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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 자전거로 1천800킬로미터를 달렸다. 왜?
수학자, 자전거로 1천800킬로미터를 달렸다. 왜?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1.12.19 1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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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 이규봉 지음, 『미안해요! 베트남』(푸른역사, 2011.12)

수학자가 자전거를 탄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수학자가 사회현상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더더욱 이상한 일이 아니다. 수학자가 자전거를 타고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의 현장을' 갔다면? 이게 과연 이상한 일일까. 배재대 전산수학과 이규봉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3년의 준비 기간 끝에 2010년 1월 20일, 마침내 하노이에서 호치민을 종단하는 자전거 페달을 밝히 시작했다"라고 이 수학자는 말한다. 이 교수는 주제를 생각한 지 3년, 만으로 2년간 자료를 수집했고 1년간 썼다. 그리고 그의 책은 "베트남하면 필자는 어렸을 적 태극기 휘날리며 춘천역으로 파월 장병 환송하러 나간 일과 그들에게 위문편지 썼던 일 그리고 영화만 보면 나오는 한국군의 무용담이 떠오른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의 어렸을 적 생각의 자리에 '우리 군이 베트남에서 저지른 민간인 학살의 참상'을 밀어넣기란 매우 곤혹스러운 일이리라. 그는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라고 고백한다. "우리 정부가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민간인 학살을 여러 차례 자행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왜곡없이 그대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이 그의 자전거 페달을 힘껏 돌리게 만들었다.

북베트남의 수도였던 하노이에서부터 남베트남의 수도였던 사이공(지금의 호치민)까지 장장 1천798킬로미터를 자전거로 종주한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자전거 종주의 결과물이다. "우리가 저지른 불행한 과거를 알리자는 의도가 아니라, 우리가 저지른 잘못된 일을 우리가 바로 알자는 의도"에서다.

이규봉 교수는 서강대 수학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한 뒤 미국 버지니아공대에서 응용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열정 에너지는 보통 사람의 곱빼기라 할 수 있다. 평소 자전거 타기를 즐겨, 기행문을 남긴 자전거 여행만 현재 8천킬로미터에 이른다. 수학을 실생활과 사회문제에 응용하는 것 외에도 한국 근현대사와 환경문제 그리고 국제 정치와 우리나라 전통 음악에 관심이 많다.

이런 관심의 밑바탕에는 수학적 논리가 작용한다. 수학의 논리성은 어떤 학문을 하든 필수적이라고 믿는 이 교수는 "어떤 분야든 관심을 갖고 파고들면 수학의 논리적인 사고는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도저히 이해가 잘 안 되는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수학과는 달리 왜 똑같은 현상에 대해 완전히 상반된 의견이 나오는 것일까?"라고 의문 부호를 달고 다닌다.

이 교수는 "수학의 결과는 절대적 진리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어떠한 가정(수학적 용어로 공리Axiom)에서 출발했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쉬운 예를 든다. 1+1은 2라고 하지만 1일 수도 있다고 한다. 단위를 '그램(g)'으로 하면 1그램에 1그램을 더하면 2그램이 돼 1+1=2가 맞다. 하지만 '방울'을 사용하면 한 방울에 한 방울을 더하면 역시 한 방울이므로 그 값은 1도 맞다는 것이다.

"수학적 사실이 어떠한 가정을 사용했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다르듯이 사회현상도 사회 구성원의 가치관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는 사회와 역사를 읽는 판단 척도로 '휴머니즘'을 기본 가정으로 삼았다. 하노이에서 호치민까지 그의 자전거가 달려간 곳의 흔적은 이 '휴머니즘'을 바퀴로 굴러간 것이다.

책의 곳곳을 따라가다 보면, 저자 이규봉 교수에게 수학은 좁은 연구실이 아니라 넓은 세계, 아픈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시대를 텍스트로 삼고 있는 학문으로 거듭나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게 된다. 저자가 책의 집필을 위해 동료 학자들에게 꼼꼼하게 자문을 구한 것도 인상적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전태일 대전대 교수, 임동순 한남대 교수, 곽차섭 부산대 교수의 목소리가 함께 共鳴하는 책일 수도 있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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