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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위기인가 ─ 5. 언로가 없다
무엇이 위기인가 ─ 5. 언로가 없다
  • 박나영 기자
  • 승인 2002.07.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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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지방대 위기

전국에 흩어진 기사들을 ‘모으는’ 것이 언론이며, 모은 기사들을 다시 전국에 ‘퍼뜨리는’ 것이 또한 언론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 언론은 이 ‘모으고 퍼뜨리는’ 작업을 공정하게 수행하고 있는가. ‘가독성’을 내세운 언론의 ‘서울소재대학’ 편향적 보도는 교수도, 학생도, 정책도 없어 안 그래도 서러운 지방대들의 소외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지방대에게는 ‘한없이 비좁은’ 언로, 그 현실을 조명해본다.

경북대 홍보실 김선미씨가 보도자료를 쓰면서 중앙지에 소외감을 느끼는 건 늘 있는 일이다. 주요 신문들은 ‘지방대에 뭐가 있겠나’ 하는 생각을 깔고 있는 것 같다. 이번에 미 커넥슨트사에 인턴으로 떠나는 학생들을 다루면서도 그랬다. 7대 1의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이 학생들은 7월부터 12월까지 한달 수입 4백60만원에 숙식, 왕복항공료 등을 지원받기로 했다. 충분히 전국적으로 보도될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파격 대우받고 해외 인턴실습 화제’라는 제목으로 이 기사를 전국면에 보도(2002년 6월 27일자)한 국민일보를 제외하면 동아일보, 조선일보, 한겨레 등이 모두 ‘지방면’에 다루는 것으로 그쳤다. 이 기사를 보도한 동아일보 정용균 기자는 이에 대해 “수도권 대학에서 같은 일이 일어났다면 2, 3면에 올릴 수도 있었을 것”이라 말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답답한 것은 지방대다. ‘학생들을 유혹할 만한’ 지방대의 일들이 중앙언론을 통해 알려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수한 학생들이 전국 대학에 골고루 분포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속사정은 지방대 교수들에게도 매한가지다. 대진대의 경우 4년 전 세계 최초로 ‘문화벤쳐전공’이라는 이름으로 ‘철학사-연극영화-산업디자인’으로 연결되는 학제간 연계전공 프로그램을 기획했었다. 그러나 교육부의 인증, 지원을 별반 받지 못했을 뿐더러 언론에서도 이에 대해 전혀 보도가 없었다. 이상훈 대진대 교수(철학과)는 이에 대해 “서울대나 연·고대에서 같은 일을 추진했다면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을 것”이라고 토로한다.


학회 장소를 선별할 때도 마찬가지다. 지방에서 학회를 열게 되면 아무래도 서울에서 발표하는 것보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어렵다. 이론사회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성국 부산대 교수(사회학과)는 2001년 3월 충남대에서 창립대회를 열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으려면 서울에서 하는 게 좋겠지만, 학문의 지방화에도 기여할 겸 충남대를 선택했다”고 말했었다. 그는 “활동이 알려질 때도 있고 알려지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서울에서 열리는 학회도 마찬가지 아닌가?”라며 지방에서 학회를 여는 것이 서울에서 여는 것보다 불리하긴 하지만, 좋은 아이디어를 낸다면 중앙지에서도 주목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충남대, 부산대, 경상대, 한양대 안산 등 지방소재대학에서 학회를 열어온 김 교수도 올 11월에는 서울 성균관대에서 학회를 열 계획에 분주하다.

홀대받는 자와 홀대하는 자


지방대 홍보 담당자들은 하나같이 ‘언론에 홀대받고 있다’고 호소한다. 김정렬 충남대 홍보실장의 경우 “홍보물을 내보내도 다뤄주지를 않으니 이제는 아예 중앙지에 홍보물을 내보내지도 않는다”고 말할 정도다. 이처럼 언론에서 지방소재대학들을 외면하다 보니 대학들은 어쩔 수 없이 학교 홍보를 위해 ‘아름답지 못한’ 자구책을 마련하게 된다. 실제로 상당수의 지방소재대학들이 고교 선생들에게 수박, 삼계탕, 고급선물 등을 대접하면서 학교를 홍보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일보 김성호 기자(사회부)는 ‘지방대를 많이 다루려고 하지만, 생각대로 잘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지방 어느 대학에서 학부제를 전면 시행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독성이 거의 없지만, 예를 들어 서울의 중앙대에서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기사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 커멘트를 받을 때도 ‘아무래도 가까운 곳에 계신’ 서울소재대학의 교수들을 찾아가게 된다고 하니, 지방소재대학의 교수들이 언론에 얼굴을 내비칠 기회는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문화일보 정희정 기자(사회부) 역시 지방대에 언로가 막혀 있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정 기자는 “기자들이 주로 서울에 있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할 것이다. 서울에 있는 대학들을 취재할 때는 기자실에 앉아 있거나 홍보담당을 만나거나 해서 기사를 얻어올 수 있는데 지방대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해명한다. 그러나 엄연히 ‘지방주재기자’가 존재하는데 이들의 기사가 이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지방대 기사들이 ‘엄격하게’ 걸러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방대에도 ‘입’은 있다


김승수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과)는 언론의 눈이 서울에 집중되는 이같은 현상은 서울소재대학들에 학생, 학부모, 광고주들의 관심이 쏠려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2천억원에 이르는 광고·홍보비 가운데 70% 이상이 서울의 주요대학 출신자들에게서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제까지 대학을 서열화시켜 왔던 언론계는 히딩크가 몰고온 ‘새 바람’에 적지않이 당혹스러울 것”이라며 언론은 다양한 대학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풍토 마련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민대 김동훈 교수(법학과) 또한 “지방신문에서조차 서울에 있는 대학의 문제를 앞쪽에, 그리고 더 크게 다룬다”며, 이런 상황을 타계해 나가기 위해서 한시적으로는 지방대 우대정책을 마련해 일단 지방대 육성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력을 확보해야 할 것이며, 근본적으로는 지역분권운동을 크게 벌여 ‘서울소재대학-지방소재대학’의 대립구도를 깨뜨려 나가야 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조충기 조선대 홍보팀장은 현재와 같이 지방대가 언론에 소외되는 상황에 대해 ‘과도한 욕심을 부리는 건 무리’라며 체념한다. 그러나 지방소재 대학에서 나온 기사라고 해서 서울소재 대학에서 나온 ‘비슷한 가치’의 기사와 ‘비슷한 분량의’ 지면을 할애받기를 원하는 것이 언제부터 ‘과도한 욕심’이 됐는지는 곰씹어볼 문제다.
박나영 기자 imnar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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