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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까지 세계인식 중층적 변화 양상 보였다"
"19세기까지 세계인식 중층적 변화 양상 보였다"
  • 오상학
  • 승인 2011.05.23 17: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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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오상학 지음, 『조선시대 세계지도와 세계인식』(창비, 2011.5)

목판본 원형 천하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원형 천하도는 중국에서 전래된 직방세계 중심의 지도와는 달리 원 속에 세계를 그린 지도다.
고지도는 말 그대로 과거에 제작된 지도로 지리적 事象을 2차원의 평면에 표현한 것이다. 아울러 고지도에는 역사의 기록임과 동시에 당대 과학을 반영하며 그 자체로 예술 작품이 된다. 단순히 지리적 실체를 표현하고 있는 것을 넘어 그 시대, 그 지역에서 살았던 인간들의 신념과 가치체계, 더 나아가 주변 세계에 대한 꿈과 희망도 아스라이 스며있다. 이처럼 고지도는 과학과 예술이 어우러진 독특한 문화 속에서 탄생되며 지역 간 문화교류를 보여주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과거 전통적인 고지도의 개념에서 벗어나 폭 넓은 시각으로 접근한다면 한 장의 고지도에 담겨있는 다양한 의미들을 캐어볼 수 있다. 특히 비서구권에서 제작된 고지도를 연구하는 데 확장된 고지도 개념은 매우 유용하다. 이 책은 확장된 고지도 개념을 적용하여 조선시대 세계지도를 분석하고 그 속에 담겨있는 세계인식의 흐름을 고찰한 것이다. 세계지도가 표현하고 있는 지리적 실체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문화사적 의미를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둔 것이다. 이는 기존 연구들이 지니는 방법론적 한계에서 벗어나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세계지도를 풍부하게 해석해 보자는 의도에서 비롯됐다.

발달사적 관점에 입각한 기존 연구들

한국의 세계지도를 다룬 기존의 연구들은 대부분 지도발달사적 관점에 입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따라 개별 지도의 제작자 및 제작시기 추정, 지도의 서지적 특징, 지도의 지명 분석과 계보 파악 등에 치중하였다. 특히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세계인식이 확대되는 진화론적 관점으로 세계지도의 변화를 해석하다 보니 세계지도가 지니는 다양한 의미들을 읽어내기가 어려웠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조선시대 세계지도를 독해하고자 했다. 먼저 땅(지구)의 형상에 관한 사고들을 검토했는데, 동아시아의 전통적 우주론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둥근 지구가 아닌 평평한 대지임을 밝혔다. 이어 동아시아의 전통적 천지관으로 굳어진 천원지방의 의미를 검토하고 이를 토대로 형성된 중화적 세계인식이 조선사회의 주류적 세계인식으로 자리잡는 과정을 세계지도의 분석에 앞서 살펴보았다.

천원지방과 중화적 세계인식에 기초한 세계지도는 직방세계(중국과 주변의 조공국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그린 것으로 조선의 전시기에 걸쳐 세계지도의 근간을 이룬다. 조선전기에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 「혼일역대국도강리지도」등도 이러한 흐름에서 제작됐다. 특히 1402년에 제작된「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직방세계를 넘어 유럽과 아프리카까지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지도는 기본적으로 동서양간의 문화교류로 가능했지만, 15세기 조선의 개방적인 대외인식과 세계지도 제작의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16세기 이후 조선성리학이 사회운영의 원리로 뿌리를 내림에 따라 조선의 세계지도는 직방세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17세기 이후 중국으로부터 서양 선교사들이 제작한 서구식 세계지도가 유입됨에 따라 세계인식이 직방세계를 넘어 확장됐다. 서구식 세계지도의 영향으로 세계인식이 확장되면서 한편으로는 확장된 인식을 전통적 방식으로 표현한 원형 천하도가 출현했다. 독특한 외형과 내용을 지닌 원형 천하도는 천지인 삼재를 표현한 우주지적 특성과 신선사상이 반영된 조선 특유의 세계지도라 할 수 있다.

 19세기는 18세기에 꽃피웠던 서학의 붐이 천주교의 탄압으로 인해 서서히 쇠퇴한 시기로 평가되는데 이 시기에도 여전히 세계지도의 제작은 지속됐다. 특히 최한기의 「지구전후도」를 비롯한 서구식 세계지도도 제작됐고, 「여지전도」와 같은 변형된 형태와 더불어 전통적인 세계지도도 계속 제작됐다. 이상의 연구결과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었다.

첫째, 조선에서 세계 인식의 변화는 단선적인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고 시대적 여건에 따라 상이한 형태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세계인식의 흐름을 진화론에 입각해 저차(좁은 세계)에서 고차(넓은 세계)로 진행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15세기 아프리카, 유럽까지 포괄했던 세계가 16세기에 접어들어 동아시아 세계로 축소된 사실과 17세기 이후 경험세계뿐만 아니라 광범한 미지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원형 천하도가 출현한 점을 고려할 때, 조선의 세계 인식은 시대적 조건에 따라 상이한 형태로 변화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조선전기의 단층적 세계인식이 조선후기에는 중층적으로 변화하는 양상을 띤다. 18세기 이후 서양의 지리지식이 유입되면서 주류의 전통적인 세계인식 위에 서양의 세계인식이 중층적으로 존재는 경향이 나타나 19세기까지 지속되었다고 정리할 수 있다.

이 책을 출간함에 성취감보다는 아쉬움이 더 크다. 조선 전시기의 세계지도를 다루다보니 개별 세계지도의 의미를 심도있게 읽어내는 데 한계가 있었다. 특히 거작의 세계지도라 할 수 있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 『곤여만국전도』 등이 지니는 문화사적 의의를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했다. 아울러 개별 지도에 수록된 지명과 텍스트에 대한 상세한 분석은 후속 연구과제로 남겨둘 수밖에 없다.

일본 중국, 자국중심주의적 해석 한계 보여

최근 일본과 중국 등 인접국가에서 간행되는 세계지도의 연구서는 한국 연구자들에게 신선한 자극제가 되고 있다. 일본의 미야 노리코(宮紀子)가 2007년에 펴낸『モンゴル帝國が生んだ世界圖』(번역본 『조선이 그린 세계지도』), 중국의 리우강(劉鋼)이 2010년에 간행한 『古地圖密碼:1418中國發現世界的玄機』(번역본『고지도의 비밀』) 등은 한 장의 세계지도로 풀어낼 수 있는 스토리의 방대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비록 자국중심주의적 해석의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했으나 한 장의 지도에 담겨있는 세계사적 맥락과 문화적 의미를 깊이 탐색했다는 점은 눈여겨 볼만하다.

이제 과거 세계지도의 연구는 특정 분야의 몫이 아니다. 한 장의 세계지도에 담겨있는 다양한 역사문화적 의미, 문화교류, 과학과 언어의 문제 등은 학제간 연구의 필요를 제기하고 있다. 비록 조선에서 제작되었지만 일국사를 넘어서야 제대로 읽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지도는 분명 매력적인 텍스트이다. 이 책이 국내의 세계지도 연구 활성화에 작은 보탬이 될 수 있다면 더없는 기쁨이 될 것이다.

 

오상학 제주대․지리교육과

 

필자는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옛 삶터의 모습, 고지도』, 『하늘, 시간, 땅에 대한 전통적 사색』(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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