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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49 개미귀신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49 개미귀신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1.10.10 1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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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른 모래땅에 사는 ‘모래의 생물’

권오길 강원대 몀예교수·생물학
어릴 적에 점심 먹고 소 먹이러 가 강변에서 놀면서, 밉살맞은 우리 악동들은 다짜고짜로 놈을 파내 손바닥에 올려놓고 꼬물꼬물, 못 살게 괴롭혔던 것이 돌이켜보면 엊그제 같은데…. 그러다가 거미줄을 살짝 건드리면 거미가 훌쩍 튀어나오듯, 개미지옥에다 모래 알갱이 몇 톨을 흩뿌리면 먹잇감인진 줄로 알고 고개를 쏙 내미는 개미귀신. 굴집에다 입을 갖다 대고 “나와라, 나와라, 개미~귀신아!” 하고 소리 지르면 모래가 입김에 흩날려 정말로 후다닥 벌떡댄다. 개미귀신은 세계적으로 600여종이 있으며, 메마른 모래땅에 살아서 ‘모래의 생물’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개미의 천적은 도마뱀이나 개구리, 새, 노린재들이지만 여기에 엉뚱하고 괴이한 전대미문의 목숨앗이가 하나 더 있으니 명주잠자리(Hagenomyia micans)의 애벌레 ‘개미귀신(-鬼神ㆍantlion)’이다. 이것들이 모래밭귀퉁이에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여기저기 빠끔빠끔 가지런히 함정(trap)을 파놓으니, 그것은 깔때기꼴(funnel-shaped)이거나 절구통 모양이며, 이 구덩이를 ‘개미지옥’이라 한다. 중국인들은 개미귀신을 모래를 뒤로 파고든다고 倒退牛(backward-moving bull), 일본인들은 蟻地獄, 우리는 이것을 번역해 개미지옥으로 부른다.

모래를 덕지덕지 뒤집어 쓴 개미귀신은 엄청 우스꽝스럽고 꺼림칙하게 생긴 괴짜로 체색이 주변과 매우 닮았고(僞裝), 몸은 뚱뚱한 방추형이다. 날개는 없으며 배(腹)는 별로 통통하며 가슴부에 3쌍의 步脚이 붙어있고, 몸길이가 5mm쯤으로 머리는 작고 납작하면서 너부죽한 것이 사각형에 가깝고, 낫 꼴(겸상·鎌狀)의 턱을 갖는다. 개미귀신은 항문이 없어 자라면서 생긴 배설물은 내내 한가득 모아뒀다가 마지막 번데기 시기에 몽땅 쏟아버린다고 한다.

개미귀신의 집(sand trap)은 보통 깊이 5cm, 위 가장자리 지름은 얼추 7.5cm이고, 집을 짓고 싶으면 바닥에 둥그렇게 홈을 친 다음, 뒷걸음질로 빙글빙글 돌면서 차근차근 앞다리를 움직여 모래를 머리 위에 들어붓고는 휙휙 던져버린다. 굴 파는 솜씨 하나 기똥차다!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발버둥 치며 겉에서 안으로 파 들다보면 굴은 점점 깊어지면서 모래가 더 이상 미끄러져 내리지 않는 최대의 비탈 각 즉, 安息角(angle of repose·靜止角)에 도달하게 된다. 이렇게 집이 거뜬히 완성되면 턱만 쏙 밖으로 내놓고 밑바닥에 들어앉는다.

‘개미사자’는 끈질기게 개미나 다른 작은 벌레들이 한눈팔다 발을 잘못 디뎌 미끄러져 들기를 밤낮없이 몇날 며칠을 호시탐탐 기다린다. 이 때 어리바리한 개미 녀석이 얼떨결에 헛디딘 발걸음에 퐁당 빠져 곤두박질한다. 움찔움찔 발버둥 치면 칠수록 미끄러지고, 설상가상으로 개미귀신이 소나기처럼 쏟아붓는 모래에 벌레들은 속절없이 개미귀신에게 낚아 채이고 만다. 대뜸 억센 펜치(pincer·집게발)턱으로 덥석 물고 침(타액)으로 단박에 소화시켜  단숨에 체액을 쭉쭉 송두리째 빨고나 시체껍데기는 굴 밖으로 내팽개치고는 새로운 희생자를 기다린다.

우락부락하고 거칠지 않다면 서러워할 대찬 개미는 따가울 정도로 강력한 비장의 무기인 개미산(蟻酸·formic acid)도 한번 써보지 못하고 고꾸라지고 만다. 개미귀신 등치가 100배나 컸다면 큰일 날 뻔했다. 이렇게 유생(개미귀신)에서 번데기가 돼 성충(명주잠자리)이 되는 동안에 수백 마리의 개미 따위를 잡아먹고, 이런 한살이가 완성되는 데는 2~3년이 걸린다. 

여태 배불리 먹고 탈바꿈해 이제 번데기가 된다. 개미귀신이 모래를 깊게 파고 들어가 항문에 이어진 말피기소관(Malpighian tubules)에서 분비하는 가는 실과 작은 모래를 고이 섞어 고치(cocoon)를 만들고 그 안에서 번데기로 변한다. 고치는 크기나 모양이 똥글똥글한 토끼 똥을 빼닮았으며, 모래 속에서 고치를 만들면서도 그 안에는 모래 한 톨 들지 않은 ‘작품’을 만드니 참 기특하고 신기한 요술이라 하겠다. 한 달포를 그렇게 머문 다음 일취월장, 하루가 다르게 자라(변태) 어느덧 성적으로 완전히 성숙하면 이윽고 8월경에 드디어 한날한시에 고치를 뚫고 나와 모래 위로 올라온다. 약 20분 뒤에 날개를 활짝 펴고(우화·羽化) 서둘러 짝을 찾아 나선다. 성충들은 20~25일을 오직 짝짓기에만 몰입해 후손을 보고 주려(굶어) 죽는다.

보통 잠자리 유충(학배기)은 물에 살건만 유별난 명주잠자리의 고향은 강가 모래바닥이란다! 명주잠자리는 몸길이 약 4cm로 수컷보다 암컷이 크고, 짧은 더듬이는 골프채를 닮아 끝이 뭉툭하다. 체색은 어두운 갈색으로 몸은 길쭉하고 막대 모양이며, 두 쌍의 날개는 아주 길고, 좁으며 많은 시맥이 촘촘히 나있어 실잠자리(damselfly)를 닮았지만 분류상으로 아주 다른 무리다. 산기슭이나 인가 가까운 숲속에 주로 살며, 암컷이 꼬리 끝에 있는 산란관으로 마른 모래를 파고는 알을 하나씩 낳으니 그것이 까여 개미귀신이 된다. 그렇게 한세상 살다 갈 것을 가지고 아등바등….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ㆍ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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