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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위기의 현장과학기술자(1)
[기획연재] 위기의 현장과학기술자(1)
  • 권진욱 기자
  • 승인 2002.06.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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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19 19:26:28

언론과 교수사회를 통해 불거져 나오기 시작한 이공계열 위기담론은 여러 차례의 토론회가 열리고 정부 유관부서들이 잇따라 ‘사기진작책’을 제시할 만큼 심각한 사회적 의제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위로부터 떠도는 ‘위기담론’과 일선 연구소나 대학원 재학생들이 피부로 느끼고 있는 현실은 엄연히 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과학기술의 장래를 짊어질 젊은 과학기술 연구자들은 실제로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현장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보도록 한다.

최근 ‘대덕의 박사아빠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이라는 글에 소개된 일화가 사람들에게 널리 회자된 일이 있었다. 대덕연구단지의 어느 중견과학기술인 모임에서 나온 한 연구소장이, 자식에게 야단을 치면 오히려 “아빠, 그러면 나, 공대 갈 거야”라며 협박한다며 한숨을 내쉬더라는 것이다. 얼마전 한국과학기술원의 한 교수도 과학자가 꿈이라는 초등학생에게서 뜻밖의 위문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에는 “국민의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고생하시는 과학자님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요 … 열심히 일해도 월급도 제대로 타지 못하시고”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순진무구한 어린이의 눈에도 과학기술자가 결코 평탄하게 살아갈 만한 직업은 아닌 것으로 비쳤던 것이다. 지금 많은 과학기술자들은 자신이 밟아온 길을 자식에게 대물림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청년과학자들의 ‘성토대회’

지난 4월 참여사회연구소 산하 시민과학센터에서는 ‘이공계 위기론,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토론회가 있었다. 이 토론회에서는 이 논의를 주도한 몇몇 교수보다는 연구원, 대학원생, 이공계열 비전공자 등 보다 다양한 계통,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본격적으로 이공계 위기론을 다뤄 화제가 됐다. 대안도 왠만큼 나왔다. 신분보장과 사기진작, 사회제도 구축, 대국민 홍보 등은 누구나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주장들이었다.

그러나 전체토론장에서는 좀더 신랄하고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젊은 과학기술자들이 대부분인 질의자들은 거시적인 정책 입안이나 분석보다는 피부로 느끼는 현실을 이야기 했다. 어떤 이는 연구소, 기업체 등에서 여성, 비유학파, 비명문대 출신에게 가해지는 차별대우를 성토했는가 하면 또 다른 이는 이공계 위기론에서 흔히 거론되는 상대적 박탈감의 진원은 결국 문과엘리트에 대한 이과엘리트들의 불만이 아니냐고 지적했던 것. 이 밖에도 과학자들이 자본에 연연하는 자세, 하루 절반 이상을 일하고도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대학원생의 신분에 대한 비판도 줄줄이 쏟아졌다. 이런 ‘성토대회 분위기’는 이미 지난 2월에 있었던 청년과학기술자 캠프에서도 그대로 나타난 바 있다. 특히 ‘청년과학기술자의 삶과 노동권’라는 주제 발표에 들어가서는 위험하고 열악하기 짝이 없는 대학원의 연구 환경, 봉건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실험실 문화,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인한 고용 불안정과 비정규직의 현실 등 어느새 우리 사회에서 주변으로 남아 감춰져 있던 과학기술인들의 애환이 그대로 묻어나왔다. 몇몇 선도적인 과학자들이 발제문이나 언론기고문을 통해 제기해온 이공계 위기론이 훑어내지 못했던 보다 일상적인 문제들이 젊은 과학기술자들의 입을 통해 막힌 물꼬가 터지듯 쏟아져나온 것이다.

일상적 푸대접, 끝없는 푸념

젊은 현장과학기술자들의 정서는 온라인에서 더욱 잘 나타나고 있다. 지난 2월에 생긴 ‘한국과학기술인 연합(http://www.scieng.net)’이 그 대표적인 예. 전체 회원 중에서 연구원, 대학원생 등 과학기술계통 관련자들이 90%에 달하는 이 게시판에서는 과학기술 국가정책에서부터 이공계열 출신들의 진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로 토론이 이뤄지고 있지만, 사회적인 냉대나 불안한 장래에 대한 소식이 나올 때면 어김없이 수도 없는 댓글이 이어진다.

이공계열 위기현상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논의에서 과학기술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연구개발에 땀흘리고 있는 대다수의 현장과학기술자들의 현실과 의견은 도외시된 것이 사실이다.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위기담론의 실체를 파헤쳐 보기로 한다.

권진욱 기자 atom@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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