의 붕괴를 경험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생각한다면, 과거의 공화주의 전통을 밝혀내고 그것을 현대에 되살리는 작업은 결코 탁상곤론에 그치지 않을 것"(김동훈)이라는 희망으로 이어진다.

공화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재조명

이와 비슷한 선상에서 10월 민교협·민주화기념사업회?한국현대사학회가 마련한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이론, 헌법, 역사'는 보수-진영 진영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자유 민주주의'의 개념과 문제점을 맞짱토론으로 이어갔다는 점에서 기억할 만하다. 중학교 역사교과서에 '자유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삽입하겠다는 정부 움직임이 토론의 발단이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자유민주주의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아니라 민주공화국, 또는 민주주의를 그대로 두는 것이 훨씬 낫다"는 비판을,  김용직 성신여대 교수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시기인 지금 정치적 자유권을 거의 완벽히 보장하는 명실상부한 자유민주주의체제가 구현됐다"라고 말하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삽입하려는 정부 방침을 거들었다. '맞장토론' 자체는 좋았지만, 진보-보수 진영간의 '개념'의 이해 방식, 적용 등 끝내 좁혀지지 않은 논쟁이었다.

'인문학'은 올해 단연 환대받은 아이콘이었다. 연세대 국학연구원이 6월에 마련한 '학문의 위기와 공공지식의 재구성'은 사회인문학이 현실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점검한 자리였다. 이어 11월 부산에서 진행된 '부산 세계인문학포럼'은 생활 인문학 운동의 구심점인 부산에서 최초로 열렸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부산 세계인문학포럼은 인문교육의 가치를 재확인하고, 다문화주의를 사유하는 새로운 인문학 창안을 과제로 제기했다. 그러나 여전히 인문학은 野性과 野生의 힘보다는 '보호', '온실 속' 비유의 이미지를 떨쳐내지 못한듯하다. '사회인문학' 논의가 더 확산되지 못한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10년에 걸쳐 진행된 '과거사 청산' 작업이 마무리됐지만, 폭넓은 점검과 대안을 모색하지 못한 인상을 남겼다. 7월 민족문제연구소?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가 함께 개최한 '전환기의 정의와 한국민주주의'는 다시한번 이 문제를 환기해준 자리였다. 이재승 건국대 교수는 "진실규명만으로는 권리구제, 민주발전, 인권증진, 국민화해를 달성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후속작업이다. 진실화해법도 후속작업과 추가적인 조치들의 필요성을 규정하고 있다"라고 아쉬움을 밝혔다. 이헌환 아주대 교수는 친일재산의 국고귀속을 화두로, 이러한 과거청산 작업이 "엄격한 법적 합리성을 통한 이성적 대응의 방식으로 개인과 공동체의 존재방식을 선택"했다고 의미를 매기면서, "우리나라의 법치주의의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 10년에 걸친 작업을 다양한 각도에서 학술적으로 점검하는 것은 사회학자나 법학자만의 몫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종료된' 과거완료 작업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이점에서 '과거사 청산' 작업은 더 첨예한 역사논쟁으로 심화될 필요가 있다.

SNS 현상 정치한 분석 아쉬워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한반도 정세가 시계제로 상태에 빠져들었다. 한?중수교 20주년이 되는 2012년, 중국의 변화를 예의주시할 필요가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올해 중국 학자들의 저작이 활발하게 번역 소개되고, 중국 학자들과의 교류도 잦았다. 리링, 왕후이, 쉬지린 등 중국의 내로라하는 신유학, 사상가들의 저술은 현대 중국지식인사회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척도가 된다. 특히 왕후이의 사상적 궤적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백승욱 중앙대 교수는 "‘초계적 사회’에 대한 왕후이의 논지는 그의 정치적 판단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검토될 필요가 있다. 이 연구와 발언은 어찌보면 매우 ‘비정치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최근 논란의 계기가 ‘티베트 문제’였기 때문에 이는 그저 학술적인 쟁점만은 아니었고, 당의 티베트 정책에 대한 그의 정치적 옹호로 해석됐다"라고 비판적 시각을 던졌다.

지엽적일 수도 있지만, 국문학계에서 이어진 논쟁으로 김흥규 고려대 교수와 황종연 동국대 교수의 '통일신라담론' 논쟁도 흥미롭다. 아직 완료되지 않은 진행형인 이 논쟁은 '통일신라'라는 담론이 일본인 학자에 의해 고안된 것의 무비판적 수용이라는 김흥규 교수의 비판과 이러한 지적이 원전 해석과 지적 엄밀성의 결여라는 황종연 교수의 반박으로 얽혀 있다. 2010년 <창작과비평>을 통해 제기된 논쟁이지만, 근대를 이해하는 다양한 시각의 중층성을 읽어낼 수 있다. 다만, 이 논쟁은 충분히 인접 학자들이 참여해 논쟁의 전선을 확대할 수 있음에도 당사자끼리 주고받는 '제한 논쟁'을 보여줘 아쉽다.

현실 변화를 긴밀하게 사유하는 학계의 반응은 다소 더뎠다. 10월 서울시장 선거를 전후해 부상한 안철수 서울대 교수, 서울시장 선거에서 기존 정치권 인물이 아닌 새로운 인물을 선택할 수 있게 도운 SNS의 현실적인 파괴력 등에 대한 분석은 미흡했다. '안철수 바람'은 정당구조의 지각변동 나아가 한국정치의 새로운 실험 모델(욕망)을 보여줬지만, 정치학계나 사회학계 등의 논의는 아직 수면위로 분출되지 않고 있다. SNS가 지닌 부정적 측면을 과도하게 의식한 정치권의 '규제' 논의가 제기되고 있지만,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 옹호라는 기본적인 가치로 확고하게 반박할 필요가 있다.

SNS와 관련, 놓칠 수 없는 대목이 있다. SNS가 '쟈스민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중동혁명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안철수-박원순 현상 이면에 SNS가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SNS관련 논문은 dbpia에서 가장 많이 다운로드됐다는 것은 이것이 분명 하나의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과연 SNS가 정당정치의 틀을 넘어서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인지, 위험성은 없는 것인지에 대한 논란도 있었지만 SNS는 대중적 현상만큼 아직 충분한 논의가 전개되지 않은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그리스 사태로 불거진 유럽 재정 위기와 자본주의 위기 국면 속 한국경제의 방향에 대한 논의, FTA와 관련 ISD 문제에 대한 대비, 후쿠시마 사고와 핵발전 문제 등에 대한 학계 일각의 고민은 2011년보다 내년 임진년에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ISD는 총리실 산하 태스크포스팀을 꾸려 국가적 차원에서 문제점을 대비할 필요가 있다. 세계 곳곳에서 원전을 축소하고 있음에도 우리 정부는 삼척, 영덕에 원전을 추가로 건설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원전의 경우 타산지석의 교훈, 학습효과가 우리에게 없어 보인다. 탈핵에너지교수모임이 어떤 대안을 제시할지 궁금하다.

어떤 미래를 만들 것인가도 올해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제기한 '2013체제론'이 학계의 共鳴을 이끌어낼지 궁금하다. 임현진 서울대 교수는 '양극화' 현상에 우리 학계가 좀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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