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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 관리 대상 아니다 …학문공동체 자율에 맡겨야
학술지, 관리 대상 아니다 …학문공동체 자율에 맡겨야
  • 서유석 호원대·철학
  • 승인 2011.08.29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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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_ ‘학술지 평가’ 이렇게 생각한다

서유석 호원대·철학
교육과학기술부가 학술지 평가를 연구재단 대신 학계 자율에 맡기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교과부가 최근 작성한‘학술지 평가제도 개선안’에 한국연구재단의 등재 학술지 평가제도 폐지안이 포함돼 있다. 같은 날 개최된 교과부 주최 공청회에서도 같은 내용의 논의가 오갔다(인터넷 교수신문 8월 22일자 참조). 핵심은 현행 평가방식을 폐지하거나 인증제로 바꾸는 문제, 그리고‘선도저널 인센티브 부여’에 관한 것이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하루 속히 관 주도의 학술지 평가 방식은 학계나 민간 자율로 넘겨야 한다. 지난 14년 간 진행된 연구재단 주도의 평가제도가 성과보다 더 큰 부작용을 낳고있기 때문이다. 학회와 학술지의 끊임없는 양산, 그리고 무엇보다 연구의 획일화와 하향평준화가 그것이다.

학술지 평가제도(학술지 등재제도) 목적은 학술지의 난립을 막고, 우수학술지를 선별 지원함으로써 학술지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는 데 있었다. 그런데 이 취지는 이미 실종됐다. 연구재단은 제도 시행 초기 소수 우수학술지만 선별, 등재(후보) 학술지로 인정하던 정책을 어느 순간‘거의 모든’학술지를 등재(후보)학술지로 인정하고 거꾸로 부실한 학술지를 선별, 탈락시키는 방식으로 정책을 바꾸었다. 문제는 그 이후 신규 등재는 증가했으나 탈락은 미미했다는 데 있다. 한 마디로 연구재단 스스로 등재(후보) 학술지 수를 엄청나게 늘려 놓았다. 1998년 시행 초기 56개였던 등재(후보)학술지가 지금은 2천 개가 넘는다.

학술 진흥을 위해 지원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문제는 관이 획일적인 양적 지표로 평가해 지원금을 줌으로써 이 기준만 갖춰 지원금으로 연명하려는 학술지 수가 대폭 늘어난 가운데 논문의 질이 저하되고 연구 내용 또한 획일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표준을 벗어난 창의적 학술지나 논문은 도태되고 있다.

관 주도의 평가를 유지하는 한, 획일적 정량 평가 방식을 피하기 어렵다. 또 예산 집행기관으로서 증가하는 지원금 문제해결을 위해서라도 정량 평가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 관 주도 평가는 은연중 학계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한다. 급기야 연구재단이 학회 통합을 조건으로 지원금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한 것은 그런 불신의‘관리’마인드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예다. 이런 식으로는 학술지의 질을 제고하기 어렵다.

논문과 학술지의 질을 제고해 궁극적으로 학문 수준을 높이는 일, 그리고 필요할 경우 우수학술지를 가려내는 일은 학술공동체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 불가능한 일이지만 설령 관에서‘객관적’기준을 마련하더라도 학계의 자율능력이 갖춰지지 않으면 그 기준은 오용되기 마련이고 부작용만 낳는다.

교과부는 학계 스스로 학문 특수성에 맞는 다양한 자체 평가 노력을 하도록 지원해주어야 한다. 처음에는 혼선이 예상된다. 무엇보다도 체계적 관리 조직이나 소통 구조가 없는 학회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학자들 스스로 참여해 학계의 생존과 발전 방안, 그리고 자체 평가 기준을 만드는 일에 나설 것이다.

학문 발전에 대한 아무런 소통 노력 없이, 지원금에만 의존해 1년에 1회 형식적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학술지만 찍어내는 학회들은 자연 도태될 것이다. 다소 시간이 걸리고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이는 학계 스스로 자율 능력을 쌓는 데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일이다.

 

서유석 호원대·철학
서울대에서 박사를 했다. 학술단체협의회 상임대표를 역임했다. 주요 저역서로는 『철학, 문화를 읽다』, 『철학 오디세이』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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