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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과 실패는 옆집에 있다
성공과 실패는 옆집에 있다
  • 류수노 한국방통대ㆍ농학과
  • 승인 2011.11.21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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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구실

자연과학 연구자로서 제대로 된 실험실을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실험실과 관련된 실험포장(농장)을 직접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은 더더욱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자연과학자에게 원하는 실험을 자유로이 할 수 있다는 것만큼 큰 ‘축복’은 없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 인생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나아가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가 수행하는 모든 연구의 결과가 반드시 예측하는 대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실험에 임하기 앞서 우리가 세우는 가설이 잘못되거나, 혹은 우리가 수행하는 실험의 과정이 조금이라도 잘못된다면 그 실험의 결과는 애초의 예측과는 무관해진다. 그러나 우리 자연과학자들은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오히려 보다 더 높은 성공률을 예감한다. 

실패가 거듭될수록 그 실패에 낙담하고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공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희망이 우리의 마음을 벅차오르게 한다. 실패 없는 성공이 과연 얼마나 가치가 있을까. 실패를 맛보지 못한 성공이 우리에게 주는 기쁨이 우리에게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 어느 날 성공과 실패는 옆집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진제공: 류수노 한국방통대 교수

우리 연구실에서는 주로 기능성 작물 중에서 특히 안티에이징(노화억제)과 관련해 항산화물질에 관한 프로젝트를 10년에 걸쳐 수행하고 있다. 첨단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초지식 및 동향파악이 매우 중요하다. 모든 연구가 다 그렇지만 첨단을 연구할수록 보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항산화제는 활성산소가 노화의 원인이라는 가설에서 출발했다. 인체에 들어온 산소가 역할을 다하면 활성산소로 변하는데 이 활성산소가 세포노화의 주범이라는 것. 항산화제품은 활성산소를 억제하는 물질로 구성돼 있다. 예를 들어 천연색소 안토시아닌은 활성산소 억제성분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활성산소를 억제하면 체내 산화 스트레스가 줄어들어 노화도 예방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활성산소를 억제하는 항산화제는 음식으로 먹을 때 가장 효과가 크다.

우리 연구팀이 개발한 슈퍼자미 벼품종은 안토시아닌 함량이 식용으로 이용하는 식물 중에서는 가장 높고, 블루베리보다 1.2배나 높다. 쌀의 기능성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키고 사업화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0년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에 선정됐다. 슈퍼자미쌀이 하루 속히 대중화돼 국민의 안티에이징에 기여한다면, 연구자이자 개발자로서 그보다 기쁜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이 쌀이 나 혼자만의 연구결과인 것은 절대 아니다. 우리 실험실에서 나보다 먼저 밤낮없이 피땀을 흘려가며 연구하고 고민했던 선배교수와 그 곁에 늘 함께했던 동료들과 후배들, 그리고 제자들의 노고가 아니었더라면 이 쌀이 우리의 논에서 건강하게 자라나 지금 우리의 밥상에 놓이지 못했을 것이다.

얼마 전 연구성과에 대한 인터뷰에서 방송기자들에게 한국방통대 교수도 실험실이 있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당황했던 적이 있다. 일반인들이 바라보는 우리 대학은 그저 인터넷이나 TV같은 매체 속에나 잠깐씩 비춰지는 신기루 같은 존재인가 하는 서글픈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인터뷰가 시작되고서 나는 그들을 실험실과 실험농장으로 인도하면서 우리대학 교수들의 연구모습을 이제야 알리게 된듯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과 함께 돌아보는 도중 새삼스레 연구실에 앉아있는 연구원들의 모습이 새롭게 눈에 들어오게 됐다. 늘 보는 동료, 후배, 제자들인데 왜 그리 새삼스러웠는지는 알 수가 없는 일이지만, 한 연구실에서 우수한 결과가 나온다는 것은 수많은 실패 속에서 혼자의 힘이 아니라 전임교수님의 역할, 동료교수의 지원, 연구원들의 하나같은 일념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는 너무나 일반적인 진리가 새롭게 느껴졌다.

앞서 말했던 실패의 반복과 그 반복 속에서 찾아오는 성공은 긴 시간동안 혼자서 감당하기엔 너무나 버거운 일이다. 실패의 순간과 성공의 순간에 항상 든든하게 서로를 지켜주는 동료들이 있기에 실패의 씁쓸함도 반감되고 성공의 기쁨도 몇 배로 커지는 것이다.

류수노 한국방통대·농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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