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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의 ‘빨간 코’…산타클로스ㆍ코카콜라ㆍ레드컴플렉스를 생각하다
루돌프의 ‘빨간 코’…산타클로스ㆍ코카콜라ㆍ레드컴플렉스를 생각하다
  • 최재목 영남대 교수(철학과)
  • 승인 2011.12.21 16: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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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의 유랑・상상・인문학 ⑨ 핀란드 헬싱키항과 마켓광장에서

발트해의 처녀신상. 조각이긴 하지만 실제처럼 살아있는 듯하다. 사진=최재목
바람과 파도에 의해 임신한 채 떠돌고 있던 발트해의 처녀神. 그 무릎에다, 어디선가 ​​날아온 물새 한 마리가 둥지를 틀었다. 새는 알을 낳는데, 그만 굴러 떨어져 버리고. 깨진 껍질은 하늘과 땅, 노른자는 해, 흰자는 달이 되었단다. 이것이 핀란드식 우주창조의 스토리. 처녀신의 배속에 9년간이나 있던 아이는 태어날 때 이미 노인이었고. 그가 대시인 바이나뫼이넨이다. 그는 지혜와 마법과 시의 힘으로 인간에게 필요한 것 일체를 만들어낸다. 핀란드 인의 꿈과 낭만을 담은 민족서사시 ‘칼레발라’에 나오는 이야기다.

바이나뫼이넨은 여러 영웅이야기의 원형이 되기도 하는데, 나는 핀란드의 혼이라 할 만한 작곡가 시벨리우스를 연상한다. 암울한 시기 작곡을 통해, 괴로움을 ‘꿈’으로 연금하며 새로운 조국을 악보 위에 그려내던 그. 스웨덴에 약 650년, 러시아에 약 100년간 지배를 받은 핀란드. 늘 공포의 대상이었던 주변국. 시벨리우스는 러시아의 압제 속에서도 조국의 자연을 만들어내는 수많은 호수, 삼림을 열렬 예찬한 교향시 ‘핀란디아’와 핀란드 국민의 대서사시 ‘칼레발라’를 작곡한다. 핀란드는 슬픔 대신 희망을 담아 악보에서 재창조된다.

밤이 지나고, 훤히 펼쳐진 하늘과 빛과 물결이 눈에 잡힐 때, 내가 탄 배는 헬싱키에 도착한다. 마켓 광장을 둘러본 뒤 시내를, 그 다음 배를 타고 헬싱키 근해 섬들을 둘러보기로 한다.

헬싱키로 가는 도중의 발트해 풍경. 중서부 유럽에서 볼 수 없는 특유의 푸른 하늘이 아름답다. 섬과 바다가 닿은 곳엔 핀란드인들의 별장이 보인다. 사진=최재목

마켓 광장에서 바라본 헬싱키 항구 모습. 사진=최재목

우선 걸어서 마켓 광장으로 간다. 유럽에는 대부분 역, 항구 가까이에 마켓 광장이 있다. 교회를 중심으로 형성된 시장. 종교・경제・행정이 결집된 생활의 중심지다. 마켓 광장 옆 에스플라나디 공원엔 발트해의 처녀신像이 서 있고. 난 그녀의 아름다움에 홀린다.

핀란드라 하면 순록과 산타클로스, 그리고 무민(Moomin). 무민은 핀란드의 동화작가 토베 얀손이 창조해낸 캐릭터. 핀란드의 숲속 무민 골짜기에 산다는, 주둥이가 하마처럼 큰 초자연적이며 포동포동 귀여운 괴물 가족들. 광장에는 역시 무민, 그리고 순록을 상품화한 것들이 눈에 띈다.

