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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된 지식인들이 지식시장을 배회하고 있다”
“검열된 지식인들이 지식시장을 배회하고 있다”
  • 권진욱 기자
  • 승인 2002.06.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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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19 19:25:39
한국사회에서 ‘지식’은 어떻게 생산, 유포되고, 그 과정에서 '지식인‘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참여사회연구소(소장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와 한국사회연구회(회장 김만흠 가톨릭대 아시아태평양지역연구원 교수)가 11일 국가인권위원회 강당에서 개최한 ‘탈냉전시대 한국의 시민사회와 지식인’ 토론회는 한국사회의 지식인과 언론, 시민운동의 연관 관계를 짚어보고 비판한 자리였다.

김동춘 교수의 ‘한국의 지식사회와 지식권력’이라는 발표는 ‘지식권력’이라는 말로 시작했다. 그는 지식이 권력을 지향하지 않고 인간의 해방을 지향하며 비판정신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형용모순이라는 것. 김 교수는 ”과연 오늘날의 지식이 시장과 권력의 자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권력의 지식통제 아래에서 학교를 다니고 신문, 방송, 출판물을 접하면서 유포된 지식에 기초한 가치체계를 가지고 있는 지식인들이 오늘날의 지식시장을 지배하고, 출판과 미디어를 좌우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과거에 문화는 ‘더러운 현실’을 뛰어넘는 초월적 성격을 가지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대중문화의 확장 속에서 미학적 전제는 무너지고 사회적 차별과 재생산을 하고 있다”며 대중문화 담론에 대해서도 비판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한국의 언론정치와 지식인’을 발표한 김만흠 교수는 최근에 나타난 거대언론과 권력의 대립을 권력카르텔의 붕괴과정으로 설명해 눈길을 끌었다. 민주화와 정권교체 이후 전통적 권력 카르텔이 깨지면서 독립언론이나 대안언론이 자리매김하게 된 대신 기존의 거대언론은 과거의 권언카르텔 구조를 복구하기 위해 정치권력에 개입하려 발벗고 나섰다는 것. 그는 일간지 기고문에 등장하는 지식인들의 인구학적 특성과 기고 내용을 분석한 자료를 제시했는데<교수신문 229호 참조>, 대북정책, 대미관계, 신자유주의 및 시장경제와 복지, 언론개혁 등의 의제에서 나타난 일간지들 사이의 차별화 경향을 추출해냈다. 그는, “한겨레 등은 평화와 인권, 약자 배려, 개혁 등을 강조한 반면, 조중동은 힘의 논리, 엘리트주의, 안보와 질서 등을 강조했다”라고 분석했다.

서울대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홍일표씨(사회학)는 ‘2001년, 신문에 그려진 ’한국 시민운동의 일그러진 초상‘이라는 발표에서 2001년 한해 동안 있었던 시민운동의 주요사건을 차례로 분석해가면서 시민운동이 일간지 등에 의해 어떻게 윤색되고 있는가를 짚었다. 그는 일부지식인과 언론들이 시민운동의 무오류성의 신화, 초법성, 정권유착설 등을 제시해, 시민운동에 대한 대중 인식이 급전직하한 계기가 됐던 것으로 봤다. 그는 대안으로서 시민운동이 ’대중적 상식‘에서 얽매이기보다 스스로 공공성을 재구성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도 참여연대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손혁재 박사(정치학)는 소유권과 편집권이 분리되지 않고 자본, 정치권력과 함께 권력동맹을 형성한 언론현실을 비판했는가 하면 김갑식 서울대 한국정치 연구소 연구원(정치학)은 햇볕정책이 지식인들의 언론 기고에서는 38.7%가 옹호, 35.2%가 비판인 반면 일반인의 지지도에서는 79.0%가 찬성, 19.6%가 비판인 것으로 나타난 점을 지적해 눈길을 끌었다.

자유토론에서는 문제제기 방법론에 대한 지적과 지식인의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특히 이동수 경희대 교수(정치학)의 비판은 지식과 권력이라는 문제설정이 엄밀하지 못한 점을 지적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이들 발표들이 모두 “현상 속의 차이를 민감하게 받아들지 못하고 문제를 단순화시켰다”며 지식을 권력추구행위로 간주하는 환원론에 빠질 위험성을 경계했다. 그는 실천적 대안으로 언론활동을 자제하고 학문정신을 복원시킬 것을 주장해 이날 발표자들과는 다른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다.
재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김만흠 교수는 “모든 연구는 문제의식을 가지므로 환원론의 요소를 갖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사회구성체론, 시민사회론, 최근의 부르디외 이론의 유행 등을 사례로 들며 “지식인들에게 부족한 것은 사변적인 이론보다는 현실문제에 실천적으로 접근하는 자세”라고 말했다.

토론 후반에는 참석자들 스스로가 언론 기고가 잦은 사람이 많은 탓인지, 지식인으로서 기고문을 바라보는 견해도 자연스레 나왔다. “기고에 앞서 언론사의 구색 맞추기, 화장시키기에 동원될까봐 고민한다”는 김동춘 교수는 “지식인이 언론에 끌려다니기보다는 기고를 스스로 시작하고 먼저 끊는게 낫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사회를 맡았던 이종오 계명대 교수(사회학)는 “개혁적 지식인이라면 언론활동에 과감히 나서 의견을 피력할 필요가 있다”며 하지만 “신문 기고를 잡문 정도로 생각하지 말고 글의 진정성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권진욱 기자 atom@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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