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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무능이 교육격차 불렀다”
“정부의 무능이 교육격차 불렀다”
  • 정경원 한국외국어대 스페인어과/중남미연구소장
  • 승인 2011.08.29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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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교육의 위기

교육시장 개방이 가속화 되면서 칠레 학생과 일반시민이 교육개혁을 요구하고 나섰다.

정경원 한국외국어대 스페인어과/중남미연구소장
오늘날 칠레의 교육정책은 일반 시민사회 및 학생들의 저항에 직면해 있다. 위기의 발생은 과거 칠레 군부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1973~1990년) 정부 시절 제정된 교육구조법(Loce)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립학교 운영을 市정부에 위임하면서 재정 형편이 다를 수밖에 없는 지방 도시들과 공·사립대학 간에 심각한 교육 격차를 가져왔다. 이는 오랫동안 칠레 공교육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는 요인이 됐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전 중도 좌파 정부 인사들이 2006년 교육구조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이에 부응해 미첼 바첼렛 정부는 2006년 위원회를 설치하고 교육개혁법안을 마련하도록 했으나 시 정부가 공립학교 운영을 맡도록 한 기본 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따라서 교육의 질 개선이나 빈곤층의 교육기회 박탈은 해소되지 않고 지속돼 왔다.

교육구조법 개정을 위해 정부가 2008년 4월 의회에 교육개혁법안을 제출한 이후 많은 대학과 고등학교가 동맹휴업을 벌여왔으며 전국교사조합도 가세했다. 특히 교육의 소비자인 학생들은 교육의 질과 학비가 부합되지 않는다며 칠레 정부에 개선을 향한 대처를 실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무료통학과 무상급식마저도 기본적인 교육 복지로 요구하고 있는 형편이다.

2011년 8월 칠레에서 교육개혁을 요구하며 수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학생시위가 일반 국민의 지지를 얻으며 세를 넓히고 있다. 이에 따라 현 정권인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이 이끄는 보수우파 정권이 갈수록 궁지로 몰리고 있다.

산티아고에서는 7월에는 시위 진압에 나선 경찰과 학생들이 충돌하면서 100여 명이 부상을 당하고 850여 명이 체포됐다. 이 과정에서 학생 200여 명은 과거 피녜라 대통령 가족의 소유였던 한 TV 방송국 건물을 점거하기도 했다. 이러한 학생 저항운동은 2011년 5월부터 공교육 강화를 요구하는 시위로 확대되고 있으며 전국 대학과 고등학교의 교수와 교사, 교직원, 학생, 학부모 등이 여기에 참여하고 있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 칠레 정부는 포고령을 통해 산티아고 시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시위를 불법으로 간주하고 강력하게 진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정권(1973~1990년) 시절에 사용됐던 이 포고령의 부활은 칠레 국민으로부터 또 다른 강한 거부감을 일으켰고, 이것이 일반 시민들마저 시위에 동참하게 만드는 구실을 하고 있다. 칠레의 일반 여론도 학생들의 요구는 정당하며, 정부 및 경찰의 강경 진압은 잘못됐다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에두아르도 프레이 전 대통령(1994~2000년 집권)은 최근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피녜라 대통령이 학생시위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칠레를 통제 불능 직전의 상태로 빠지게 했다며 현 정부의 무능을 정면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요구하는 것은 공교육의 질을 높이고 무상교육을 확대하는 것이지만 칠레 정부 및 교육 당국은 교육을 소비재로만 간주하는 탓에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번 학생 저항운동은 피노체트 군사독재정권(1973~1990년)이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회복된 이래 20여 년 만에 가장 큰 규모다. 피노체트 정권이 ‘교육시장 개방’이라는 명분 아래 민간 부문에 넘긴 교육 기능을 회복하려면 당장 교육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신속히 대화 국면으로 나서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피녜라 정부는 40억 달러의 기금 조성을 포함한 공교육 강화 방안을 제시했다. 학생들은 이는 단지 임시방편적이기 때문에 대안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전면적인 교육 제도 및 시스템 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형편이다. 교육이라는 이슈가 칠레의 민주주의 성숙을 시험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경원 한국외국어대 스페인어과/중남미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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