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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의 꽃말은‘어머니의 사랑’이란다!
목화의 꽃말은‘어머니의 사랑’이란다!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1.10.24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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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50) 목화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필자의 고향이기도 한 경남, 산청에서 태어난 三憂堂文益漸(1329~1398)선생은 고려시대의 학자ㆍ문신으로 공민왕 1363년에 元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붓대 속에 간신히 木花씨앗 10개를 감춰 가져왔다고 한다. 그 무렵 우리는 면으로 짠 솜옷이 없었고 오직 보들보들한 바람에 쉽게 날리기 위한 장치인 갈대(‘작은 대’란 뜻임)이삭의 갓털(冠毛)을 솜 대신 썼을 뿐이다. 장인 정천익에 면화씨를 주었으니 산청군, 단성면, 배양마을에‘棉花始培地’가 있고 그 곁 자락에‘전시관’이 들어서 있다.

 

목화(木花·Gossypium arboreum·cotton plant)는 아욱과의 한해살이풀로 원산지는 인도이며 綿花, 草綿라 한다. 시배지인 우리 고향에서는 목화를‘미영’이라 부른다. 백내장을 수술 않고 두면 수정체의 단백질이 하얗게 변하면서 눈동자가 희게 보이니 이를‘미영 씨 박혔다’한다.

온대에서는 90cm 내외(열대에서는 2m)로 자라며 잎에는 바소꼴(披針形)의 턱잎이 있고, 잎은 천생 단풍잎을 닮아서 3∼5개의 裂片(짜개진 잎 가장자리)이 있다. 꽃은 백색이거나 황색으로 커다란 꽃잎은 5장이고 겹으로 배배 말렸으며 끝에 톱니(鋸齒)가 많이 난 꽃받침이 꽃을 받치고 있고, 한 개의 암술과 130여개의 수술이 있다. 열매(다래)는 끝이 뾰족한 달걀꼴을 한삭과로 영글면 꼬투리가 5갈래로 갈라지면서 흰 솜털이 드러나며, 줄기 아래에서 위로 순서대로 익는다.

솜은 씨앗을 둘러싸서 씨를 퍼뜨리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설익은 다래를 따먹어 허기를 달랬으니 그 맛이 달짝지근하다. 어른들은 그것 먹으면‘문둥이’된다고 공갈(?)치지만 우리는 한사코 귀를 틀어막았지. 그런데 목화씨에는‘고시폴’이라는 독성분이 들었다고 하니 어른들의 말씀이 틀리지 않았다!

시배지 건너 이웃하는 默谷里에서 성철스님이 태어났고, 지금은 그분을 기리는 ‘劫外寺’가 있다. 거기서 지리산 쪽으로 시오리 쯤 들어간 白雲里에서 필자도 태어나 자랐으며, 시배지 가까운 곳에 자리한 ‘丹城中學校’를 졸업했으며, 삼우당의 묘소가 학교에서 엎드리면 코 닿을 新安里에 자리하고 있었으니 그리로 소풍갔던 기억이 문뜩문뜩 떠오른다.

시배지전시관에 들어가 전시장의 설명을 읽어보면 다시금 타임머신을 집어타게 된다. 요샌 널린 게 옷감인데 그땐 빠듯한 살림에 기가 차게 옷감도 집집마다 자급자족 해야했다. 그 과정이 아주 어렵고 힘들며 번거롭기 그지없으니 보풀보풀한 목화송이를‘씨아’에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냉큼 집어삼켜 두 원통틈새로 대번에 솜은 뒤로, 씨는 앞으로 엇갈려 내뱉는다. 연방 삑삑! 요란한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솜틀이 없었는지라 씨를 뺀 솜은 대나무를 휘어 만든 활(弓)로 탁탁 타는데 활 끝의 떨림에 따라 솜이 뭉게뭉게 부푸니 이를‘활타기(솜타기)’라 한다. 이때면 온 방에 솜 보풀이 풀풀 날아 수건을 불끈 맨 어머니 머리는 물론이고 눈썹도 솜털로 덥혀 엄마는 곧장 눈사람이 된다. 이어서 참대(竹)에 솜을 손으로 비비면서 길고 둥글게 말아 빼는‘고치말기’를 하고, 떡가래처럼 길게만 고치를 물레의 가락에 걸어 뱅글뱅글 돌리면 고치의 솜이 실로 이어져 감기니 이것이‘실뽑기(실잣기)’이다.

다음은 마당에서 하는‘무명배기(베 배기)’로 실 가닥을 야물게 하고 엉킴과 비틀림을 막기 위해 날실에 풀을 먹인 다음 아래에 불을 지긋이 지펴 풀을 말려 도투마리에 감으니, 풀칠하는 솔은 소나무잔뿌리로 만든다. 하늘이 꺼지게 후유~! 땀으로 목욕을 하시고, 후들거리는 다리에 끙끙 앓으시며 꼬부랑 할머니가 된 우리 엄마! 몸 좀 사리시지 그랬어요.

마침내 도투마리를 베틀에 올려놓고 잉아를 걸고 북에 씨실을 단다. 위아래로 벌어진 날실의 틈사이로 북을 통과시키며 바디를 당겨 탁 탁! 옷감을 짜니‘베 짜기’다. 앉을깨에 앉아 부티를 허리에 두른 다음 베를 짜면‘길쌈노래(베틀노래)’가 절로 나니 나의 思母曲이 되어버린“(…) 낮에 짜면 일광단이요/ 밤에 짜면 월광단이라(…)”이다.

신물 나는 베 짜기다. 일본 군인으로 끌려간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고 또 기다렸으나 끝끝내…, 절절이 애통하고 천추의 한 사무친 가슴앓이 노랫가락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고나! 베틀 밑에 슬그머니 기어들어가 탁 탁! 철걱 철걱! 바디 당기는 소리 들으며 절로 잠이 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지. 오늘따라 寤寐不忘, 오매(엄마)가 한량 없이 그리울 따름이다!

목화가 한 물 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지금도 내복, 수건은 물론이고 그것 없이는 못 사는 돈(지폐)까지도 온통 목화 면으로 만든다. 이 글을 쓰면서 불쑥 옛날 생각이 나서 C.C.R.의 노래‘Cotton Field’를 찾아 한참 들었다. 목화의 꽃말은‘어머니의 사랑’이란다.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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