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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필수과목화' 성과 거둘지 의문…탈정치화 작업 시급하다"
"'한국사 필수과목화' 성과 거둘지 의문…탈정치화 작업 시급하다"
  • 김정인 춘천교대 역사교육
  • 승인 2011.05.23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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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_'한국사 교육과정 논란과 역사교육 정상화 방안 모색' 학술 토론회

지난 4월 22일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가운데)이 이배용 역사교육과정개편 추진위원회 위원장(왼쪽), 이태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오른쪽)을 대동하고 역사교육강화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학 연구자들 가운데는 이 방안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지난 4월 22일 역사 교육 강화 방안이 발표됐다. 골자는 고등학교에서 한국사를 필수 과목으로 하고 각종 공무원 시험 과목에 한국사를 넣는다는 것이다. 이 방침은 이미 예상한 바이므로, 별다른 파장을 일으키지 않았다. 논란은 이때에 맞춰 일부 언론이 현 정부 하에서 검정심의를 거쳐 올해부터 고등학교에서 사용되고 있는 ‘한국사’ 교과서의 편향성을 문제 삼으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2월에 출범한 역사교육과정추진위원회 위원장이 당장 내년부터라도 교과서를 개정해야 한다고 발언하고,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이 새로이 한국사 교과서를 마련할 때는 편향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 근현대사 부분을 줄이고 내용도 국익을 훼손하지 않도록 바꾸겠다고 언론에 공표하면서 논란은 더욱 확산돼갔다.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주장까지 등장했다. 한편,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 37명 전원은  편향성 시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협의회를 구성했다.

제2의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파동이 예견되는 가운데, 지난 5월 16일 역사학과 역사교육 관련 학회들이 ‘한국사 교육과정 논란과 역사교육 정상화 방안 모색’이라는 주제로 학술 토론회를 개최했다. 발표 주제로는 ‘잦은 교육과정 개정이 초래한 방향 상실’, ‘한국사 교과서 편향성 논란의 정치적 의도’, ‘교육 현장에서 집중 이수제로 인해 겪는 혼돈’ 등이 다뤄졌다.

교육과정 내용, 정책적 고려따라 바뀌어

김한종(한국교원대)은 ‘교육과정은 누가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라는 주제로 2007개정교육과정을 만드는 과정부터 교육과정의 편제와 내용에 직접적 영향을 준 것은 교육적 요인이 아니라 정책적 고려였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역사 전공 학자와 학회들이 함께 역사교육과정의 방향을 탐색하고 일반사회, 지리, 역사 교육 전공자들이 사회과 차원의 교육과정의 문제점과 방향을 놓고 머리를 맞대며 만들어 가던 교육과정 개발의 방향을 일방적으로 틀어버린 것이 2005년 이래 정부가 연이어 발표한 역사 교육 발전 혹은 강화 방안이라는 것이다. 교육적 논의보다 정책적 의지로 교육과정이 바뀌는 수난은 현 정부 들어와서도 계속되고 있다. 2009개정교육과정으로 2007개정교육과정은 제대로 시행도 되기 전에 사라졌고 또다시 2011년 4월 역사교육 강화 방안이 됐고 그에 맞춰 교육과정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지금 우리는 국가가 교육과정의 개발을 독점하면서 교육과정이 정권의 정책이나 이념을 구현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교육내용마저 통제되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한철호(동국대)는 ‘한국사 교과서 편향성 논란과 교육과정 개정 일정상의 문제점’이라는 주제로 2007개정교육과정에 따라 집필된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한 직후  2009개정교육과정에 의거해 ‘한국사’ 교과서로 둔갑하고 만 초유의 편법적 조치에 대해 비판했다. 다양한 성향의 필자들이 어우러져 쓴 6종의 한국사 교과서를 일부 학자와 언론이 좌편향, 심지어 자학사관이라고 폄하하면서 사실상의 폐기처분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또다른 형태의 성향과 이념에 입각한 교과서를 새로 집필하려는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했다.   

송지선(구로고등학교)은 ‘2009개정교육과정과 학교 역사교육’이라는 주제로 2009개정교육과정에 따른 집중이수제 실시로 입시만을 고려한 국영수 위주의 교육과정이 꾸려지면서 역사 교육이 홀대받는 현실을 짚었다. 그리고 한 학기에 매주 6시간씩을 할애하여 한국사 한 권을 마쳐야 하는 교사는 매일 수업 준비에 허덕이고, 학생들은 지식의 홍수 속에서 학습 부담에 오히려 학습력이 떨어지는 교육 현장의 혼돈을 실감나게 전해 줬다.  

국가가 역사교육 주도권 잡으면

발표를 지켜보면서 무엇보다 우려된 바는 역사 교육 강화를 빌미로 오히려 정부와 언론, 그리고 일부 학자가 나서 역사교육의 정상화를 위협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었다. 역사교육을 이념적 무기로 활용하는데 관심을 갖는 일부 학자와 언론에게 역사를 가르치고 배우는 교사와 학생이란 존재는 진지한 고려 대상이 아닌 듯하다. 교육 주체와 현장에 대한 배려 없이 국익과 국민적 자긍심을 강조하는 나름의 ‘편향성’을 내포한 정치적 요구에 충실한 역사교육 강화 방안, 구체적으로는 한국사 필수과목화가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분명한 것은 더 이상 국가의 정책에 따라 정부가 바뀌면 교육과정이 개정되는 혼란이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요즘 추세로는 역사 교육과정의 개정, 역사 교과서의 개발과 검정의 주무가 일괄 국사편찬위원회로 수렴될 듯하다. 국가가 국사편찬위원회를 앞세워 역사교육에서의 주도권을 더욱 강화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교육의 강화가 실제로는 ‘국사’ 교육의 강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그만큼 역사교육 정상화의 길은 점점 요원해질 것이다.  

역사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무엇보다 지금 시급한 것은 역사교육에 잔뜩 덧칠되어 있는 정치색을 벗겨 내는 작업이다. 뉴라이트를 중심으로 한국현대사학회가 발족했으므로 역사 내전을 피할 길은 없겠지만, 역사교육의 탈정치화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민간’ 역량을 키우려는 시도 역시 지속돼야 한다. 정치인이나 언론이나 일부 학자에게 역사교육은 정치적 수단에 불과하므로, 역사교육에 대해 책임을 묻기 쉽지 않다. ‘지금 여기’ 논란을 성찰의 기회로 삼아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가 공동으로 역사교육의 방향을 모색하고 꾸준한 기초 연구를 통해 실천적인 역사 교육 과정을 마련하고 역사 교과서를 개발하는 풍토를 만들어 나갔으면 한다. 지난 5월 14일 한국고대사학회가 올해 처음 사용되는 초중등 ‘역사’ 교과서의 고대사 서술을 분석하는 토론회를 개최하여 주목받았다. 예전과 다른 역사학계의 발빠른 행보가 반갑기만 하다.

김정인 / 춘천교대 역사교육
서울대학교 「일제 강점기 천도교단의 민족운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논저로는 『천도교 근대 민족운동 연구』, 『동아시아에서 역사인식의 국경 넘기(공저)』, 「기억의 탄생 : 민중 시위 문화의 근대적 기원」, 「내재적 발전론과 민족주의」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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