 마켓에는 무민을 힌트로 한 상품들이 보인다. 사진=최재목

마켓광장에서 본 순록(루돌프)을 그린 컵 받침대. 무민의 하마같이 생긴 입과 순록의 뿔을 결합시킨 것처럼 보인다. 사진=최재목

그런데, 순록을 생각하니, 산타클로스가 떠오르고, 또 생각이 자꾸 ‘빨간 색’에 머무는 것은 무엇일까. ‘산타크로스의 썰매를 끄는 순록’. 지금은 자연스런 이미지이나 사실 기획으로 탄생한 것. 핀란드에 오니 이게 또 떠오른다. 

순록이 산타크로스와 결합하고 기독교적인 것으로 변신해 전유물화 되는 시점은 1822년 성탄절 이브. ‘빨간 옷’을 입는 건 1930년대 산타클로스가 코카콜라 선전에 등장한 뒤다. 순록의 코가 ‘빛나던’ 것에서 ‘빨개진’ 것은 코카콜라 로고의 ‘빨간색’(시선집중・식욕・유혹을 상징)에서. 산타의 수염은 코카콜라를 따를 때 이는 거품을 상징한다. 이렇게 순록+산타크로스+빨간색의 세트화 되는 건 19세기 이후 ‘미국의 신학+교회+대중화+상업화+코카콜라 마케팅전략’의 합작품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캐롤송 “루돌프 사슴 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 만일 네가 봤다면 불붙는다 했겠지”의 루돌프가 ‘순록’이다. 원제목은 「Rudolph the Red-Nosed Reindeer」(루돌프, 빨간코의 순록). 가사는 “루돌프, 빨간 코의 순록은 매우 빛나는 코를 가지고 있었네. 그래서 네가 그걸 보게 되면 아마 빛난다고 말할 걸(Rudolph, the red-nose reindeer, had a very shiny nose. And if you ever saw it, you would even say it glows)”. 일본에서는 “새빨간 코의 루돌프 사슴은, 언제나 모두의 웃음거리(まっ赤なお鼻のトナカイさんは いつもみんなのわらいもの)”로 시작한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미국과 일본 가사에는 모두 ‘빨간’이란 말이 들어 있는데 우리 가사엔 빠져 있다. 

「루돌프, 빨간코의 순록」은 실화다. 1939년 시카고의 통신판매사 몽고메리 워드에 근무하는 로버트 메이(루돌프)가 그 스토리를 같은 회사의 선전용 아동서 『Rudolph the Red-Nosed Reindeer』로 만들어 250만부의 베스트셀러를 기록, 1946년엔 재판, 350만부가 팔렸다. 이 책에 근거, 1948년 뉴욕 태생의 미국인 작곡가 죠니 마크스가 작사・작곡, 1949년 진 오트리가 불러 노래는 히트를 친다. 당시 레코드가 200만장 팔렸고, 빌보드차트 1위를 기록했다. 일본에선 1959년 新田宣夫가 번역, 이후 한국에도 소개된다.

이렇게 「루돌프 사슴코」는 구미뿐 아니라 아시아에도 크리스마스 캐롤송의 대표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7년 12월 당시, 20여종 가량의 크리스마스 캐롤송이 수입됐다. 신세기레코드사에서 「빨간 코의 사슴 루돌프」(길옥윤 편곡)였다가 이후 곡명이 「루돌프 사슴코」로. ‘빨간’이란 글자가 빠진다. 한국전쟁 이후 반공교육에서 붉은색을 공산주의나 그 혁명성을 가리키는 색깔로 정하고, 북한・공산주의자를 묘사할 때 ‘빨갱이’라고 비하하여 거부한 레드콤플렉스에서일까. ‘찔레꽃 붉게 피는’의 「찔레꽃」이,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의 「동백아가씨」가 금지곡이 되는데 모두 가사에 ‘레드’가 담겼다.

스웨덴, 러시아 대신 산타클로스로 위장한 코카콜라의 마케팅 전략의 ‘레드’에 딱 걸린 핀란드. 그래도 헬싱키 앞바다는 여전히 빛나고. 

헬싱키 근해 풍경. 빛을 받을 때면 바다는 빛나는 은살결 같다. 사진=최재목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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