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21:35 (토)
인용지수도 인위적 조작 가능 … 정부 연구비 심사부터 질적평가 도입해야
인용지수도 인위적 조작 가능 … 정부 연구비 심사부터 질적평가 도입해야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1.06.21 09: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술지 평가제도 개선, 현장 의견은

한국연구재단이 조만간 올해의 학술지 평가 계획을 공고한다. 학술지 평가제도가 어떻게 바뀌느냐가 관심사다. 한국연구재단은 학술지 평가 제도를 질적 평가로 전환하겠다고 지난해부터 여러 차례 밝혀왔다.
일단 올해는 진입장벽을 엄격하게 하고, 인용횟수와 인용지수를 시범적으로 적용하는 정도를 바꿀 예정이다. 박대현 한국연구재단 학술기반조성실장은 “올해 학술지 평가부터 등재후보 학술지가 될 수 있는 기준점수를 높이고, KCI(Korea Citation Index)를 시범 적용할 예정”이라며 “등재학술지를 A, B, C등급으로 나누는 학술지 등급화의 도입 여부는 정책연구 등을 거쳐 연말까지 확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학술지 평가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데에는 많은 연구자들이 공감한다. 1998년부터 시작된 학술지 평가의 긍정적인 기여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평가시스템이 우리 학계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하지만 학술지 평가제도의 개선 방안을 놓고서는 현장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김춘진(민주당)ㆍ조전혁(한나라당) 의원이 지난 1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학술지 평가제도 개선 방안을 위한 토론회’에서는 심지어 같은 학문 분야 안에서도 학술지 등급화나 인용지수의 도입 등에 대해 다른 의견이 쏟아졌다.

□ 인용지수는 만사형통인가= 한국연구재단이 올해부터 학술지 평가에 도입하려는 인용지수에 대해서는 주제 발표자부터 의견이 달랐다. 오세희 인제대 교수(행정학과)는 학술지 평가에 인용횟수와 인용지수를 적용하는 데에 긍정적이다. 오 교수가 교수 516명 등 연구자 63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이 방안에 대한 찬성이 가장 높았다. 오 교수는 그러나 학술지 등급화에 대해서는 같은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해 ‘재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같은 사회과학으로 분류되지만 교육학 전공의 김재춘 영남대 교수는 “인용지수는 연구의 질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판단의 도구 중 하나에 불과하다”라며 “인문사회 분야 학술지의 경우 인용지수(IF)를 매기는 것에 반대한다”라고 말했다. 인용지수 자체가 조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대표적인 SCI학술지인 <한국물리학회지>의 예를 보자. <한국물리학회지>는 최근 2년간 SCI에서 제외되는 패널티를 받았다. 인용지수를 향상시키기 위해 ‘자기 인용(self citation)’을 사용한 탓이다. <한국물리학회지>에 발표하는 논문의 경우 이전에 <한국물리학회지>에 발표된 논문을 인용하도록 권장해 인용지수를 인위적으로 높였다.

KCI 도입 앞두고 '자기인용'으로 IF 올리기 나타나

김 교수는 “KCI 도입을 앞두고 벌써부터 자기 인용으로 인용지수를 높이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라며 “사회과학 분야 학술지에 인용지수를 도입하면 다양한 형태의 담합이나 이른바 제자그룹이 많은 일부 대학 교수들의 인용 부풀리기라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라고 비판했다.

대신 김 교수는 “현재 2천종이 넘는 등재 학술지에 대해 평가를 통해 A, B, C등급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라며 그 기준으로 논문 게재율을 제시했다. 게재율이 20% 이하인 학술지는 A등급, 게재율이 20~50%인 학술지는 B등급, 게재율이 50% 이상인 학술지는 C등급으로 평가하는 방안이다.

□ 국가가 학술지 ‘관리’까지 해야 하나= 학술지 평가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마련한 토론회였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 제기도 있었다. 고부응 중앙대 교수(영문학과)는 “학술지 관리 체계가 강화돼야 한다고들 하는데, 국가는 학문에 대해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하는 것이다”라며 “국가 기관이 학문과 연구자를 대하는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고 교수는 “현행 등재 및 등재후보 학술지 선정 방식을 심사제에서 신고제로 바꿀 필요가 있다”라며 “기본 요건만 갖추면 학술지로 인정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박준식 한림대 교수(사회학과)의 문제의식도 비슷했다. 박 교수는 “음반에 별을 매기듯 학술지에 대해 국가 기관이 인증을 시도하고 등급을 결정하며, 그 인증 결과를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과연 한국연구재단이 할 일이냐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라며 “이러한 성찰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현행 평가제도를 기술적으로 개선한다고 해서 학문발전이란 원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겠느냐”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한 마디로 “국가가 인정하는 학술지들은 학문과 과학의 발전을 위한 활동의 장에서 한참 벗어나 채용과 승진, 급여와 인센티브를 위한 학술지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라는 것이 박 교수의 생각이다.

한국, 일본만 정부 주도로 학술지 평가 관리

주제 발표를 한 김재춘 교수 역시 “정부 주도로 학술지를 평가하고 관리하고 재정을 지원하는 체제는 전 세계적으로 일본과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특이한 체제”라며 “한국연구재단과 학회가 학술지를 공동으로 평가하고 관리하는 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 학술지 급증, 대학만 탓할 일인가= 학술지 평가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가장 큰 이유는 너무 많다는 데 있다. 1998년 58개였던 등재(후보) 학술지가 2000년 390개, 2005년 1천290개, 2011년 5월 현재는 2천59개(등재 1천438종, 등재후보 621종)로 급증했다.

전체 학술지의 59.3%가 인문ㆍ사회분야 학술지다. 인문학의 경우 학회에서 발행하는 학술지(68종)보다 대학 부속 기관에서 발행하는 학술지(73)가 더 많다. 사회과학 분야는 73개 대 69개로 비슷한 수준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듯, 특히 대학에서 발행하는 학술지의 질 관리가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학술지는 왜 많아졌을까. 대학만을 탓할 수는 없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학 전공)는 “교수들은 업적평가에 맞춰야 하고, 박사들은 논문을 많이 써야 임용될 수 있다. 정부 프로젝트에서도 대부분 등재 학술지 게재를 요구한다”라며 ”HK나 중점연구소의 경우 출판에 대한 점수 배정의 문제 때문에 학술지를 낼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학술지 평가, 엄밀하게 말해 등재(후보) 학술지나 SCI 학술지 등 ‘공인’ 학술지를 근거로 정량적인 평가만을 각종 평가의 근거로 삼는 평가를 질적 평가로 바꾸기 위한 단초도 바로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송태경 서강대 교수(전자공학과)도 “언론사 대학평가라든가 대학의 정보공시가 매년 이뤄지기 때문에 매년 연구업적 평가를 할 수밖에 없고, 교수들이 질적인 연구에 집중할 수 없다. 정부 사업에서도 대개 한 달 안에 심사가 끝나는데 그 과정에서 연구의 질적 평가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양재진 연세대 교수(행정학과)는 “대학에서 승진 등 인사 관련 업적 평가에 질적인 평가를 반영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지만 교육과학기술부와 언론사 등 외부 평가가 양적으로 치우쳐 있는 경우 대학 자체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라며 “변화의 단초는, 교과부의 대학평가나 연구재단의 연구지원에 대한 평가 때 다소 공정성 시비가 발생하더라도 과감하게 질적인 평가요소를 도입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