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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토리노까지 유혹의 탐닉…독특한 매력 지닌 20곳 소개
런던에서 토리노까지 유혹의 탐닉…독특한 매력 지닌 20곳 소개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1.05.23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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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 라이너 모르치 글|레토 군틀리 아지 시몽이스 사진, 『유럽의 명문 서점』(박병화 옮김, 프로네시스, 2011.5)

 

런던 던트 서점은 안도라에서 키프로스까지 전 세계에 관한 모든 정보를 단번에 찾을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일까. 던트는 여행자들을 위한 서점이기도 하다. 사진제공=프로네시스
인터넷이 놀라운 속도로 세상을 옮겨놓고 있는 시대. 책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의 근심 어린 질문에는 '종이책은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가?', '서점에 미래는 있는가?'와 같은 물음이 꼭 포함돼 있다. 이 질문의 대답이 궁금하다면『유럽의 명문 서점』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책을 쓴 저자와 책에 수록된 서점들의 다양한 사진을 찍은 사진 작가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종이책은 살아남을 것이며, 미래는 밝다'라는 것.

 

이 책이 처음 출간된 곳은 독일이다. 그네들 언어로 '서점(buchhandlung)'이라는 단어는 '책을 다루는 곳'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단순히 상품으로서의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만들어내고 널리 전하는 곳'이라는 의미의 이 단어가 환기하는 것은, 이제는 희미해져가는 책방의 전통과 로망을 지켜가고 있는 사람들, 오랜 동안 책을 다뤄온 그 능숙하고 애정어린 손길로 책의 미래를 열어가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함께 만드는 '지성의 산실'의 결코 퇴색되지 않는 무게일 것이다.

 

출판계에서 잔뼈가 굵은 저자 라이너 모리츠는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안목으로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지닌 서점 스무 곳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곳의 "다양한 면모를 지닌 열정적인 주인장"들을 만나, 그 공간과 공간을 가득 채운 책의 냄새를 전문 사진작가들과 함께 기록했다. 저자의 안목이란 사실 평이한 것이었다. 그는 '고객을 유혹하는' 서점을 중심으로 선정했다! "건축 면에서 걸작이라는 평판을 듣는 곳도 있고, 외진 곳 깊숙이 자리 잡아 피난처 구실을 하는 곳도 있으며, 시대 조류에 반발하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는가 하면, 놀랍도록 창조적인 정신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곳도 있다." 자신의 안목에서 벗어나 있는 서점들을 위해 책의 말미에 더 많은 서점의 주소를 실어 두었으니, 유럽을 찾아 지적 여정을 즐기고 싶은 독자들에겐 꽤나 유익할 듯하다.

 

"서점을 드나드는 일은 여전히 잊지 못할 체험이 된다. 일단 서점에 발을 들여놓으면 사람들은 마치 마법에라도 걸린 듯 시간 가는 것도 잊고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며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즐거움을 맛보다가, 들어올 때는 살 생각이 전혀 없던 책을 한 아름 안고 집으로 돌아가기도 한다"라는 저자의 고백은, 우리시대 책방을 즐겨찾는 모든 탐색자들의 공유 언어일 것이다.

저자는 "노스탤지어에 호소하려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다"로 분명하게 밝혀놓았지만, 책의 곳곳 행간마다 어떤 향수가 톡톡 묻어나오는 건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서점이란, 책방이란 동시대와 과거의 현자들의 육성이 활자로 누워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저자는, 런던 헤이우드 힐 서점에서부터, 베를린의 사비니 광장 아치 서점, 바로셀로나 알타이어 서점을 거쳐 파리의 오귀스트 블레조 서점을 기웃거리도 하고, 브뤼셀의 트로피슴 서점 수석을 핥아가기도 한다. 그의 경쾌한 발걸음은 취히히 베어 서점, 마스트리히트 셀레시즈 도미니크 서점, 빈 부르크레어락 고서점에 우뚝 멈춰서기도 한다. 로마, 베른, 함부르크, 그리고 또 다시 런던, 프라이부르크, 포르투, 잘츠부르크, 뉘른베르크, 파리, 마르바흐, 슈타데, 토리노의 유명 서점을 지나간다.    

그의 발걸음, 눈길이 스치는 곳마다, 예컨대 이런 설명이 이 책을 가득 채우고 있다. "찰스 디킨즈, 윌리엄 서머싯 몸, 엘리자베스 여왕에 이르기까지 영국의 문화와 정신이 곳곳에 배어 있는 헤이우드 힐은 오늘날 전통에 뿌리박은 몇 안 되는 서점이다."(런던 헤이우드 힐 서점). "세상 모든 책들은 펼쳐보고 자세히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 오귀스트 블레조 서점이 아름답게 장정되고 그림이 들어간 책을 아낀다는 것을 오가는 행인들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파리 오귀스트 블레조 서점), "해마다 40여 회의 낭독회가 열리는데, 그때마다 카페 리테레르 벽에는 유명인사의 사진을 걸어둠으로써 인상적인 기록을 남긴다. 마르틴 발저, 페터 빅셀, 도리스 게르츠케도 모두 이곳에서 낭독회를 가졌다."(베른 슈타우파허 서점), "에스컬레이터가 운행되는 벽은 뉘른베르크를 주제로 디자인됐다. 소시지를 놓고 소동을 벌이는 이야기가 포함된 얀 빈센의 추리소설처럼 지역 정서가 반영된 책들을 중시하는 것이 서점의 개성이다."(뉘른베르크 탈리아-캄페 북하우스).

과연 페이지마다 해당 서점의 풍경을 엿볼 수 있는 사진들이 현장감을 전해준다. 이건 굉장한 시각적 호소다. 교보서적이나 영풍문고처럼 쉴 곳도, 자기만의 독서 공간도 없는 우리들의 책방과는 문화적 풍경 자체가 다르다.  라이너 모리츠의 책은 책방이 어째서 단순한 '서점'에 그치지 않고, 한 사회와 역사, 문화 속에 우뚝 선 '지성의 산실'일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줬다. 그렇다면 질문. 그 많던 이 땅의 서점들은 어디로 갔을까.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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