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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번역과 지식의 확산
과학기술 번역과 지식의 확산
  • 구자현 서평위원
  • 승인 2011.09.19 12: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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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_ 구자현 서평위원(영산대)

구자현 서평위원/영산대 자유전공학부(과학사)
번역은 다른 언어 집단 사이의 지식의 소통을 위해서 필수적이다. 번역을 통해 지식은 언어 장벽을 넘을 수 있다. 고전 번역의 필요성은 누차 강조돼 왔고 이에 대한 대중적 공감대는 많이 형성해 가고 있는 듯 보인다. 서양 고전과 동양 고전의 번역을 통한 시공을 관통하는 문화유산의 전달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에 추가해 현재 소통되고 있는 첨단 정보의 번역 또한 중요하다. 특히 과학기술 전문 정보의 번역을 위한 노력이 가속화될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 서적의 번역을 이야기하면 흔히 대중 과학기술 서적의 번역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다. 우리나라에서 출판되는 대중 과학기술 서적의 저자가 대부분이 외국인이라는 사실과 그 번역의 질이 높지 않은 것에 대해서 모두들 한탄한다. 그러한 문제는 중요한 지식의 소통을 시장의 논리에만 맡겨 놓고 있기 때문에 생긴다. 현재 대중적인 과학기술 서적의 번역은 교수 급의 전문 연구자들보다 박사과정 급의 연구자들이 낮은 원고료나 인세를 받으며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시장 논리에 의해 대중 과학기술 서적의 판매고에 따라 번역 단가가 정해지고 있기에 번역은 고급 전문 인력이 많은 시간을 들여 수행할 수 있는 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번역이 연구 성과로 인정받지 못하는 풍토에서 번역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거나 사명감에 추동된 소수 연구자들이 수행하는 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중 과학기술 서적의 번역을 통해 대중들의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드높이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이므로 이를 위한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꼭 필요하다.

과학기술 서적 번역과 관련해서 이보다 더 국가적으로 중요하지만 간과되고 있는 부분이 전문 학술 과학기술 서적이나 논문의 번역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공계 전문 학술 도서와 학술 논문은 대학 교재 수준의 도서를 제외하고는 번역이 거의 전무하다. 이공계의 경우 첨단 지식의 소통은 학회의 학술 논문 발표를 통해서 이뤄지는 반면, 학술 도서는 출판되는 시점에서 이미 4, 5년, 학술 논문은 1, 2년 정도 낡은 지식을 담고 있다. 우리가 첨단 과학기술의 선두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첨단 지식을 가능한 한 빨리 소통시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을 선도 과학기술에 근접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최신 자료의 번역이 필요하다. 영어로 돼 있는 저술에 대한 접근도가 매우 높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상 모국어로 돼 있지 않은 이러한 학술 전문 도서나 논문의 이해 수준은 관련 분야 연구자라 해도 충분히 높지 않다. 보다 많은 수의 연구자들이 충분한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전문 분야의 최신 학술 서적이나 논문들이 번역될 필요가 있다. 그것도 조속하고 정확하게 이뤄져야 한다. 지식의 출판에 빚어지는 지체에 번역의 지체까지 더해진다면 그 시차를 극복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가령, <네이처>와 <사이언스> 같은 학술지는 첨단 과학 지식을 소통시키는 출처라고 생각하지만 그에 대한 한국인의 접근도는 영어 원어민들에 비해 매우 떨어진다. 이것 자체가 우리 과학의 발전에 대한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혹자는 전문 분야의 지식은 원어로 그대로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전문가들에게 있으므로 번역이 필요 없다고 주장한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조금만 범위가 넓어져도 어떤 분야에서 소통되는 학술 용어와 개념은 원어로 소통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연구자들이 참고할 것은 자신의 분야만의 전문 지식이 아니라 인근 분야 혹은 더 폭넓은 분야에 걸친 지식들도 포함한다.

이렇게 모국어로 섭렵할 수 있는 지식의 범위를 넓히지 않는다면 창의적이고 선도적인 지식의 창출은 어려워진다. 또한 첨단 지식의 번역은 다음 세대의 양성을 위해서 모국어로 유통되는 지식의 수준을 올리는 측면에서도 유용하다. 한국어가 첨단 지식을 다루는 데 제한을 가지고 있다면 그만큼 우리 언어는 문화 선도적 기능을 갖기 어려워지고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인력에게도 한계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핵심 분야의 전문 학술도서의 신속한 번역을 위한 국가 차원의 지원이 체계화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노력 자체가 우리의 고유 문화를 살찌우고 우리가 영어권의 문화적 종속에서 벗어나는 길임을 인식하고 국가 차원의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전문가들이 자신의 연구 논문을 쓰는 일 못지않게 현재 자신의 분야에서 통용되고 있는 첨단 지식을 번역을 통해 국내 독자들에게 유통시키는 일을 사명감을 가지고 수행할 수 있도록 그 노력에 상응하는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이 없고 외국어에 능통하지 않아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첨단 지식의 제공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면 보다 많은 독자들이 최근의 지식에 손쉽게 접근함으로써 과학기술의 혁신과 응용에 참여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구자현 서평위원/영산대 자유전공학부 ㆍ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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