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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원택이를 죽음으로 내몰았나요?”
“누가 원택이를 죽음으로 내몰았나요?”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1.10.17 14: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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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경기대 졸업생의 눈물

경기대 교수와 학생, 동문 200여 명은 지난 13일 정부 중앙청사 후문에서 기자회견을 여로 “손종국 전 총장을 비롯한 종전이사들은 비리 당사자로 어떠한 반성도 없다”라며 “구 재단으로 복귀하는 정상화는 안 된다”라고 요구했다. 사진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납치, 협박, 금품 매수, 쇠파이프, 야구방망이, 삽자루, 각목…. 이건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1993년, 경기대에서는 이런 것들이 무수히 자행됐습니다.” 지난 13일 정부 중앙청사 후문 앞. 경기대 졸업생 박영아(회계학과 91학번)씨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박 씨를 비롯한 경기대 졸업생 223명은 이날 사학분쟁조정위원회 전체회의에 맞춰 손종국 전 경기대 총장으로부터 받은 졸업장을 교육과학기술부에 반납하기 위해 모였다. 사분위는 지난 9월 8일 경기대 정상화 추진 방안을 상정하고 이를 소위원회에 배정한 바 있다. 경기대 구 재단은 지난 8월 임시이사의 임기가 끝나자 정상화 방안을 독자적으로 사분위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씨는 “비리로 물러난 손 전 총장을 다시 경기대 총장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을 보여주기 위해 그의 이름이 찍힌 졸업장을 반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씨를 비롯해 경기대 교수와 학생, 동문 200여 명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구 재단으로 복귀하는 경기대 정상화는 안 된다”라고 밝혔다.

특히 박 씨는 1993년 운동부와 교직원을 동원해 학생들을 무차별 구타하고 인권유린을 자행한 당시 상황을 증언해 기자회견장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오늘 저는 이 자리에 서기 위해 개인적으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1993년도의 아픈 기억들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너무 아파 잊고 싶지만 영원히 잊지 못할 그 기억들…. 당시 손종국 이사장은 부정입학, 교비 유용 등 많은 부정과 비리를 저질렀고, 이를 고소ㆍ고발한 총학생회 간부들을 납치, 협박, 금품매수를 하며 고소를 취하할 것을 강요했습니다. 하지만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7월, 손 이사장의 사주를 받은 유도부 40여명은 새벽에 학교를 침탈해 재단사무실을 점거 중이던 20여명의 학생들을 8층 체육관까지 끌고 가 무차별적으로 구타하고, 옷을 벗기고 항문검사까지 하면서, 심지어 여학생 속옷검사까지 자행했습니다. 학교를 지키겠다고 농활을 포기하고 돌아온 100여명의 어린 학생들은 밤 11시의 깊은 어둠 속에서 손 이사장의 사주를 받은 유도부를 비롯한 체육학과 학생들의 무자비한 폭력과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그저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맞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소리를 내면 발길질이 날라 왔기에 이를 악다물었으나 치욕스러움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9월 21일, 저희는 폭력으로 우리의 인권을 철저히 유린했던 유도부를, 손 이사장을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었기에 수원학교로 갔습니다. 경찰도, 교육부도 수수방관했기에 우리가 해결해야 했습니다. 500여명, 우리 손에는 인근 공사장에서 구한 쇠파이프, 각목 등이 들려 있었습니다. 유도부 역시 야구방망이에 쇠파이프로 무장을 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더군요. 운동장에서 서로 방망이와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격렬한 싸움이 붙었고, 우리의 기세가 누그러지지 않자 유도부들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우리가 이겼습니다!! 하지만 기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유도부가 휘두르는 방망이에 머리를 맞은 원택이는 폭행의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지금은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런 폭력을 사주한 자가 누구입니까? 학생들끼리의 폭력을 조장한 자가 누구입니까? 우리 원택이를 죽음으로 내몬 자가 누구입니까? 저는 손 이사장이 경기대에 다시 돌아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상상해서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졸업한지 17년이 되어, 나이 마흔에 이 자리에 선 이유입니다.”

사분위는 경기대 정상화 방안을 오는 11월 10일 회의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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