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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영희 선생과‘詩經’의 기억
길영희 선생과‘詩經’의 기억
  • 이영석 서평위원/광주대·서양사
  • 승인 2011.11.14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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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이영석 서평위원 / 광주대·
1970년대 후반 어느 겨울에 나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길영희 선생이 기거하던 한 농장을 찾았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고 무척 많은 눈이 내렸다. 그 농장이 충청남도 어느 곳에 있었는지 지금은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어쨌든 그곳을 찾기 위해 무릎까지 빠지는 수북한 눈길을 헤치며 고생하던 일은 아직도 뚜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즈음에는 겨울 추위만큼 매서운 한파가 우리들 주위를 오랫동안 맴돌았다. 유신 이후 정치적 폭압이 갈수록 심해졌고, 그 폭압 아래서 숨을 쉬기도 어려웠다. 유신 정권의 폭력 앞에 제대로 항의조차 하지 못한다는 자괴감 때문에 거의 모든 일에 의욕을 잃고 있었다.

복잡한 도심을 떠나 머리를 식힐까 해서 그 농장을 찾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길영희 선생을 잘 아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분과 일면식도 없었다. 다만 그분이 인천사회에서, 특히 제물포고등학교를 다녔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거의 전설처럼 회자되어온 고매한 인품의 원로교육자라는 사실을 어느 교수의 소개로 알고 있었다.

히로시마 고등사범 출신인 선생은 일제의 내선일체 교육에 반발해 교단을 떠났다. 해방 때까지 손수 삽과 괭이를 잡고 농사일을 돌본 강직한 분이었다. 그 후 인천시민들의 추대로 제물포고 교장을 맡아 올곧은 민족교육의 전통을 뿌리내리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선생은 은퇴한 뒤에도 농장을 개간하고 농촌 젊은이들을 위해 야학을 개설해 운영했다.

농장에서 묵는 동안 나는 한 차례 그분의 훈화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선생께 들은 여러 가지 훈화를 지금은 다 기억할 수 없다. 그러나 그분이 병풍글씨를 한자 한자 읽어주면서 설명한 周公의 일화는 희미하게나마 되살릴 수 있다. 그것은『시경』의 한 구절에 나오는 이야기였다.

주공은 주나라 무왕의 동생이다. 조카 성왕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을 때 섭정을 맡아 주나라 800년 역사의 기초를 다졌던 훌륭한 정치가다. 선생이 들려준 병풍의 그 구절은 섭정 시절 주공의 행적에 관한 내용이었다. 주공은 머리감을 때 세 번 중단했다가 다시 감았으며, 식사를 할 때에도 세 차례나 입안에 들은 음식을 뱉어 내고 다시 식사를 했다는 일화다.

나라의 섭정을 맡았으므로 그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주공은 자신을 찾은 사람들이 오래 기다리지 않도록 곧바로 만났다. 심지어 머리를 감거나 식사 중에도 하던 일을 멈추고 곧바로 내방객을 맞이했다. 시경의 그 구절은 주공의 이런 행실을 언급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史記』는 이렇게 전한다. 주공의 행실은 천하의 어진 사람을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한 배려였다. 그러나 젊은 시절 내가 선생에게서 들은 설명은 이와 달랐다. 권력자의 주변에 모여드는 사람들은 거개가 다 소인배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에게 겸허하지 않으면 그들은 곧바로 불평하고 원망을 품는다. 주공은 그 세상이치를 알고 있었으므로 권력자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찾아온 사람 누구에게나 겸허한 태도로 대한 것이다.

중국 상고시대의 사회상을 고려하면 사마천의 주석이 맞지 않을까 싶다. 선생이 이를 몰랐을 리 없다. 그럼에도 그분이 내게 들려준 말은 한 시대를 살아오면서 당신이 체득한 어떤 지혜 같은 것, 말하자면 주공의 일화에 대한 그 자신의‘현대적 해석’인 셈이었다.

물론 그 당시 나는 선생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좋게 말해 겸허라는 표현을 쓸 뿐이고, 사실 상 소심함이나 비겁함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겼다. 주공의 일화는 상고시대 지배층의 처세술을 빗대어 나타낸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나는 서푼짜리 천박한 지식으로 이 세계를 바라보며 학생들을 가르친다. 삶의 성찰을 통해 이 세계를 내 나름으로 해석할 만한 지혜를 갖추지도 못했다. 길영희 선생의 농장을 방문한 지 30년 이상의 세월이 훌쩍 지났다. 그 오랜 세월을 지내면서 내 삶의 편린과 경험들이 나의 내면에 어떤 궤적을 그리며 쌓였는지 알 수 없지만, 이제야 비로소 우리 삶에서 겸허의 중요성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주공의 일화는 단지 세상 살아가는 처세술만을 나타내지 않을 것이다. 농장에서 내가 들은 해석이 잘못된 것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요즘 들어 겸허는 누구에게나 소중한 삶의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평범한 사람은 물론이고, 특히 권력의 자리에 몸을 담고 있거나 그 주변에 있는 사람일수록‘시경’에 나오는 주공의 예화를 되새겨볼 일이다.

이영석 서평위원/광주대·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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