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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물 : 국가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한 최광준 경희대 교수(법학과)
화제의 인물 : 국가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한 최광준 경희대 교수(법학과)
  • 교수신문
  • 승인 2002.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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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12 17:35:37
故 최종길 교수(사진)의 의문사 진상 규명이 29년이 지나서야 이뤄졌다. 1973년 이후 지금까지 최광준 교수와 유가족들이 겪은 고통이야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최종길 교수의 죽음을 돌이키는 것. 그 다음으로 진상규명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지난 달 27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한상범 동국대 법학과 교수)가 “최 종길 교수는 위법한 공권력의 직·간접 행사로 숨졌음이 인정된다”고 밝히자, 최광준 교수와 유가족들은 그 이튿날 국가를 상대로 1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냈다.
“국가가 인권을 침해한 경우입니다. 한시적인 기관인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국가기관으로서 그 과오를 인정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국가의 시인과 반성이 이뤄져야만 과거청산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최광준 교수는 공권력에 의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며 인권의 소중함을 재차 강조했다. ‘인권의 소중함’이라는 평범한 말속에 전해지는 깊고 강한 수많은 다짐들.
그는 지난 1988년 공소시효가 지나기 전 중앙정보부 부장 이후락씨 및 주무수사관 차모씨 등을 형사고발했을 당시 조사 한번 안하고 서둘러 덮어버린 지난 정권들에 대한 분노를 삭히며, 현 정권이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핑계로 배상책임을 회피하지 않길 희망하고 있다.
만약 현정권이 책임을 회피한다면, 스스로 이중성을 드러내는 셈일 터이다.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아버지.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의 누이들의 어두컴컴한 얼굴이 뇌리를 스친 탓일까. 진상규명이 최종 결정나기 두 달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노모가 기억났기 때문일까. 그의 말 속에 감정들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오로지 연구활동에 전념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지도하는 한 법학자였습니다. 훌륭한 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법학자로서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는 점이 내내 안타까웠죠.” 어느덧 자라 아버지와 똑같은 법학자로서의 길을 걷고 있는 아들. “진로를 크게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책들이 집에 그대로 남아 있었죠. 책꽂이에 꽂혀있는 독일어 책을 다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어떤 생각을 하시며 지내셨는지 알고 싶었죠.” 법학도로서의 길은 거기에서부터 출발했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 곁에서 힘이 됐던 유가족협의회 일원들과 함께 연대해서 수많은 억울한 죽음들의 진상을 규명하고, 반인도적 국가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배제 입법화를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닐 것이다. “맨 마지막에 눈물을 거두는 유가족이 되겠다”는 그의 다짐을 지키면서.
허영수 기자 ysheo@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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