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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사후 남북관계와 동북아 질서
김정일 사후 남북관계와 동북아 질서
  • 윤철기 중앙대·정치학
  • 승인 2011.12.26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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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유지’의 동상이몽

윤철기 중앙대·정치학
북한 체제의 변화에 대한 열망과 기대 혹은 우려와 걱정이 또 다시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은 이 우려와 기대를 한반도를 넘어 전 세계로 확산시키고 있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죽음이 우리 안에 있던 열망과 기대들을 쏟아 낼 ‘기회의 창’이 되고 있다. 그러나 급격한 체제 변화에 대한 기대 섞인 우려와는 별개로 김정일 사후 남북한과 주변국들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질서의 급격한 변화보다는 ‘현상유지’를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제일 먼저 김정은의 권력승계를 지지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미국 역시 ‘북한의 평화적이고 안정적인 전환’을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통해 한반도의 안정을 선택했다. 중국과 미국은 동북아시아의 안정을 협력하면서도 역내에서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경주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과의 동맹외교를 강화하기 위해서 자유무역협정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에 중국은 황금평과 라진ㆍ선봉 특구 개발 등 대북 교류와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해 역내에서 미국과의 경쟁을 지속할 것이다.

북한 역시 대외관계에서 변화를 추진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권력승계의 정당성을 과시하기 위해서 미사일 실험 등 군사적 모험주의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는 현재의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질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전략이기 보다는 대내외적으로 북한체제가 건재하다는 점을 과시하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현상유지를 위해서는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려 노력할 것이다.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의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북한의 입장에서 중국은 체제 안정성을 보장해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동맹국이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 국내에서 공급 부족을 해소하고, 권력 승계 과정에서 권력과 특권의 재생산을 위해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중국과의 경제교류와 협력을 강화할 것이다. 북한이 권력 승계 과정에서 전향적인 외교 노선의 변화를 단행할 할 것으로 예측하기는 힘들다. 대외 정책의 급격한 변화는 자칫 권력 승계의 정통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처럼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김정일이 사망 직전 북한은 6자회담 복귀를 천명한 바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 김일성 주석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김일성과 카터와의 회담을 통해서 극적으로 시작된 핵협상이 지속돼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에 도달했다. 권력승계 과정에서 미국과의 갈등을 피하고, 체제의 안정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결과였다.

김정은 역시 권력승계 과정의 난맥상을 초래할 수 있는 미국과의 갈등을 유발할 이유는 크지 않아 보인다. 6자회담의 복귀 여부와 그 시기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북한은 권력 승계를 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위해라도 미국과 대립하기 보다는 어떠한 형식으로라도 미국과의 대화 채널을 유지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정부 역시 북한체제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바라지는 않는다. 한국정부의 조의 표명은 불필요한 대립과 갈등을 피하고, 북한 문제를 대화를 통해서 효율적으로 관리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명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역시 대북정책의 기조를 한 순간에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12월 22일 이명박 대통령은 ‘비핵화의 진전’을 대가로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에 대해서 유연히 대응하겠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천명했다. 과거와 비교할 때 큰 변화임에는 분명하지만 북한의 정책에 변화에 따라 대응을 달리하겠다는 점을 표명한 것이다. 남북 대화 단절의 빗장을 풀 수 있는 열쇠를 다시 ‘북한’으로 넘긴 것이다. 이는 이명박 정부 역시 그동안의 대북 정책 기조를 변화시키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말해준다.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은 남북한과 주변국들의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 대한 외교적 입장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은 언제 어느 때보다 북한에 유화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주변국들은 동북아시아 질서의 안정이 자국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한국은 한반도 질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남북 대화 재개를 통한 남북 관계 개선에 나서려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정부는 과연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분명히 정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지금 이 시기 우리정부의 결정이 향후 상당기간 남북 관계의 미래와 6자회담에서 한국의 위상과 역할을 큰 영향을 미칠 것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윤철기 중앙대ㆍ정치학
성균관대에서 박사를 했다.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박사 후 연구원, 북한대학원대 SSK 공동연구원으로 있으면서 북한체제 변화의 양상과 성격, 남북한 사회통합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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